<돈의 심리학>•<돈의 속성>
겨울 실내온도를 5도로 설정해 놨는데
어느 날인가 난방이 돌아가더라.
그렇게 춥게 살았어.
이 말을 하면서 엄마는 아직도 재미있어한다. 약간은 자랑스러운 목소리로 웃기까지 한다. 부모님은 근면 성실했다. 여섯 식구 생활비는 항상 빠듯하게 남기고 수입에 70퍼센트는 무조건 저축을 할 정도로 절약했다. 방 하나에 모두 모여 잠을 잘 때면 부모님이 돈 문제로 다투는 소리가 자주 잠결에 흘러들어왔다. 다툼의 원인은 친척 누군가가 빌려간 돈을 못 받아서, 또는 조부모를 부양하는 일을 두고였다. 대체로 엄마가 돈을 빌려주거나 시부모의 압박을 받았으며 아빠는 그로 인해 더 궁핍해지는 상황을 타박하는 것이었다. 아빠 가족 때문에 생긴 일인데 며느리인 엄마가 온갖 뒷감당을 해야 하는 이상한 상황이었다. 가끔 잠자리에서 들었던 다투는 소리 때문인지 나는 사소한 궁핍은 미덕으로 여기고 불편하지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살림형편이 별반 다르지 않은 고만고만한 친척들과 한동네에 모여 살아서 빈부차를 느낄 일도 별로 없었는데 초등학교에 들어가자 조금씩 ‘다름’을 알게 되었다.
동네에서 당시 제일 좋았던 아파트에 사는 친구는 빨간색 두 발 자전거를 가지고 있었다. 내가 아직 스카이콩콩 위에서 바닥을 찧으며 놀던 때였다. 그 친구동생은 나도 좋아했던 MBC청룡 야구팀의 유니폼과 모자를 쓰고 있었다. 어린이야구단에 가입한 것이다. 그 집 식탁에는 간식으로 치즈샌드위치가 놓여있었다. 생전 처음 맛보는 치즈는 너무 느끼해서 먹을 수가 없었다. 또 다른 친구는 2층 양옥집에 살았다. 그 애 집에는 원기소라는 영양제가 있어 건네줄 때마다 받아먹었다. 맛은 없었다. 항상 맛난 간식이 준비되어 있었는데 특히 귀하디 귀한 마른오징어를 맛볼 수 있었다. 등교할 때면 준비물을 살 돈이 없어 동동대는 일이 일상다반사였던 내게 그들은 아무 걱정 없는 부자였다.
아파트, 2층 양옥, 원기소, 마른오징어, 어린이야구단, 빨간 자전거… 비교대상이 생겼다. 내 빈곤을 느끼게 하는 대상이 생겨버렸다. 처음으로 내게 없는 것을 소망하게 되었지만 친구네 집에 놀러 가면 해소될 수 있는 것들이기도 했다. 그때의 욕망은 그 정도로 가벼워서 불쑥 찾아왔다가 어느새 스쳐 지나가버려 마음이 아프지는 않았다. 어린 내 힘으로 나의 욕망을 지우는 방법은 ‘하나도 부럽지가 않어’를 마음속에 새기며 욕망을 은폐하는 일에 익숙해지는 것이었다. 점점 욕망 혹은 욕구를 능숙하게 잘 다루는 인간으로 커갔다. 욕심, 욕구, 욕망이 혼재된 그 어떤 것을 잘 참아내는 인간으로 살다 보니 아예 그것들이 희미해지기까지 한 것 같다.
부모님은 평생 저축만을 의지했다. 지금보다는 높은 수익률을 보장하는 투자처이지만 다른 형제들처럼 부동산이나 사업으로 뻥튀기해서 노후걱정 없이 돈을 두둑이 벌어두진 못했다. 두 번의 상가부동산 투자도 길게 소유하지 못한 탓에 별 재미를 못 보고 손을 털고 말았다. 부동산 붐을 타고 꽤 많은 부를 축적한 친척들이 차를 바꾸고 몇 채의 집과 땅을 사들이고 자식들에게 턱턱 안기는 걸 보면서 엄마는 재미없다는 말만 했다. 몇 배씩 수익을 내는 일이 불가해하고 온갖 부조리의 산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엄마에게 세상사람들이 말하는 투자는 도박 같은 행위가 운 좋게 맞아떨어진 일에 불과했다. 자본이 있어야 부자가 되는 세상이 재미없다는, 땀 흘려 노동하는 가치를 아직은 부여잡고 싶은 엄마의 마음을 모르지는 않는다. 나도 자본이 벌어들이는 돈을 뼈 빠지는 노동으로 이겨낼 수 없다는 사실에 많이 두려워졌다. 막연하게 내가 자본 쪽에 편입되지 못할 것이라는, 커다란 흐름의 변화에서 새로운 기회를 즐겁게 받아들이고 공부하지 못할 것 같아 속상했다. 처음부터 지는 느낌이었다.
십여 년 전 지인은 아파트에 투자해서 커다란 수익을 얻었다. 그는 전업주부로 남편의 몇 년 치 연봉을 한꺼번에 벌어들이는 쾌거를 이뤘다. 한 번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우리 동네가 이제야 상승세를 타는 거라는 말에 맹신도가 되어 처음으로 임장이라는 것을 해보았다. 한 번의 성공으로 자신감과 신뢰를 얻은 그의 말을 쉽게 수용하였고 집을 매입했고 귀찮은 일이 많이 생겼다. 간단한 수리 후 전세를 끼고 매입한 집은 잦은 하자로 여러 번 보수를 해야 했고 한번 들썩했던 동네 집값은 다시 원래대로 침체에 빠졌다. 내 충동질에 덜컥 매입을 했지만 아무런 호재가 생기지 않는 입지에 투자한 것을 후회하던 선인장님은 나를 원망하는 말을 흘리기도 했다. 소심하던 나는 그 이후로 마이너스는 만들지 말자는 소신만 굳히고 주저앉았다.
내가 전세로 살던 서울의 모처는 중개인의 매입권유를 들었다면 5배가 넘는 수익을 냈을 것이다. 그 이후로도 나는 많은 기회를 용케도 잘 피해 갔다. 은행을 온전히 활용하는 법을 알지 못해 레버리지는 꿈도 꾸지 못해서 마통, 대출 같은 것과는 사뭇 거리를 유지하고 살았다. 작은 돈으로 적게 소비하는 것을 몸에 새기며 이런 생활 습관이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휩쓸리지 않고 주체적으로 자족하는 삶이라는 생각을 견지하기도 했다. 반백이 되어서 아직도 부모의 영향을 운운하는 것이 우습고 보잘것없는 일이지만, 무섭게도 나는 부모의 경제관, 투자방식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그래서 무척 평온하지만 안일한 삶을, 안정적이지만 답답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느낀다.
몇 번의 작은 실패와 수많은 기회가 지나가는 것을 목도하면서 이미 늦었으나 파이어족에 열광하거나 동학개미들에 동기화되려고 몸부림을 치는 일도 있다. 적어도 투기가 아닌 똑똑한 투자자가 되기 위해 팟캐스트, 강연 등을 두루 섭렵하는 시기에 만난 책을 읽으며 나를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일 년 반전에 읽은 책과 지금 다시 만난 책 속에서 꼽은 문장을 보면 내가 바라는 내 삶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기업의 미션, 제품, 사람, 과학적 접근 등 어떤 이유로든 어느 기업을 열렬히 좋아해서 투자했다고 가정해 보자. 당신이 돈을 잃고 있거나 기업이 어려움에 처하는 것과 같은, 틀림없이 오게 될 나쁜 시절이 왔을 때에도 덜 예민할 수 있다. 적어도 내가 뭔가 의미 있는 일에 참여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돈의 심리학 (10만 부 기념 골드 에디션) p.194
이 책을 쓰고 있는 지금, 버핏의 순자산은 845억 달러다. 그중 842억 달러는 쉰 번째 생일 이후에 축적된 것이다. 815억 달러는 60대 중반 이후에 생긴 것이다. (중략) 성공의 진짜 열쇠는 그가 무려 75년 동안 경이로운 투자자였다는 점이다. 만약 그가 30대에 투자를 시작해 60대에 은퇴했다면 그의 이름을 들어본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돈의 심리학 (10만 부 기념 골드 에디션) p.89
실제 내가 누릴 수 있는 것보다 낮은 수준의 생활양식을 유지할 때의 두 번째 혜택은, 주위 사람들에게 뒤처지면 안 된다는 끝없는 심리적 압박을 피할 수 있다는 점이다. 더 많은 것에 대한 욕구 없이 내 능력보다 낮은 수준에서 편안하게 살면, 현대 선진국에서 사는 많은 이들이 굴복하고 마는 사회적 압박을 덜어낼 수 있다. 나심 탈레브는 이를 두고 이렇게 설명했다. "진정한 성공이란 극심한 경쟁의 쳇바퀴에서 빠져나와 내 활동을 마음의 평화에 맞추는 것이다."
돈의 심리학 (10만 부 기념 골드 에디션) p.349
이 책은 주식매입의 기준을 세우는 일, 장기투자의 필요성, 그리고 자신에게 맞는 투자법의 중요성을 알게 했다. 투자에 들인 노력과 그 결과는 별 상관성이 없다는, 개인의 노력보다 훨씬 거대한 외부사건이 결과를 좌우한다는 지적은 여러모로 나를 위로했다. 좀 더 안정적이고 확실한 수익을 지향하는 보수적인 투자방식으로도 충분하다는 인정을 받는 것 같았다.
모든 물건은 자연에서 나온 재료와 인간의 시간이 합 쳐져 생겨난 생명 부산물이다. 모두 생명에서 온 것이다. 오랫동안 쓰는 물건이나 밖으로 가지고 다니는 물건에는 예쁜 스티커나 레이블 머신을 이용해 자기 이름을 붙여놓는 것이 좋다. 주인의 이름을 단 물건은 그 순간 생명을 가진다.
돈의 속성 (300쇄 리커버 에디션, 양장) p.96
자산은 모이면 투자를 해야 한다. 투자하지 않는 돈은 죽은 돈이고, 실제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장롱 속의 돈은 인플레이션이라는 독을 먹고 서서히 죽어버린다.
돈의 속성 (300쇄 리커버 에디션, 양장) p.97
자신이 큰 부자일수록 세월과 사회에 더더욱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작은 부자는 본인의 노력으로 가능하지만 큰 부자는 사회구조와 행운이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돈의 속성 (300쇄 리커버 에디션, 양장) p.282
투자, 창업의 중요성을 주야장천 외치는 이유는, 노후를 지지할 비노동소득의 확보를 위함이다. 결국 월급생활자의 노동소득으로는 평온한 노후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창업성공률이 그토록 저조하다면 누구에게나 권유할 수 있는 일은 아닐 듯하다. 작은 돈(물건)을 소중히 여기는 일에서 시작해서 자신의 욕망 크기에 맞는, 자신의 존엄이 지켜지는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부단한 투자공부가 동반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두 책 모두 큰 부자를 만드는 행운과 사회구조에 대한 감사를 언급했다.
큰 부자들이여, 감사하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