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동대는 윗집의 발자국소리가 들린다. 띠, 버스단말기에 카드를 대는 소리가 연실 들려온다. 다들 어디론가 바쁜 걸음을 옮기는 이른 아침이다. 침대에서 조금 더 미적거리다 창문을 열고 내다보면 등교하는 아이는 친구를 부르며 달려가고 노란 유치원 차가 끊임없이 오간다. 참새들마저도 나무에 모여 바쁘게 지저귀는 소리로 가득한, 해가 중천에 뜬 늦은 아침이 지루하게 흘러간다.
정신없이 휩쓸려가듯이 출퇴근과 가사에 쫓기던 날로부터 탈출해서 겨우 찾은 여유로운 생활이었다. 하지만 여유가 지루함으로 평온이 적막과 고독으로 변하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몸과 마음이 지긋이 가라앉았다. 바깥으로 나가는 일이 뜸해졌다. 이런 상태에 익숙해지기 전에 뭔가 조치가 필요하다는 외침이 아침마다 들렸다. 일부러 세수를 하고 선크림을 발랐다. 이렇게 해서라도 움직일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격하지 않게 조용히, 건강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을 찾고 싶었다. 이런저런 궁리 끝에 도달한 곳은 요가 수련장. 이름이 다소 거창하지만 바로 그곳이었다. 집 근처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공공기관에서 열리던 강좌에 처음 발을 들이게 된 것이다.
2007년 **시 여성문화회관에서 요가를 시작했다. 공공기관 강좌의 장점은 경제적인 비용으로 시작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저렴한 수강비는 자기 취향에 맞는지 가벼운 마음으로 확인할 수 있는 무시 못할 조건이 되었다. 보통 도보로 접근할 수 있는 곳에 자리한 공공기관의 접근성은 자칫 식어버리기 쉬운 열정을 유지하는데 강력한 이유가 되기도 했다.
배워서 뭐 하게?
그런 의문이 없지 않았다. 퇴사하고 재취업은 무리라고 생각되자 우선 주민센터, 여성문화회관, 평생학습원 등 여러 기관에서 열리는 강좌를 두루 섭렵해 보기로 했다. 지금까지 20여 개의 강좌를 수강했는데 이렇게 많은 강좌를 수강하게 되리라 본인도 생각하지 못했다.
공공기관의 강좌는 요즘은 사라졌지만 천 원짜리 김밥이나 커피와 비슷하다. 우선 자신의 취향을 가늠해 보고 본격적으로 자기의 습관이 될 만한 운동, 혹은 취미 나아가 부업으로 확장할 수 있다. 기관의 수업료가 천 원이라 해서 질적으로 부족한 것은 아니다. 수강생이 많은 만큼 개인의 수준을 세심히 고려하지 못할 뿐이었다. 요가나 필라테스처럼 자기의 선호나 취향을 파악하는 기회를 거쳐 전문적인 기관에서 심화 과정에 도전하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코로나 시기의 비대면 수업은 커다란 역할을 했다. 대면 자체에 불안이 커지면서 장시간 집 안에 머무는 것이 우울감과 무기력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던 시기에 적절하고도 유효한 대응 방식이 되었다.(물론 디지털 약자에게는 가혹한 시기였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공기를 공유하지 않아도 화면으로 오가는 대화만으로도 격리를 넘어서는 다정함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그러한 시스템을 도입하여 배움을 멈추지 않고, 사람과 교류하는 방법을 고안해 낸 모든 공공기관과 강사들의 노력이 놀라웠다.
이 기간에 프랑스자수, 아트테라피 그림 명상(젠탱글), 낭독회, 독서회, 글쓰기 등의 수업을 수강할 수 있었고 어떤 수업들은 대면 방식보다 더 효율적이라고 느꼈다. 위기의 순간을 보다 안전하고 편안하게 전환했다고 기억한다.
사실 일찌감치 그만둔 강좌도 있다. 통기타와 어반 스케치와 같은 것이 그에 해당한다. 대부분 기존 회원 상당수를 중심으로 수업이 진행되어 초보자가 따라가기엔 교수법이 너무 거칠었기 때문이었다. 친구 따라 강남 가듯이 등록한 발레 스트레칭을 제외하고는 모두 언젠가 한 번은 해보고 싶었던 것들이었다.
삐사감은 적당히 바쁘게 살고 싶었다.
철천지 원수처럼 생각하던 그림에 도전하고 싶었다.
잔근육으로 가득한 몸을 만들어가고 싶었다.
머리가 복잡한 날엔 소리 내어 책을 읽어보고 싶었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소품을 만들어 선물하고 싶었다.
묵향을 맡으며 종이 가득 글자를 써 내려가고 싶었다.
나답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도 시도해보고 싶었다.
소심하고 맘속 계산이 복잡한 인간이 이 모든 것을
동네 기관에서 해볼 수 있었다. 이 책은 작지도 쉽지도 않았던 여러 도전과 성취의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