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간의 필사가 시작되었다. 아침 8시경이면 담당자는 필사할 부분을 알렸다. 각자가 선택한 펜과 공책에 오늘 필사할 부분을 적고 감상을 밝히거나 사진이나 그림을 첨부하기도 했다. 하트와 엄지 척, 웃음이모지가 소극적으로 달리다가 댓글과 대댓글이 밤 11시가 되도록 이어지기도 했다.
필사는 성격이 급한 삐사감 같은 사람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타자로 치면 1분이면 끝날 일을, 사진을 찍어 텍스트변환하면 그것보다 훨씬 빠르게 끝날 것을 굳이 베껴 쓰는 이유를 알지 못했지만 해보기로 했다.
남들이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거라는 순종적인 마음이 동하는 날엔 이런 결정을 하게 되는 것이다. 낭독과 마찬가지로 시간은 많이 들고 남는 건 없을 것이라는 선입견이 마음속에서 강해질수록, 우선 닥치고 해 보자는 마음도 반대로 맹렬해지기도 하는, 또 다른 사춘기를 맞이했기 때문이랄까.
필사할 책은 김금희 작가의 <식물적 낙관>. 좋아하는 작가의 역시 좋아하는 주제를 담은 산문집이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마음이 급한 삐사감은 전체를 필사하려면 얼마나 걸리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개강 전에 앞장부터 필사를 해보았다. 아, 이건 사람이 할 일이 아니라는 결론을 얻고 펜을 고이 내려놓았다.
그래도 첫날은 참석해 보자는 마음으로 아침에 전달된 내용을 확인해 보니 5~6줄 정도 되는 발췌문이 보였다. 진행자는 매일 필사문을 골라 보내주고 그것만을 필사하는 생각보다 부하가 적은 일이었다. 문장 전체를 적느라 마구 휘갈겨 쓰거나 급한 마음에 읽지도 않고 글자를 쓰는 데에만 집중할 일도 없었다. 해볼 만하겠다는 생각과 함께 성경책 전체를 필사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DNA를 가진 것인지 새삼 놀라기도 했다.
하루에 단지 대여섯 줄의 필사문을 적는 일이란, 그래도 상당한 여유가 필요한 일이었다. 자칫 서두르는 마음이 발동하면 잘못 쓰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기상 후 잠을 깨우기 위해 이미 도착해 있는 문장을 가볍게 읽고 초록펜을 들어 천천히 적어나가는 일이 어느덧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는 상서로운 움직임처럼 느껴졌다.
문장은 세심하게 민감한 감성을 건드렸다. 식물과 함께 하는 일에서 뻗어나간 다양한 이벤트와 그것을 대하는 작가의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자신이라면 어떤 마음이었을지 상상해 보는 시간도 되었다.
아침마다 새로운 문장을 만나는 일은 자신과 진행자가 뽑은 문장을 비교하는 재미를 주었다. 삐사감이 발췌한 부분에 타인은 어떤 감흥이 있었을지, 어떤 느낌에서 담당자는 오늘의 문장을 발췌했을지 궁금증이 더해갔다.
노란 창을 통한 대화는 제한적이고 충분하지 않았지만 서로에 대한 격려와 따듯한 배려가 넘쳤다. 27명의 접속자들은 서로 잘 알지 못하는 생소한 타인에게, 하루의 힘이 되는 글과 사진과 그림을 기꺼이 나누며 사소하지만 힘이 되는 친절함을 베풀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소통은 충만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