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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담 Jul 06. 2019

인간에게 이타심이 있을까

<검사 내전>을 읽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사회 속에서 내가 취해야 할 방향과 태도는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을 때 이 책을 읽었다. 최근 6개월 이내에 새로 읽은 책 중에서 문학과 비문학을 통틀어 이렇게 나를 감동시킨 책은 없었다. 정말 재밌었고 정말 감동적이었고 정말 유익했다. 꼭 리뷰로 남기고 싶고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책이다.



1. 글투와 말투

  책을 읽고 분석하는 것, 타인의 말과 글을 통해 사고의 체계를 교정하고 바로잡는 것이 내 직업이다 보니 에세이류를 읽을 때는 작가가 어떤 사람일지 상상하면서 그가 쓴 내용과 문체가 일치하는지 살피며 읽게 된다. 처음에는 물살이 센 강물처럼 달려 나가면서 화려한 비유가 넘쳐나는 문장들에 눈길이 갔다. 검사라서 사회적 지위가 있다 보니 자신감이 넘쳐서 이러나? 그런데 또 말투가 너무 재밌는데? 검사 조직에 있는 사람이 이렇게 독특한 문체로 글을 쓴다고? 솔직히 조금 충격이었다. 검사 김웅은 속담과 비유, 인용과 말장난의 천재다.


  그는 딱딱한 문어체가 아닌 드라마나 연극 대사를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구어체로 자기 할 말을 한다. 난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 이거라고 생각했다. 소위 문학과 비문학의 경계에 있는 글을 수필이라고 하는데 이 책은 전혀 문학적 감수성을 추구하지 않는다. 작가가 완전히 소화한 이야기가 물 흐르듯 흘러가고 그걸 따라가다 보면 이야기가 끝나 있다. 그리고 당연히 이 물줄기는 차츰 속도와 폭을 줄이면서 잔잔해진다. 그리고 더 큰 바다에 우리를 내려놓는다. 놀라운 흐름이었다. 자기 삶에서 읽어 난 일의 인과관계 그리고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않으면 이런 문체를 구사할 수 없다. 그래서 난 책 읽는 내내 검사 김웅이 궁금했고 그 과정이 너무나 재밌었다. 책의 내용이 그가 누구이고 어떤 사람인지를 다 설명해 줬다. 돈을 두 배를 냈어도 아깝지 않았을 책이었다.


 일단 그는 어마어마한 독서가임이 분명하다. 책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자기 것으로 소화하면서 각각의 의미를 상징화해서 자기 언어로 소화하고 있었다. 속담을 이렇게 많이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사람은 흔치 않다. 속담은 문화의 보물창고와 같다. 속담이나 고사성어, 수수께끼와 같은 관용어를 통해 국어를 교육하면 장기적으로 매우 유연한 사고체계를 유도할 수 있다. 그런 과정을 익힌 사람인 걸까. 김웅은 자기 언어에 많은 것을 녹여내서 쓸 줄 아는 사람이었다. 이런 조화로움이 그의 문체에서 아무렇지 않게 배어 나온다. 일반인이 쓴 에세이를 읽다 보면 하나의 에피소드 뒤에 그에 적합한 문구가 삽입되는 흐름의 책을 종종 읽게 되는데 필자의 언어와 분리되어 부자연스럽게 들뜬 느낌을 받곤 했었다.


그런데 이 책은 그렇지 않다. 말투로 느껴지는 그의 글투가 너무 웃긴 데다가 아무렇지 않게 다양한 비유를 사용하는데 내공이 깊다. 직접 인용이 아닌 비유법을 사용한다는 것은 상황을 파악하고 진단하고 자기화하는 것이 익숙하단 뜻이다. 그래서 난 이런 사람이 검사일 경우에 어떻게 일을 처리하는지 궁금했다. 암기만 하는 엘리트가 아니고 말을 가지고 놀 정도로 발달된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이라면 사고방식도 업무방식도 남다를 텐데 정말 그러한지. 그리고 저 정도가 되려면 남이 보면 삽질로 보이는 일도 필요하면 하고야 마는 몰입형 인간일 텐데 정말 그러한지... 책을 읽어보니 정말 그런 사람이다. 진짜 똘끼 충만한 검사였다. 그래서 난 이 책이 좋았다. 언어가 풍성한 사람의 우직한 삶의 방식이 그를 어떻게 이끌었는지 볼 수 있었고 그건 언어와 사고와 독서를 붙들고 늘어지는 나의 삶에 일종의 격려가 되었다.


 이 책을 쓴 김웅은 독서를 많이 하고 듣기와 말하기를 잘하고 순응적이지 않은 사고와 생활 태도를 갖고 있다. 난 그런 사람을 발견하고 들여다볼 수 있었던 이 시간이 좋았다.  


2. 누군가에겐 욕먹는 사람


 스포일링이 될 수 있어서 책 내용을 일일이 소개할 수는 없지만 일단 형식면에서 사기의 천국이라는 대한민국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이렇게 되는 이유가 뭔지 정말 쉬운 말로 설명해 주기 때문에 읽기 편하다. 내용면에서는 언제나 차고 넘치는 사건사고에 파묻혀 있는 검사가 어떤 일을 완전히 해결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심지어 불가능한지를 면면히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오래 묵은 각종 범죄를 어떻게 파고들어 해결했는지 나오는데 일단 통쾌하고 고맙고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그리고 김웅 검사는 이 모든 일을 우연이라고 말한다. 자기를 영웅화하지 않는다. 내가 감동을 받은 것은 그가 영웅스럽거나 헌신적이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정말로 자기 일을 했고 그게 가능했던 것은 출세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출세 지향형 정치 검사가 아니었을 때 한 개인이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런 타협이 일어나면 얼마나 삶이 제한적인지를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검사는 개가 아니다.', '같이 오류에 빠진 사람은 서로에게 확신을 준다.', '신성화의 굴레는 특권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사기당하는 것은 욕심 때문이다.' 등 날카롭고 단호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한다. 그리고 불이익을 감내한다. 나는 그가 자기 일을 하면서도 타협하지 않았던 것처럼 독자와도 타협하지 않는다는 것을 책 읽는 내내 느꼈고 그 태도가 인상 깊었다. 사랑받고 존경받는 것은 그에게 전혀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런데 책에서 느껴지는 사람들과 동료들에 대한 그의 태도는 날이 서있거나 공격적이지 않았고 능청스러웠다. 상대방은 너무 화가 나는데 절대 화를 낼 수 없게 만든다고나 할까? 그게 그렇게 웃기고 통쾌할 수가 없다. 툭툭 터지는 웃음에 내내 즐거움을 느끼며 읽게 될 책이다.  장담한다.


 책이 문체가 좋고 재밌다는 것만으로 읽을 만한 책으로 기억되긴 힘들다. <검사 내전>의 김웅은 자기 삶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아니 어쩌면 치부라고 생각될 수 있는 것까지 다 드러낸다. 그의 삶의 태도가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 그가 왜 책을 많이 읽게 됐는지, 그의 어린 시절과 성장과정, 약자를 바라보는 눈이 시혜적이지 않은 이유들이 서서히 밝혀지면서 (그는 전혀 지시적이나 설명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 오로지 간접 제시만으로 이런 면면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한 사람의 삶이 다른 누군가에게 감동을 준다는 것이 무엇인지 배우게 됐다.


특히 내가 가장 감동받은 에피소드는 그가 어떤 사람에 대한 편견을 가졌다가 그 편견이 깨지면서 부끄러움을 느끼는 에피소드였는데 나도 너무 충격을 받아서 책을 읽다 말고 펑펑 울었다. 이타심이라는 것이 인간에게 있는가를 다루는 일화였는데 작가가 소개한 어떤 개인을 통해서 미안함과 고마움 그리고 연대의 책임을 느낄 수 있었다. 문학보다 더 큰 감동을 받았고 흔들리던 내 가치관이 다시 단단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어떤 사람이 특이한 행동을 할 때 우리는 무엇을 전제로 그 사람을 판단할까. 분명히 자기 이익을 챙기려고 저럴 거야. 뭔가 억울한 일이 있을 거야. 등등 개인의 행복추구를 전제로 판단하는 것이 익숙할 것이다. 이 책이 그렇지 않은 사람이 나온다. 그 사람은 자기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전혀 상관없는 타인의 안전을 위해서 자기의 일상을 기꺼이 내놓았고 그로 인해 욕먹고 손가락질당하고 오해받는다. 그리고 진실을 아는 많은 동료가 그 손가락질에 가담한다. 김웅 역시 어떤 편견으로 그를 대했다. 그리고 그가 이타적 의도 없이 이타적 삶을 실천하는 것을 통해 견고했던 사고의 틀이 깨지는 경험을 한다. 그런데 내 눈엔 검사 김웅 역시 어느 정도 그런 삶을 살았던 사람으로 보였다. 시류에 적극적으로 편승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우린 일종의 이타적 결과를 낼 수 있다. 시류는 늘 소수의 권력괴 이익에 집중되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 일화를 소개하기 위해 자신이 사람을 오만하게 대한 장면을 기록해야 했다. 책을 내면서 이런 일화를 소개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그것을 썼고 그럼으로써 그 부끄러움을 감추는 또 다른 부끄러움을 만들지 않았다.  



나는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보는 것 만으로 나름의 여러 교훈을 얻었다. 이 책엔 교훈적인 문장이 단 한 문장도 없는데도...


3. 검사가 보는 사법체계의 문제점

 '그냥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이 있는 가벼운 책인가 보다.'라는 마음으로 읽었다가 1번에서 느낀 이 사람의 문체 때문에 그렇게 끝날 위인은 아닌데...라는 생각을 했고 책의 후반부에 가서 '역시!'라는 생각을 하며 독서를 마무리하게 됐다. 책의 후반부에는 법치주의에 대한 그의 견해와 사법부의 문제점, 형사처벌 주의에 대한 견해 등등이 진지하고 건조한 문체로 서술돼 있다. 재미와 공부 모두 잡을 수 있는 책이다. 나는 법에 대해서 잘 모르고 알려고 해도 말이 너무 어렵고 어디부터 어디까지 알아야 하는지도 난감한 영역이란 생각을 많이 해왔다. 우리가 납득할 수 없는 판결들이 매일 쏟아지고 국민에겐 주권이 있다는데 너무 무력하게 느껴지는 영역이 많고 법대로 하라는 말에 오히려 힘이 빠지는 이유는 무엇인지 속시원히 정리가 안 되고 있었다. 에세이라는 것은 한 개인이 자신의 삶을 통해서 어떤 주제를 깊이 성찰하고 그 성찰의 결과를 독자에게 직접적으로 제시하는 글이다. 따라서 어떤 전문가가 에세이를 잘 썼을 경우 우리는 살아보지 않은 삶의 정수를 좀 더 쉬운 방법으로 읽고 습득할 수 있게 된다. 검사인 김웅이 이쪽 세계에 있으면서 하게 된 고민 찾아낸 문제점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 그것이 옳다고 주장할 만한 근거들이 차근차근 정리돼 있다. 난 너무 감사한 마음으로 읽었다. 겨우 일만 오천 원에 이렇게 쉽게 이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것에 고마움을 느꼈다.


 김웅은 법이 다가 아니며 법으로만 분쟁을 해결하려는 것이 얼마나 국민들을 피곤하게 만들고 더 많은 문제를 양산하는지에 대해서 정성 들여 서술한다. 그리고 법에 있어서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문제는 '민주적 정당성이 없는 판사 임명 제도'라고 단언한다.


'우리나라의 모든 일은 고시에 합격한 관료들이 결정한다. 마치 과거에 급제한 이몽룡이 벼락같이 암행어사가 되어 모든 불의를 응징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매듭짓듯이, 고시를 통해 선발된 엘리트 관료들이 모든 문제를 아름답게 해결해줄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래서 모든 권한을 관료들에게 부여하고 있다.' 332p


그가 주장하는 논리를 따져 읽으며 상당 부분 동의하게 되었고 내가 답답해하는 문제들이 어떤 방향으로 해결되어야 옳은지 갈피를 잡게 됐다. 나처럼 법을 잘 모르는 이들에게 상당한 도움이 될 책이라고 생각한다.


 김웅의 <검사 내전>은 나에게 지적이면서도 재밌는 좋은 글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하나의 답을 준 책이었다. 무엇보다도 좋은 글을 쓰는데 필요한 것은 문장력이 아니라 쓸 내용일 있는 삶이라는 것. 그리고 그 삶을 잘 소화해낸 언어가 곧 좋은 글로 기록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결국 사회를 구성하는 것은 개인이고 그 사회를 무너지게 하는 것도 개인이다. 김웅은 검사지만 사람들이 드라마에서 보는 그런 검사가 아니었고 그냥 공무원일 뿐이었다. 그가 어떤 시기에 열정을 다해 일했던 것은 본인이 원해서 또는 그렇게 해야 해서 그런 것이지 영웅심도 공명심도 아니었다. 보상은 더더욱 없었다. 이 책을 읽은 후 나는 전보다 단단해져 있었다. 표현하기 힘든 감동을 받았다. 고통의 연대를 느꼈다고나 할까. 김웅이 소개한 인간 군상을 통해 더더욱 생각을 굳힐 수 있었다.  


덧붙여 어휘력, 법률지식, 재미, 독서의 중요성 등등 고등학생들이 공부 삼아 읽기에도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재밌으니까. 이 책으로 아직 독서토론을 하지 않았는데 사람들은 어떻게 느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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