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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담 Nov 13. 2019

삶에 지칠 때 작가가 버티는 법 - 곽재식

기죽이지 않는 책을 읽다.

요즘에 참 애매한 위치에서 글을 열심히 쓰려고 하고 있는 중이라서 배우는 자세로 다른 분들 에세이를 많이 읽는 편이다. 다들 대단하시구나. 나는 망했네. 이러는 나날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페친 정말 책을 사고 싶게 만드는 글을 너무 잘 다. 자꾸 낚임. 아무튼 그래서 사게 된 책이 <삶에 지칠 때 작가가 버티는 법>이다. 글쓴이 곽재식.


작가에겐 미안하게도 작가가 누군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글을 읽어 내려갔다. 글을 읽는 내내 정말 묘했다. 마음이 너무 편해지는 것이다. 에세이를 읽다 보면 '넘사벽이다. 나 같은 건 조용히 살아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거나 '아.. 이건 좀 그런데 이런 건 좀 책으로 나오긴 좀 너무 가벼워...' 둘 중 하나의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중간은 별로 없었다. 그런데 이 책은 어떻게 이렇게 편안하게 글을 쓸 수가 있는지 신기한 마음이 들면서 읽는 내내 응원을 받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아무래도 속은 기분이 들었다. 필자는 작가로서 대성하지 못한 근근한 작가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그래도 글을 쓴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소소하게 일반화하지 않으면서 펼쳐나간다. 그런데 난 아무리 읽어도 이분이 그렇게 평범한 분일 것 같지 않았다. 분명히 뭔가가 있어! 책 뒷부분에 <한국 괴물 백과> 얘기가 나오는데 전에 친구에게 들은 얘기가 생각나서 얼른 연락을 해 보았다. 그때 그 책 저자가 이분이냐 했더니 그게 아니고 그런 책을 만들려고 했는데 이분이 이미 쓰셨다고.. 아 이분 진짜 내공이 보통 아닌 것 같다고 이러면서 한참 수다를 주고받았다. 책에는 회사원 겸 작가라고만 쓰여 있는데 찾아보니 그렇게 평범한(?) 사람은 아니었다. 역시나 실력자였던 것이다.


에세이라는 것은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가 꽤 중요한 것 같다. 난 이 책을 읽으면서 평범한 회사원인 사람이 글을 오래 쓰면서 아무도 자기를 찾아주지 않을 때도 묵묵히 버티는 법을 읽으면서 자괴감도 위축감도 아닌 공감 같은 것을 느꼈다. 작가가 되려 하려는 마음이 없이 생활글을 오래 써온 사람이 느끼는 감정이 이런 기분이 아닐까 싶었다. 꼭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어떤 분야의 최고가 아니더라도 그 영역에 머무는 심정을 담담히 편하게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아마도 그래서 작가 약력에 작가가 아닌 프로필은 내세우지 않은 듯하다. 난 그 부분에서 작가와 편집자의 성향이랄까 고집이랄까 그런 것이 느껴져서 좋았다.


내가 대치동 학원에서 일할 때 강원대를 나온 나를 고용하면서 원장이 고려대 나왔다고 하자고 그게 싫으면 k 대 나왔다고 하자고 했었다. 거절하니까 대학원 나왔거나 다니고 있자고 하기도 했다. 수업보다는 다른 프로필이 있어야 팔리는 공식에 나를 대입하는 것이 싫어서 절대 불가하다고 말했었다. <삶에 지칠 때 작가가 버티는 법> 그 지난한 과정을 쓰는 책이 좀 더 권위를 얻기 위해서 다른 무언가를 자꾸 꾸며냈으면 어땠을까. 아마 교회에서 정기적으로 하는 성공한 사람의 간증 집회 같은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성공한 사람이 푸는 고생담. 그게 아니어서 너무 좋았다.


작가이지만 전업이 아닌, 돈을 버는 다른 수단이 있었기 때문에 버틸 수 있었던 날들에 대한 이야기.

내가 진짜 재밌게 읽은 부분은 작가의 <신곡>에 대한 평인데 버스에서 읽다가 빵 터졌다. [그나마 <신곡>이 재미없었다고 고백한 것은 두려움을 초월할 정도로 재미없었기 때문이다.] ㅋㅋㅋㅋ 정말 너무 공감되고 웃겼다.

그리고 작가가 정말 무명일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팬들이 모여서 책을 내주기도 하고 용기가 되는 말을 해주기도 했다는데 그런 부분들을 읽으면서 내가 글을 쓰게 해 주고 용기를 주고 그런가 보다 하게 만들어준 사람들이 떠올랐다. 한 사람의 정체성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하나의 사회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마저도 받쳐주지 못할 때는 가장 중요한 것이 그를 바라봐 주는 사람이다. 어떤 사람이 작가가 될 수 있을까? 독자를 가진 자가 작가가 될 수 있다. 곽재식이라는 작가는 독자에게 어떤 따스함을 전해준 작가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걸 읽어낸 사람들이 그에게 당신은 글을 써야 한다. 당신은 책을 내야 한다고 확신하고 믿었던 것이다. 그가 지금 쓴 이 글의 면면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주제가 없는데도 어떤 배려와 공감이 묻어난다. 주눅 들게 하지 않는다.


얼마 전에 <아무튼, 문구>를 읽고 일기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그 일은 우울감에 빠져 있던 나에게 아주 큰 사건이었다. 20대 후반의 문구인 여성이 쓴 그 글이 어떤 대작보다도 나에겐 큰 자극이 되었다. 그리고 <삶에 지칠 때 작가가 버티는 법>이라는 책은 내가 북클럽 호스트로서 버틸 힘이 나게 도와줬고 글 한 편을 쓸 수 있게 해 줬다. 뭐랄까... 이만큼만 쓰면 되는구나. 딱 한 명이 좋다고 해도 성공한 글이고 책이고 그것이 언젠간 나에게 다른 언어가 되어 돌아올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심오할 필요도 없고 화려하거나 동경하는 마음이 들게 할 필요도 없다. 정말 미안하지만 난 곽재식이 누군지 관심도 안 갖고 이 책을 읽었고 글만으로 충분히 좋았다. 그게 감동 포인트.


좀 신기한 효과가 하나 더 있었는데 생활글만 쓰던 내가 문득 소설이나 아무튼 어떤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이 뭐가 좋았는지 잘 전달이 됐나 모르겠다. 언젠가 유튜브에서 소개해야지. 이론이나 교훈이 아니라 사람을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책이다. 그림을 잘 그리는데 자주 안 그리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에게 선물하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선물하기도 좋다. 누구나 읽을 수 있게 쉽게 읽힌다. 아 그리고 되게 똑똑한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 검색을 하고 책을 더 사게 된다. 은근히 내가 뭐도 썼고 뭐도 썼고 이러는데 다 궁금해. 너무 재밌을 것 같다. 그리고 왠지... 재밌는 sf를 썼을 것 같단 말이지. 읽어보고 리뷰해야지~



나처럼 원고료나 인세 같은 것을 쫀쫀하게 헤아리고 계산하는 작가도 사회에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 마지막 문장


아.. 그래. 난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작가가 글이라는 것을 참 아끼고 좋아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좋았다. 설명은 잘 안 되지만.

#삶에지칠때작가가버티는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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