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출신 작가 마르잔 사트라피를 좋아한다. 그녀의 그림도 스토리텔링 능력도 좋고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만들 때의 센스와 유모어 섬세함도 좋아한다. <페르세 폴리스>를 책으로 먼저 읽고서 몇 번이나 다시 읽었고 그걸 애니메이션 작품으로 다시 봤을 땐 더 감동했었다.
내가 이란 사람을 처음 보고 교류했던 것은 우즈베키스탄에서 러시아어를 공부했던 시절인데 이란 남자는 다 저런가 싶을 정도로 무력하고 사교성이 없는 김 빠진 사이다 같은 느낌이었다. <페르세 폴리스>를 읽을 때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과 요네하라 마리의 <프라하의 소녀시대>를 읽었다. 구소련과 유럽 중동의 역사의 굴곡을 넘나드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매료되어 마음이 조였다 풀렸다 했던 날들.
마르잔 사트라피는 자기와 친인척의 삶을 통해 이란의 역사의 질곡과 아픔을 누구보다 잘 그려낸 작가다. 그녀의 <바느질 수다>를 읽으면 이란 여성들이 얼마나 강인하고 성과 권력과 역사에 대해 얼마나 다채로운 의견과 표현을 펼치는지 엿볼 수 있다. 히잡과 부르카에 가려지지 않는 생명력과 강인함 마르잔 사트라피의 할머니 이야기는 용기가 안 나고 힘들 때마다 다시 꺼내 읽게 된다. 정말 유쾌한 여장부다.
마르잔 사트라피는 이란의 복잡한 역사와 서구의 자유로움 사이에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자의 외로움과 우울을 겪었고 그래서 이념화되거나 진영화 되는 오류에 빠지지 않는 균형을 내면화할 수 있었다. 난 그녀의 그 시크한 어조와 담백한 시선이 좋다. 도리스 레싱 같은 어조를 갖춘 작가다. '내가 언제 누구 편이라고 했니?' 같은... 경거망동하며 어머 이 사람 우리 편인가 보다 하고 덤비는 사람에겐 맞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 독립적인 정체성과 구조를 가진 사람이라서 다재다능하고 구조화된 연출력을 갖고 있다. 그림도 글도 감독하는 영화와 애니메이션도 독특하고 위트 있다.
<자두 치킨>은 주인공인 음악가가 죽기 전에 먹고 싶어 했던 음식이다. 이것은 그가 살면서 욕망하고 사랑했던 무언가를 상징한다. 더 이상 그것을 누릴 수도 그리워할 수도 즐거워할 수도 없게 됐을 때 그는 더 이상 살 수가 없다. 그래서 그는 죽기로 한다. 이 작품은 이 예술가가 죽기 전 일주일을 다룬다. 그를 죽게 한 절망은 무엇이었을까.
"나를 모르시겠소?"로 시작하는 이 작품을 읽어나가며 한 사람이 삶을 중단하고 싶게 만드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돈인지 명예인지 가족인지 욕망인지 그중 무엇이었든 그것은 어떻게 인간이 삶을 지속하고 싶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는지...
6 이 작품은 <어느 예술가의 마지막 일주일>이라는 제목의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의외로 코믹하게 그려냈다. 그 역시 마르잔 사트라피스럽다. 여자 주인공 이란 출신 여배우 골시프테 파라하니.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개봉한 디스트렉션에서 남주의 복수를 한 아름다운 여인을 기억할 것이다. 이란 출신 여배우고 상반신 노출 화보나 여성으로서의 소신 발언 등으로 이란 입국 금지를 당한 배우. 정말 절묘하지 않은가. 이란은 그들이 버린 여성들에 의해 그 문화적 아름다움과 역사를 아직 잃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