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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담 Sep 01. 2020

아무도 없는 도시

독거 에세이

이 건물 3층엔 주인집이 살고 2층엔 나랑 옆집이 살았는데 오늘 옆집이 이사 가고 오늘은 2층에 나 한 명만 있다는 게 이러저러한 상황과 겹쳐서 더더욱 덩그런 기분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저 많은 것이 다 어떻게 나가나 싶었던 짐들이 다 빠져나간 옆집은 참 허전해 보였다. 내가 이 집에서 나가면 이 방도 그래 보이겠지.

옆집 언니가 나에게 자기는 서울이 너무 싫다면서 언젠간 시골로 내려갈 거라고 했었다. 내 고향이 춘천이라니까 나보고 왜 서울에서 사냐고 그랬다. 그 질문을 듣고서야 내가 왜 서울에서 사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단 생각이 들었다. 서울에 날 붙잡는 게 있나? 날 사무쳐하고 아끼는 사람이 있나? 내가 춘천에서 누렸던 관계의 풍성함과 따스함이 채워지지 않아 답답하고 서글픈 밤들이 가득했을 뿐이었다.

처음엔 직장 때문에 서울에 있었지만 지금은 일 때문이라면 춘천에서 오가도 된다. 난 집순이고 업무도 재택이 더 많고 일 있을 때만 올라와도 충분하다. 춘천에 가면 아파트를 사거나 전세 얻어 살 수도 있다. 춘천에는 가족도 있고 조카들도 친구도 있다.

난 왜 서울에서 살고 있을까.

"전세금이 안 오르고 이사를 안 가도 되니까 계속 여기서 산 것 같아요. 그리고 옆에 한강이고 조용하고 공원도 있고 방도 두 개고..."

입밖에 이 말을 꺼내고서야 내가 왜 여기서 버틸 수 있었는지 알게 됐다. 난 강제적으로 거주 이전을 반복적으로 해야 하는 처지가 아니었기 때문에 여기 계속 있었을 뿐. 서울이란 도시를 선택할 순간 없이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조건이 좋아서 딱히 나쁘지 않아서 그저 그 자리에 있는 것을 자기가 선택한 적극적인 삶이라고 착각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동네도 집도 직장도 일과 취미생활과 사랑과 우정조차도... 안정이란 걸 누리고 싶어서 우린 끝도 없이 생각을 조작하고 신념을 생산해 낸다. 난 내가 좋아서 여기 있는 줄 알았다.

엊그제 어수선한 짐 사이에 교자상을 놓고 차를 마시며 문득 알아버렸다. 난 이 도시를 사랑하지 않으며 지금 난 불행하다. 내 삶을 숨결로 채우는 그 무엇도 실재하지 않는데 난 그걸 외면해 왔다. 이 집을 이사 가야 하는 상황이 오면 도대체 난 어디로 가야 할까. 서울 어디에도 가고 싶은 동네가 없다. 그리운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데 어딘들 가고 싶을까. 이곳에도 저곳에도 속하지 못한 어정쩡한 삶이 결국 나를 이렇게 만들었구나. 내가 끼어들 공동체가 하나라도 있었다면 정착에 성공했겠지만 지금 난 그냥 여기 존재할 뿐이다. 마치 코로나를 대비했다는 듯이.

내가 집을 나가려면 약 5년 후가 될 것이고 그때는 건물이 헐릴 때다. 난 이 집의 마지막 거주자다. 운 좋게 아주 싼 보증금으로 약 17년을  산 사람이 될 것이다. 이런 행운은 흔치 않다. 이 행운이 날 발전시켰는지 도태시켰는지 모르겠다. 다만 나에게 집이란 안정감을 준 것은 확실하다. 동시에 어떤 감각을 무디게 만들었다. 큰 욕심 없다는 명분으로 어떤 눈은 닫아버린 것이다. 서울이 이렇게 큰데 난 이 작은 공간에 갇혔다. 선택의 기로에 선 적이 없는데 좋아서 있는 거라고 약간은 착각했다. 이제는 움직일 수 없는 상태를 좋게 받아들이는 단계다.

5년이 지나면 어쩌면 춘천에 내려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구체적으로 하게 됐다. 그렇게 생각하니 아파트에 관심도 생기고 이 집에 있는 짐들도 다르게 보인다. 저 책들을 옮길 생각을 하니 한숨부터 나온다. 정말 춘천으로 가게 될지는 확실치 않지만 이 집을 나와 서울의 전혀 모르는 동네에서 혼자 적응하는 건 상상도 하기 싫다. 그 선택은 절대 하지 않을 거다.

난 약해진 건가. 실패한 건가. 한 가지는 확실하다. 아마 춘천에 가면 다시 찾아와 서성일 흔적조차 남지 않을 이 공간을 내가 무척 그리워할 거라는 것.  서울에서 내가 아쉬워할 것은 사람이 아니라 공간이었다는 것. 시한부 삶을 돌보듯 하루하루 애정을 갖고 살아야겠다. 내일은 건물 밖에서 내 방 창문을 올려다보며 사진을 찍어놔야겠다.

늘 원래 거기 있는 사람으로 인식되는 것 정말 지겨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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