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이 그냥 빨리 지나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지 몇 달 됐다. 좋은 날도 있었는데 마치 오물을 묻힌 옷을 벗어버리고 싶은 마음처럼 다급하게 이 시간을 내 삶에서 떠나보내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오늘은 그렇게 바라던 2019년 12월 31일이다. 이 문장을 쓰자마자 울컥하는 마음이 든다. 누구에게도 솔직하기 힘들었던 내 실망스러운 바닥을 참 낱낱이도 훑고 나왔던 시간들이 기억난다. 그래서 평소와 달리 이번엔 꼭 지난 한 해를 돌아보고 내가 어떤 시간을 지나왔는지 정리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그래야 나는 그 날들의 연속성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테니까.
1. 34박 35일의 여행
1년 동안 총 7회 34박 35일을 여행했다. 고향집에 다녀온 것이나 일 때문에 1박을 했던 날들은 뺐다. 모두 합하면 적어도 두 달은 밖에서 산 셈이다. 일상의 6분의 1이 여행이다. 여수, 인천, 양양, 제주도, 부산. 국내 여행을 별로 해 본 적 없는 나에게는 특별한 시간들이었다. 원래 혼자서 여행을 많이 했는데 지난해는 친구나 지인들과 함께 간 여행이 많았다. 혼자 가서는 할 수 없는 일들도 많이 해 보았고 음식도 더 맛있게 다양하게 먹을 수 있었고 외롭거나 위험하지 않아서 좋았다. 혼자서 간 것은 3월과 12월에 일주일 씩 다녀온 제주도 여행과 10월의 부산 여행 일주일인데 10월은 정신적 에너지가 바닥일 때 떠난 여행이라서 그냥 부산에 있다가 왔다는 표현이 더 맞다. 부산에 살고 있는 지인들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정말 무의미할 뻔한 여행이었는데 퍼실리테이터 강사이신 오영미님과 제주도 여행에서 만나서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꽃집을 하시는 이미경님이 나를 많이 챙겨 주셨다. 그분들과 했던 대화, 여행 속의 여행 같았던 콘서트, 함께 했던 즐거운 식사들이 여행의 온기가 되어 주었다.
그동안 나는 혼자 여행을 가면 비교적 다양한 경험을 하고 여러 사람을 만나고 독특한 에피소드도 많이 만들어 오곤 했었다. 그런데 11월에 지난 여행을 돌아보면서 혼자서 여행을 안 떠난 지 1년이 다 되어가고 있고 여행을 가서도 숙소에 틀어박혀서 움츠리고 있기만 했다는 것을 깨닫고 좀 당황했었다. 나의 방랑벽이 없어져서인지 나이가 들어서인지 우울에 빠져서 인지는 시간이 지나 봐야 알겠지만 집에서 자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사람이 여행을 간다고 딱히 어떤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건 확실히 알게 됐다. 고군분투했던 가을을 지나 12월이 되어 떠난 제주도 여행에선 자꾸만 혼자서 사색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가 지치고 힘든 나를 이끌어주면 좋겠다는 막연한 의존증이 사라졌다는 것을 그 여행을 통해 확인하고 왔다.
2019년에 여행을 하면서 가장 잘한 일은 인스타그램에 차곡차곡 여행기를 기록했고 유료 여행 앱을 통해서 주요 사건과 지출 내역, 미래의 여행자인 나에게 보내는 메시지들을 꼼꼼하게 남겼다는 것이다. 지난 3월 여행 때는 2년 전에 떠났던 4주 간의 동남아 여행 기록 중 캄보디어 여행기를 다시 적어 내려 가면서 기억을 복원했는데 내년에는 꾸준히 여행기를 다시 적어 내려 갈 예정이다. 처음에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기록들이 차츰 나만의 시선과 문체로 다시 자리 잡아가는 것을 느낄 수 있어서 보람을 느꼈다. 지금은 날짜에 구애받거나 모든 기록에 집착하지도 않고 종일 내 마음에서 재구성되고 엮어지는 주제를 관찰하는 버릇이 들었다. 그리고 그걸로 여행 이전의 기억과 사건을 직조해 나가는 시간이 여행의 중요한 의식이 되었다.
지난 1년간 풍성한 이야기가 넘치는 낯선 탐험이 이어지는 여행이 많지는 않았고 해외여행도 한 번도 없었지만 좋은 움츠림의 시간이었단 생각이 든다. 지금 적다 보니 그렇다.
2. 유튜브 호담 서원
원래 유튜브에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 북클럽 시작 전부터 알고 지내왔던 사람들이 내가 하고 있는 북클럽의 홍보 영상들을 만들어 주면서 내가 콘탠츠를 만들고 몇몇이 영상 작업을 해보면 좋지 않을까 하는 아주 단순한 생각이 들어 시작하게 됐다. 함께 하기로 한 사람들이 영상 쪽으로는 전문성이 있는 사람들이어서 내가 오히려 도움을 많이 받는다고 생각했고 그런 심리적 환경 덕분에 시작할 수 있었다.
유튜브 호담 서원을 준비하면서 일에 대한 내 태도가 얼마나 예민하고 철저한지 그것이 맞지 않을 때 사람들의 반응이 얼마나 천차만별인지 아주 현실적으로 배울 수 있었다. 유튜브의 성격과 내 업무 처리 방식과 역량 등을 생각할 때 1인 체제가 오히려 편했고 그것을 알기까지 처음 함께 하려고 했던 사람들과 참 힘든 시간을 보냈다. 각자가 치러야 할 기회비용이 컸지만 결국 내 채널로 시작한 것이었기 때문에 (우리 모두 처음엔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끝까지 책임지는 사람도 나뿐이었다. 이 과정이 상당히 거칠었고 힘들었다. 한 달 동안 큰 충격에 빠져 있기도 했다. 일단 난 영상 편집을 전혀 할 줄 몰랐고 나 아닌 사람들을 찍은 영상들은 쓸 수 있는 영상이 없어서 수습하는데 시간도 오래 걸렸다.
학생을 가르치는 수업과 성인 대상 강의, 독서와 글쓰기와 잡다한 업무들이 혼재하는 생활을 하다 보니 유튜브에 정기적 업로드를 하는 일이 완전히 손에 익진 않았지만 카메라가 있거나 없거나 편하게 말을 하는 것이나 따로 대본이 없어도 내용을 채워 넣을 이야깃거리가 많은 것, 팟캐스트 경험과 평소 영상물에 대한 관심 등이 적응하는데 도움이 많이 됐다. 그리고 혼자 영상을 찍고 편집하고 업로드하면서 동업하려 했던 사람들이 내 예상만큼 프로답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게 마음 정리에 오히려 도움이 됐다. 지금은 크게 화가 나지도 않고 탓할 생각도 없다.
서로를 너무 모르고 같은 선상에서 출발하려고 했던 책임이 누구에게 있었을까를 생각해 보면 내 책임이 크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있어서 시작할 수 있었고 혼자인 나였으면 생각도 안 했을 판을 벌려서 지금은 인스타에서도 유튜브에서도 어쨌든 유의미한 시작을 했다. 구독자가 많아지길 바라기보다는 영상화된 이력서라는 생각으로 하고 있다. 내년에 책을 완성하고 나면 강의 영상을 더 올리면서 발전할 수 있기를 바란다.
3. 서점 투어 시작
같이 공부하는 북클럽 멤버 한 분과 함께 1월부터 서점 투어를 다녔다. 1년간 총 20군데 남짓한 서점을 방문하면서 각 서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장단점과 트렌드 분석을 해 보았다. 앞에서 말한 여러 상황으로 인해 정서적으로 불안했던 시기에 한 달에 한 번씩 이어왔던 이 책방 여행이 나에게 긍정적 작용을 했다. 일단 정기적으로 누군가와 계속 깊이 있는 얘기를 나눈 수 있는 장치로서 작용했기 때문에 정서적 안정에 도움이 됐고 막연하게 느끼던 크고 작은 서점 운영의 문제점과 대안에 대해서 이제 좀 현실적인 기준을 갖고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인스타그램 호담 서원 계정에도 서점 관련된 친구분이 많다. 아주 냉정하게 말하면 국가 지원에 기대어 공짜 콘탠츠로서 도서 관련 이벤트들이 대중화되는 것들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독서인구가 점점 줄고 있고 서점이 인스타용 감성을 충전시키는 공간으로서 자리 잡아 버리면 거품이 빠진 후 실제적인 타격이 아주 클 것이라고 생각하고 정부 차원의 지원이 이벤트 중심으로 흐르지 않으면 좋겠다. 좋은 문화에 대해 적극적으로 지갑을 여는 인구가 많아지지 않으면 갈려나가는 것은 오랜 시간 글을 쓰고 강의를 하고 책을 쓰는 콘텐츠 생산자들이다.
그런 점에서는 대형 서점이나 출판사가 몇 가지 굿즈나 책 안기면서 공짜로 독서 지도자를 착취하고 명예 같지 않는 명예로 퉁치는 것, 가성비 높은 책 읽기 문화가 돼 버린 서평 쓰기 이벤트 등 답답하고 한숨 나오는 풍토들이 많이 거슬리는 한 해였다. 공부를 더 많이 해서 이런 문제들에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좋을지 의미 있는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 성장하고 싶다. 지금까지 쓴 내용들도 섬세하게 다듬은 생각이 아니라서 조심스럽지만 일단 1년 간의 정기적인 방문과 토론을 통해서 느낀 대략의 문제점에 대해서만 언급한다.
4. 인간관계
지금 쓰고 있는 책에 관계에 대한 얘기를 정말 정성 들여 쓰고 있다. 나는 우리가 살면서 관계 맺는 패턴이 서열주의를 주입받은 교육 문화와 너무 깊이 연관됐다고 생각하는데 그걸 가장 많이 생각하게 된 계기가 지난 한 해동안 겪은 인간관계의 문제였다. 아주 복잡한 단계를 거쳤지만 간단하게 말하면 서로가 서로를 잘 안 다고 믿었고 친했다고 믿었는데 깨진 관계가 많았다. 내가 맺는 인간관계의 패턴에 대해서 생각하고 싶지 않아도 생각 안 할 수가 없는 시간들이 꽤 길게 이어졌다. 억지스러울 수도 있고 깊은 성찰이 아닐 수도 있지만 나중에 후회하거나 부끄러워하게 될 생각이라도 지금 이 시점에 남기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짧게나마 돌아보고 싶다. 제대로 된 글은 내년 이맘때 다시 쓸 생각이다. 그때 제대로 생각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 위한 도움닫기로 지금의 어설픈 반성을 시도해 본다.
이전의 내 삶은 기독교와 교육 시스템 기반의 인간관계가 대부분이었다. 관계의 좋은 점은 어디에나 있는 것이니까 굳이 언급할 필요 없고 내가 맺은 관계의 기반이 된 이 두 가지 시스템은 나에게 치명적으로 나쁜 바이러스를 남겼는데 구원자 콤플렉스와 관계의 종속성에 대한 무감각이다. 난 머리로 논리로 정말 치열하게 이 나쁜 바이러스를 없애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심한 독감에 걸렸고 그 독감에 죽을 것 같은 고통을 겪어야 했다. 내가 무언가를 시작할 때 곁에 있었던 사람들 중에 냉정한 선택의 기준을 갖고 나를 바라본 사람이 거의 없었고 내가 좋은 사람일 것이다. 배울 점이 있을 것이다. 이 사람이 하면 뭐라도 되겠지 등등의 속내가 있었던 사람이 많았다. 그렇다고 중간에 모든 것이 다 나빴거나 내가 누군가에게 뭔가를 베풀거나 일방적으로 이끌면서 관계를 맺어온 것은 아니다. 그냥 저런 위험인자가 어느 구석에 숨겨진 채 겉으로는 행복하게 웃으며 관계를 쌓아온 사람이 많았다는 것이다.
내가 대해온 사람들 중에는 어린 학생이나 타인에게 무언가를 배우고 따르는 것이 미덕이라고 생각하는 어른들이 많았다. 그들과의 관계를 하나씩 정리하면서 내가 나도 모르게 그런 사람들에게 어떤 믿음이나 의존성을 자극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내가 풍기는 분위기와 내가 하는 말의 불일치는 상대를 힘들게 했을 것이다. 나는 그런 모순이 많은 사람이다.
여름을 지나 8월 9월은 정말 고통스러웠다. 심리 검사를 받고 전문가와 이야기도 나누었다. 내가 양가성이 짙고 흔치는 않은 케이스라 이해받기 힘들 수도 있단 말을 들었다. 감수성이 풍부한 테 현실 인지도 명확해서 항상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했다. 난 전통적인 남성성과 전통적인 여성성이 모두 평균 이상이다. 둥글둥글하고 무던한 성격과는 거리가 멀다. 어떤 사람들과는 절대 맞을 수가 없는 유형의 사람. 그러니까 내가 그런 무난함을 가진 성숙한 사람일 것이라고 예상하고 접근한 사람과는 필연적으로 크게 어긋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나와 잘 맞지 않았지만 잘 지내는 것처럼 보였던 사람들이 정돈되고서 오히려 평안한 시간이 찾아왔다. 그렇게 되기까지 내 마음과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한 책을 열심히 읽었고 건강해 지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했다. 그러면서도 매일 절망했고 내가 사회적으로 고립됐고 앞으로도 고립될 것이고 돈도 못 벌 것이고 아무도 가르칠 수 없고 글을 쓸 수도 읽을 수도 없게 될 거라는 생각을 하루 종일 했다. 생각을 차단하려고 몇십 편의 드라마를 정주행 했고 시력이 점점 나빠졌고 운동을 끊어서 근손실이 왔다. 나쁜 문장들이 머리와 심장을 관통했다. 세상 모두에게 사죄하고 싶고 용서를 구하고 싶은 가난한 기분 속에 잠겨 하루하루를 보냈다. 열심히 산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모든 길을 잘못 걸어왔는지 내가 참 미웠다.
그리고 난 그 우울한 에너지를 끌어모아 몇몇 사람들을 다시 내 삶에 초대했다. 그건 참 아이러니한 사건이었고 나로선 시도해 본 적 없는 행동이었다. 난 마음으로 치면 극빈자였고 누구와도 함께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었다. 과거 나를 정말 힘들게 했고 내 마음에 원망을 심어준 사람들 중 나와 맞지 않았을 뿐 좋은 사람이라고 인정되는 사람들에게 화해의 손을 내밀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연락이 왔고 그때 듣지 못했던 정리된 사과의 말을 들었다. 처음엔 여전히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았지만 나에겐 이제 전에 없던 인내심이 있었다. 병을 겪어낸 뒤였기 때문에 항체가 생겨 있었다. 나도 그들도 조금 다르게 서로를 대했다. 지금도 그들은 내 곁에서 거리를 두고 이전과 다른 패턴의 관계를 맺고 있다.
5. 블랙독
어느 날 책을 읽고 갑자기 일기가 쓰고 싶었다. 그래서 어느 비 오는 날 새벽 가장 아끼는 커다란 노트를 꺼내서 A4용지보다 큰 사이즈의 노트에 총 열일곱 장의 일기를 썼다. 앞뒤 빼곡히 완전히 사적인 얘기들을 풀어놓았고 글이 어찌나 앞뒤가 없는지 내 상태의 심각성을 관조할 수 있는 긴긴 시간이었다. 몇 시간이 지난 뒤 일기 쓰기를 멈췄다. 조금 살 것 같았다.
다음날 페이스북 메시지와 메일을 받았다. 지금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블랙 독의 기획 피디님의 메시지였다. 내가 3년 전에 학원을 그만두면서 쓴 글을 읽었다면서 드라마 자문을 해 줄 수 있냐고 묻는 내용이었다. 처음에는 장난 메시지라고 생각했고 그다음에는 개인 방송 관련 일이라고 생각했고 그다음에는 재능 기부를 요구한다고 생각했다. 통화가 이어지고 즉시 일이 진행됐고 보내준 차를 타고 몇 번 촬영장을 오가면서 드라마의 스태프로서 약간의 자문을 하게 됐다. 페이도 좋았고 사람들도 프로들이라서 일하기 너무 편했다. 그때 내가 같이 일해야 할 사람들에 대한 객관적 기준을 좀 세울 수 있게 됐다.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정말 유명한 연기자들의 프로다우면서도 세련된 태도를 보면서도 배우는 바가 많았다. 잠깐잠깐 본 거라 뭐라고 논할 수는 없지만 나에게 크고 귀한 기회였다. 덕분에 TVN 드라마 대본에 이름도 올리고 크레디트에도 이름이 올랐다. 영광이다.
글을 쓰다 보니 우연이지만 필연처럼 느껴진다. 나야말로 당시에 나를 아무도 데려가고 싶어 하지 않는 블랙 독이라고 여겼였다. 나를 정상화하려고 애썼던 시간. 그리고 딱 그 시기에 들어온 새로운 기회. 학원을 그만두면서 새벽에 썼던 그 글이 돌고 돌아서 열심히 나를 증명하고 다녔다는 것을 생각하면 글을 잘 쓰는 것보단 공감을 일으키는 문제의식이 더 중요한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 글이 그렇게 잘 쓴 글이 아니었고 그 글에서 내가 말한 주제 의식이 그렇게 드라마 자문에 크게 중요한 일은 아니었는데 하나의 징검다리 역할은 해줬던 것이다. 그 글을 읽고 나에게 손을 내밀어준 분께 다른 몇 가지 제안도 받았고 도움도 많이 받았다. 그런 일들이 내년엔 실제적인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을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도전은 할 수 있겠지.
6. 작가가 되는 길
2018년도가 끝날 무렵에 어떤 송년회에 끼게 됐다. 솔직히 내가 거기 갈 자격은 없었던 것 같은데 지인이 와도 된다고 해서 가게 됐다. 거기서 출판일을 하시는 분과 인사를 하고 얘기를 나누다가 책을 써도 될 것 같단 말을 들었다. 연락을 주시겠다고 했었다. 7개월이 그냥 흘러갔다. 하긴 내가 무슨 글을 쓰고 책을 써. 이러면서 포기하고 있었는데 다시 연락이 와서 만나서 얘기를 나누는 자리에서 출판 계약을 하게 됐다. 그날 정말 꿈꾸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계약은 쉽고 집필은 어렵다는 현실에 부딪치니 마냥 좋지만은 않지만... 계약 당시에는 괜찮았는데 직후 개인적으로 여러 일을 겪으면서 지적 능력이 너무 떨어져서 한동안 글을 못썼다. 아무튼 지금 교육과 삶에 대한 내 생각을 에세이로 푸는 글을 쓰고 있다. 쓸 때마다 내적 갈등이 심하다. 자신이 없어서. 지금 적어도 1월 안에 거친 초안이라도 완성할 수 있을 것 같다.
페이스북에 일기인지 낙서인지를 쓰면서 어쩌다 시간이 지나 여기까지 왔다. 책이 나오는 과정을 겪는 2020년이 되길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이다.
7. 타로
11월에 우연히 타로를 배우게 됐다. 평소의 나였으면 몸을 사리느라 생각만 하고 움직이지 않았을 텐데 왠지 망설임 없이 신청하고 성큼성큼 타로의 세계로 들어갔다. 그리고 거기서 좋은 타로 메이트들도 많나고 타로 풀이를 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내가 정서적으로 안정되는 것도 느꼈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이 이전에 했던 일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도 하게 됐다. 내년에 타로를 통해 어떤 일들을 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타로를 배우고 카드를 풀어내는 새로운 세상이 열리면서 여행의 스타일이나 여행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들도 많이 달라졌다.
타로 선생님의 다채로운 삶의 역사가 내가 타로를 배우는 과정에 자연스럽게 적응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누군가에게 무엇을 길게 배운 경험 중 가장 재밌고 효능감 높은 시간이었다. 내년에는 타로에 대한 글을 좀 더 자주 쓰게 될지도 모르겠다. 타로 선생님이 주최하는 영화모임 ACCC에서 편하게 얘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있는데 여름 전후에 겪은 일들이 없었다면 아마 나는 새로운 공간과 사람을 찾으려 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나를 객관화하거나 시험대에 올릴 기회도 놓쳤을 것이다.
만일 사람들이 깍지콩과 비타민c가 동물을 키울 수는 있을지언정 생을 구원하지도, 영혼에 양식을 공급해주지도 못한다는 걸 자인할 정도로 우리 모두 내면에서 공감한다면, 차라리 우리의 불완전함을 공유하는 편이 정말 훨씬 나을 것이다.
<고슴도치의 우아함> 팔로마의 일기 중
팔로마라는 소녀의 어머니는 심리학 박사고 문학 작품을 줄줄 외우는 지식인이지만 언제나 가짜 대화에 능숙하다. 자녀와 대화는 잘하지 않으면서 식물을 열심히 키우고 고양이를 돌봄으로써 자신이 양육과 돌봄에 능하다는 기분을 느끼려 애쓴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팔로마는 자살을 계획하고 있는 12세 소녀다. 엄마가 돌봄에 능하지 않고 서툴다고 해도 그것을 차라리 드러내고 진정한 소통을 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일기를 쓰는 장면이다.
이론을 아는 것이 현실로 살아내는 것과 얼마나 다른지 안다. 간격을 좁히려고 애를 쓴다고 말은 하지만 실제로 살아보면 정말 조금만 내 생각과 어긋나도 너무 힘들고 다 포기하고 싶다. 삶은 희망 가득하지도 않고 지옥 같지도 않다. 몰직히 점점 나빠지는 것만 같다. 그래서 내년엔 잘 될 거라는 말을 할 자신이 조금도 없다. 그런데 지난 한 해 내가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명백한 사실은, 내버려 둬도 잘 될 거라고 믿고 노력하거나 가꾸지 않은 모든 것은 2년 3년 안에 바닥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난 그 교훈만 기억하고 내년을 살려고 한다. 그리고 이 불완전함을 공유하는 것이 서로에게 좋다고 믿는다.
지금 내가 해야 하는 일 꾸준히 하고 내 곁에 있는 이들 중 소중한 사람들에게 꾸준히 조심스럽게 잘하는 것. 그것 말고는 열심히 하려야 열심히 할 수 있는 다른 선택지 자체가 없다. 올해가 끝나간다. 너무 좋다. 너무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