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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담 May 28. 2016

벗어날 수 없는 나와의 동거

Aprilis 의 독거 에세이 5  ㅡ  끝없는 낯선 일들

나의 혼자살이는 원룸에서 시작됐다. 테라스가 있어서 나름 정돈되게 살 수 있었고 아기자기하게 방을 꾸미며 나름 만족하며 살았다. 손바느질로 커튼과 베갯잇을 만들기도 하고 페브릭으로 벽을 꾸미기도 하면서... 내가 자리 잡은 석촌 호수 근처 동네엔 장을 보면 스티커를 주는 잘 나가는 슈퍼마켓이 있었고 거기서 스티커를 모으며 먹을 걸 사다 먹었다. 처음엔 모든 생필품이 결혼한 언니와 엄마가 챙겨준 샘플들이었다. 세제, 섬유 유연제, 빨랫비누, 주방용 소모품들... 그러다 어느 날 세제가 떨어졌고 난 처음으로 오직 나만을 위한 세탁 세제를 사러 갔다. 그날의 기분이 아직도 생생하다.


난 무척 슬펐다.


혼자 사는 삶에 대한 환상에 세제 선택 같은 세부 사항은 없었다. 성분도 효능도 모르고 그저 본 적 있는 것을 골라잡고 한가득 무겁게 안고 돌아오며 생각했다. 나 정말 혼자 사는구나. 이런 생필품을 사서 써야 하는구나. 이렇게 큰 세제를 다 쓸 때까지 내가 혼자 살까? 그땐 그렇게 생각했다. 처음 전기세를 낼 때도 지방세를 낼 때도 처음 약을 사러 갔을 때도 그런 낯선 느낌을 느꼈었다. 그런데 신기하다. 뭔가에 익숙할라치면 그냥 그 시간이 지나가 버리고 계속해서 상황이 바뀌었다. 난 상상해본 적 없는 많은 일을 배워야 했다.

 

낯선 일이 끝도 없이 생겼다.


가장 힘든 일은 무거운 것을 옮기거나 드는 일이고 난감한 것은 정말로 못 하는데 안 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처음으로 혼자 바퀴벌레를 잡았을 때, 무서운 꿈을 꾸고 혼자 깼을 때, 아무도 없는 방에서 어떤 소리를 들었을 때, 천장이나 바닥에 문제가 생기거나 뭔가를 엎지르거나 돈이 없거나 갑자기 아팠거나 정신병자 같은 남자 원장에게 협박을 받거나 갑자기 직장을 잃었을 때 항상 못할 것 같았고 절망적이었고 속수무책이라고 느꼈지만 정말 신기하게도 그때그때 어떻게든 버텨냈다. 내가 나와 이혼할 수 없고 내가 나에게서 탈출할 수 없으니 달리 방법이 없다.


'안 할 수' 없으면 하게 된다.
다른 길이 없으면 어쩌겠어.


이 집으로 이사 온 지 6년쯤 됐을 때 조금씩 방충망 쫄대 접착면이 떨어져 내렸고 난 그걸 문구용 실리콘과 양면테이프로 덕지덕지 보수해서 어찌어찌 넘겼었다. 망이 부식되어 낡아가면서 벌레들이 날아들어도 난 계속 그 방충망이 '버텨주기'만을 바랐다. 정말 정말 귀찮았다. 또 어딘가 알아봐야 하고 사람을 불러야 하고 일 하시는 분과 마음이 맞아야 하고 청소도 해야 하고... 어리석지만 정말 그런 기분 때문에 계속 버텼다. 정작 방충망은 못 버티고 낡아가는데...


2년을 더 버티다가 큰 맘먹고 사람을 불렀는데 새시문이 아니면 못 한다고 가버리고 당일 끝내야 하는 궁극의 상황 때문에 절박한 맘으로 철물점에 갔을 때도 난 내가 그걸 직접 하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철물점 아주머니의 친절한 설명과 격려가 아니었으면 난 몇 만원을 내고라도 출장 서비스를 부탁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아주머니께선 작업환경이 위험한지를 확인하기 위한 몇 가지 질문 후에 직접 시공을 제안하셨고 그것이 정말 신묘했다.


네가, 그러니까 너 정도 되면,
직접 할 수 있다.


아주머니는 책망도 비웃음도 없이 몸짓과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정말 놀라운 화법이었다. 나에게 불가사의한 용기가 생겼다. 이렇게 거창하게 표현할 정도로 매우 확연한 심리 변화를 인지하며 돌아왔다. 방충망과 쫄대를 들고... 아주머니는 창 치수도 잘 모르는 나에게 남는 재료는 그냥 다시 가져와도 된다며 넉넉히 챙겨주셨다. 외상으로...

길에선 상 파는 할아버지께서 영업 중이셨다.

창을 모두 떼어내고 깔끔하게 쭉쭉 붙이려던 계획은 난관에 부딪쳤다. 창을 떼어낼 수 없는 창틀이었다. 그리고 바깥벽 타일은 굴곡이 있었다. 중간에 섬세한 손길이 필요했고 엄청나게 먼지가 날렸고 반반씩 하느라 진땀이 났고 쫄대가 기존 틀에 좀 안 맞아서 끼우느라 엄지 부르터가며 애썼지만, 버틴 시간이 우스울 정도로 금세 작업이 끝났다. 사온 재료의 3분의 1만 썼다. 맨 위의 쫄대 외엔 모두 멀쩡했다. 내 긴 망설임이 민망할 정도로 간단했다. 하지만 힘들었다. 잘 한 것도 아니다.

아, 그만둘 수 없어서 한다.


이 생각을 작업하는 내내 했다. 정말 너무너무 하기 싫은데 싫다고 안 할 수도 없고 심지어 못한다고 '못 할 수' 있는 주제도 안 되니 끝까지 가는 수밖에 없었다. 이 생각을 반복적으로 계속했다. '안 해도 되면 얼마나 좋을까. 나밖에 없어서 한다.' 날이 덥고 방충망이 있어야 창을 열 수 있고 에어컨을 들이기 전에 이 작업이 이번 주에 끝나야 하는 이 빡빡한 상황으로부터 도망갈 재간이 있었다면 당장 찡얼대며 그만 둘 성격의 나이지만,


성격은 문제 해결에 아무 도움이 안 된다.


내 '상황'은 혼자 사는 내내 내 취향과 성격을 비웃어 왔다. 난 그걸 잘 안다. 주저앉아 있어봤자 나중에 일처리만 복잡해진다. 난 나를 무시하고 묵묵히 일을 마쳤다. 바닥 청소까지 다 마치고 먼지를 씻어내며 욕실 창 방충망까지 다시 갈아버렸다. 이건 훨씬 빨리 끝났다. 하기 싫은 생각도 안 들었다. 혼자 산다는 상황이 나를 여기까지 길들였다. 어차피 할 거, 시작했으면 마무리까지. 그리고 난 여전히 이런 거 하기 싫어하는 성격이다.


시공 후 쾌적하게 휴식 중


 오래 혼자 지내면서 상황을 원망하거나 혹시나 하면서 주변을 둘러보는 시간이 훨씬 줄었다.  성숙해지고 뭐 그런 거랑은 거리가 멀다. 그냥 그게 가장 합리적이라 그렇다. 좀 비합리적일 수도 있는 믿음이 하나 있는데 세상엔 생각보다 좋은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오늘 그 철물점 주인아주머니 같은 분들이 도처에 무심하게 버티고 있다가 '상상 못한 일'을  대신 설계해 주고 안내해 주는 경우를 많이 봤다. 배울 자세만 있으면 도처에 선생님이다. 그들에게 배우지 않으면 고립된다. 오늘 철물점 선생님께서 해주신 가장 좋은 말씀은 '너무 팽팽하게 안 해도 돼'였다. 난 그 말에 맘이 편해져서 느슨하게 작업했다. 망이 울어도 신경도 안 썼다. 잘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뿌듯했고 만족스러웠다.
이제 나는 안 해본 일을 하면 기쁘다.  

 

방을 비추는 창 밖의 가로등이 더 밝아졌다.

싫은 일은 끝까지 싫고 잘하게 된다고 좋아지지도 않으며 반복해도 안 느는 일도 있다. 안 좋아하는데 결과가 좋은 일도 있다. 중요한 건 그 일을 할 사람이 나밖에 없으며 잘하고 못하고에 신경 쓰는 건 바보 같은 짓이고 남도 내 수행의 결과를 함부로 평가해선 안 된다는 사실이다. 상대적으로 잘 하거나 잘나서 감사하는 삶은 가치를 타인에게서 찾는다. 그런 삶은 누군가보다 빛나야 숨을 쉰다.

 

남보다 잘 살려고 사는 것이 아니다. 서로의 가치를 알아 가려고
굳이 사는 거다.


난 오늘 우글쭈글 못난 내 방충방 덕분에 행복하게 잠든다. 누군가의 철제 새시 방충망도 누군가의 행복한 단잠을 위해 수고하리라 믿는다.


 

윗 줄은 그림 선생님의 샘플 습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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