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의 독서일기 4ㅡ2
4. 싸움을 거부하면서
나는 그토록 많은 책을 읽었던 것이다... 하지만 모든 독학자들처럼 난 내가 책에서 이해한 것에 대해서는 전혀 자신이 없다. 그저 언젠가는 마치, 보이지 않는 가지들이 갑자기 뻗어 나 내가 산발적으로 읽은 모든 것들이 서로 엮어 지식 전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가,
그러다가 문득, 의미를 잃어버리고, 본질을 놓치고, 또 같은 줄을 다시 읽은들 아무 소용도 없고, 그리고 읽을 때마다 조금씩 더 나를 피해 달아나는 것 같았다. 그때 나는 메뉴를 몰두해서 읽은 다음 배가 부르다고 믿는 한 늙은 미친 여자 같아 보였다.
아마 이런 소질, 이런 맹목은 독학의 등록상표인 듯하다. 독학은 좋은 교육이 제공하는 확실한 지침을 주진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식적인 말과 글이 칸막이를 치고 모험을 금지시키는 바로 그곳에서 독학은 독학자에게 ‘생각의 자유’와 ‘종합’이라는 선물을 선사한다.
<고슴도치의 우아함 > 르네의 말
(...) 그래서 뭐? 저게 세상의 움직임이라고? 완벽함의 가능성을 영원히 썩게 만든 저 미세한 간격이? 나는 엉망이 된 기분으로 삼십 분 정도 가만히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사람들은 그녀가 다른 한 명을 따라잡길 바랐을까? 왜 동시적이지 않은 저 동작이 그토록 고통을 주는 걸까?
그 이유는 그리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모든 흘러가는 것..., 우리가 말했어야 했던 모든 말들, 우리가 했었어야 했던 몸짓들, 어느 날 갑자기 솟아올랐지만 우리가 잡을 줄 몰라서 영원히 무 속으로 사라져 버린 그 최고 최상의 그 기회들... 간발의 차이의 실패...
하지만 '거울 뉴런' 때문에 전혀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그건 당혹스럽고, 게다가 어쩌면 어렴풋이 (나를 짜증 나게 만드는) 푸르스트적인 생각이다. 만약 문학이, 사람들이 자신의 거울 뉴런을 발동시키기 위해, 또한 싼 가격에 전율을 느끼기 위해 우리가 쳐다보는 텔레비전이라면? 그리고 더 나쁜 것은, 문학이 우리가 망친 모든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텔레비전이라면?
<고슴도치의 우아함 > 팔로마의 말
존재의 본질. 진실에 대한 갈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