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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담 May 16. 2019

소나기

가끔 생각나는 어떤 기억

팟캐스트를 다시 시작하려면 원래 녹음기를 샀어야 했다. 너무 비싸서 아이폰에 배분기로 이어폰 마이크를 세 개 연결해서 녹음할까 했는데 녹음파일과 편집을 맡이 주는 민군에게 말했더니 그냥 녹음하는 것이 낫다고 그러지 말란다. 그러다가 자기 녹음기 빌려줄 테니 받으러 오라고 해서 민군이 공부하는 음악학원 앞 버스정류장에서 만났다.


정류장 버스에 앉아 저쪽을 바라보면서도 이쪽으로 걸어오는 회색 후드 집업을 입은 호리호리한 청년이 민군인지 모르고 어디서 오나 찾고 있었다. "선생니임~." 소리에 그제야 알아봤다.


빗방울이 쏟아질 것 같은 하늘 아래 바람이 좀 부는 정류장 벤치에 앉아서 조작법과 주의사항을 들었다. 짚어주는 포인트와 설명이 명확하다. 전문가는 다르구나 싶다. 무엇보다 너무 고맙다.


"고마워. 밥은 먹었다고?  콜라 사줄까?"(얜 하루에 콜라를 몇 리터씩 마신다.)
"아! 방금 사이다 마시고 왔어요."
"그럼 콜라 쿠폰을 보내주지~!"


길 건너 돌아오는 버스정류장까지 걸어가면서 비올 것 같은데 우산 있냐고 묻는다. 괜찮다 말하고 헤어졌다.


민군은 그가 졸업을 앞둔 중3이었던 겨울에 처음 만났다. 의사소통이 정말 느리고 아주 분명한 목소리와 발음으로 '잘 모르겠다'라고 아주 자주 말했었다. 굉장히 해맑게 공부를 전혀 한 적이 없다고 했고 중학교 때 학교 등수가 대단했었다. 뒤에서 세는 것이 더 빨랐던 등수나 부실한 성적에도 별 신경을 안 썼고 인터넷에서 떠도는 각종 루머에 엄청나게 열을 올리고 별별 얘기를 잘 늘어놓았다. 차분히 하나하나 논리적으로 따져주면 고분고분해지긴 했다. 고집이 엄청난데 인정은 잘하는 정말 독특한 아이였다.


한 줄의 글을 읽으면 다음 줄을 읽을 때 윗줄을 잊어버렸고 현재 읽는 줄의 내용이 어떤 의미냐고 물어보면 담담한 표정으로 날 보며 모르겠다고 했다. 집중이라는 것을 아예 몰랐다. 1:1로 한 페이지를 두 시간씩 같이 읽은 적도 아주 여러 번이었다. 박지원의 <통곡할 만한 자리> 수업을 마쳤을 땐 내가 내용을 다 외워 버렸다. 언성도 높이고 타이르고 설득하고 화도 내고... 둘 다 참 힘든 시간을 보냈다. 수업 후에 눈물을 훔치며 죄송하다고 자기가 바보 같다고 말하고 간 적도 있다. 민군을 가르치는 일은 어려웠다. 뭐 이런 애가 있나 싶을 때도 많았다. 하지만 싫었던 적은 없다.


인문학 공부에 대해서 처음 듣고 책을 읽은 다음엔 라틴어를 배우겠다고 라틴어 교재를 사 왔고 이후에도 여러 가지 책을 권할 때마다 열심히 읽었다. 책에 대한 내 설명을 유심히 들었던 기억이 난다. 영화 <브이 포 벤테타>를 너무 좋아해서 그 영화 속의 흑백 영화를 구해다가 워낙 많이 봐서 영어 대사가 들린다고 했었다. 나에게도 영화를 보내주고 가끔 내 노트북을 봐주기도 했다. 내 생일에는 기억에 남는 선물을 준다며 4월에 엄청나게 큰 수박을 사 왔고 (집에 못 들고 갔다.) 그다음 생일엔 수박바를 20갠가 30갠가 사 왔다.


고1이 되어 본 첫 시험에서 국어는 거의 2백 등은 올랐었다. 그때 70점대였나 처음 받아보는 점수라며 무척 만족해했다. 나도 만족했다. 그 태도와 마음이 좋았다. 일렉트로닉 음악 작곡을 전공하기로 하고서 그쪽 입시는 실기만 준비하기 때문에 학원을 다닐 필요가 없었지만 이후에도 한참 동안 음악을 하면서 국어를 계속 배우러 다녔다. 국어 수업을 안 빠지려고 음악 학원 스케줄 맞추느라 무척 애를 썼었다. 가끔 작곡한 곡을 들려주기도 했다. 지금 팟캐스트 오프닝 음악도 이 아이가 작곡해 준 곡이다.



학원을 마친 이후에도 종종 연락을 주고받았다. 음악을 너무 늦게 시작해서 애초에 재수를 각오하고 있었고 올해 입시는 안 됐다. 그 와중에 국어 4등급이라고 자랑하며 고맙다고 전화 왔었다. 자기 평생에 딱 선생님하고 공부한 기간 빼곤 공부한 적이 없는데 4등급 나온 거 기적이라며. 내가 봐도 이 아이가 4등급이 나온 건 기적이다. 재수해서 1년 더 공부한다며 아무렇지 않아 했다. 오늘도 덤덤하게 좀 더 공부해야 할 것 같아요. 그런다. 공부 말이다. 음악, 작곡 공부. 그 애가 하고 싶어 하는 진짜 공부... 이쪽 얘기할 때는 천재소년 같은 느낌이다.


이날 한 10분도 안 되는 짧은 만남을 하고 돌아오며 마음이 참 이상했다. 녹음기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도 마음이 이상했다. 민군은 참 좋은 선생님이었다. (사실 나와 높은 관계 밀도를 형성한 제자들은 대부분 친절한 선생님들이다. 설명도 잘하고 화도 안 내고...)


수능 공부를 안 해도 되는 괴짜 소년 민군과 입시 강사인 내가 관계를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민군 때문이었다. 마치 내가 무슨 좋은 선생님이어서 공부도 할 줄 모르는 아이를 이끌어 준 것 같지만 교육에서 교사가 할 수 있는 건 지극히 한정적이다. 민군은 취향이 분명한 아이였다. 곁에 누가 오는 걸 막거나 누굴 배척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누군가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진 않았다. 다른 선생님들과 어땠는진 몰라도 나에겐 마음을 연 친구였다.


많은 아이들이 질풍노도를 거치며 때로는 투사하고 때로는 회피하며 날 힘들게 할 때도 뭔가 초월한 애처럼 붙박이로 날 믿었다. 나에겐 그런 존재가 무척 소중했다. 내 능력, 내 교수력, 내 인격과 성격 모든 것이 시시때때로 평가받는 숨 막히는 학원 생활에서 유일하게 입시와 상관없이 내 수업을 듣고 싶어서 듣는 애였다.


물론 다른 학생들도 날 따랐지만 이 아이는 입시에 국어 점수가 필요 없는 애였다. 그걸 그 아이 부모님도 알고 계셨고 수능점수가 필요 없는데도 아이를 돈 들여 학원에 보내셨다. 날 볼 때마다 좋은 말을 많이 해주셨다. 이 친구가 날 봐주지 않았다면 오늘 이 녹음기는 내 앞에 없을 것이고 관계라는 것도 없이 소중한 시간들은 물거품이 됐을 거다. 여기 내 의지보단 민군의 선택이 결정적이었다는 것을 난 너무 잘 안다.


사실 얼마 전에 학원 아이 때문에 상처를 크게 받았었다. 정처 없이 밖에서 세 시간을 걷다 12시가 넘어서 집에 들어갔다. 내 긍지와 자존심이 꺾이는 일이었고 이후 마음이 내내 안 좋았었다. 몇 년 안에 꼭 학원가를 벗어나야겠다고 다짐을 하게 됐었다. 진심이 오고 갈 수 없다면 진심을 찾아 나서야 하지 않나 생각했다.


7월을 기점으로 해야 할 일이 많아서 책과 문서를 들여다보고 상당한 양의 메시지를 주고받다 보니 목에 무리가 왔다.  그래도 오늘 민군 얘기를 꼭 쓰고 싶었다. 오늘 이 기분으로... 방금 소나기가 지나갔다. 나와 4년을 함께했던 그 애들은 척박했던 내 학원 생활에 소나기 같은 존재였단 생각이 든다. 그 시대가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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