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한 잠을 깨우는 모스크의 기도 소리

160708 - 혼자 여행기 1 말레이시아

by 호담

숙소 옆에 모스크가 있다. 매일 다섯 번 기도회기 있다면서 새벽 5시에도 아주 크게 그 소리가 들릴 거라고 했다. 여행지의 첫날밤은 늘 생각이 많아 설치곤 했었는데 이곳에 오기 전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혹사했던 탓인지 완전히 깊이 잠에 떨어졌었다. 그러다 슬며시 눈이 떠졌다. 아련하고 서글픈 것 같은 무슬림 남성의 잔잔한 곡조, 모스크에서 울려 퍼지는 기도 소리... 내 마음의 간절함이 저런 곡조였던 것 같다. 절박하지만 바쁘지 않고 꾸준한 마음...

혼자 여행을 다닌 지 이제 겨우 1년 됐다. 혼자라고 하지만 외국일 땐 항상 공항에 누군가가 데리러 나왔고 그 지역엔 아는 사람이 있었고. 내가 오롯이 혼자인 건 비행기와 공항에서의 시간뿐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유심과 데이터도 혼자 사야 하고 KL Cantral까지 혼자 이동해서 지인을 만나기 전까지 커다란 짐을 보관하는 곳도 알아내야 했다.


말레이사 아는 처음 와본 나라라서 긴장도 됐고 사전에 너무 준비가 없었기 때문에 자신이 없었다. 나오는 출구조차 헷갈려서 환승 게이트에 한참을 서있다가 나오기도 했다. 그래도 생각보다 척척 미션을 완수하며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는 한 시간짜리 버스가 아닌 Express train에 오르는 것까지 막힘 없이 진행됐다. 사람들은 친절했고 영어도 잘 통한다. 공항에서 환전한 3만 원을 거의 다 썼다.

Express train으로 KL Cantral까지 30분 걸린다. 4시 20분에 출발하는 열차를 타고 이동했다. 하늘엔 구름이 흰 물감을 쏟은 듯 가득했다. 열차에 한국인은 나뿐이었다. 제자가 메신저로 보내준 음악을 들으며 시골풍경이 도심으로 변하는 걸 지켜봤다.

도착한 종점 KL Cantral 은 쇼핑몰이다. 한참을 연구 끝에 짐을 맡기고 3시간 동안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건물만 보면 아직은 그냥 서울 같은 느낌... 그런데 사람들, 엄청나게 다양한 인종과 갈피가 없는 다양한 옷차림. 특히 여성들의 표정이 정말 밝고 아름다웠다. 난 커피숍에서 글을 쓰다가 몇 층을 오가며 사람들을 구경하고 서점에서 몰래몰래 책 읽는 사람들을 촬영했다. 몰입한 고요가 너무 아름다워서.7..


8시에 Sophee 님이 오셨다. 난 열흘 동안 이분이 하우스 메이트들과 사는 도심의 아파트에서 지낼 계획이다. 3년 전 설에 필리핀에서 처음 만나 깊은 교제를 나누게 된 너무 소중한 분. 매번 이분 덕에 먼 여행을 떠날 용기를 낸다. 반가운 포옹과 인사를 나누고 현지인만 가득한 식당에 둘이 마주 앉아서 얘기를 나누면서야 실감이 났다. 내가 외국에 와 앉아 있고 이곳의 일상에 한국의 일상을 안고와 이분과 마주했다는 것... 우린 긴긴 얘기를 나눴다.

한 분야의 전문가로서 어떤 지점을 지나간다는 것과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것의 의미, 변화의 필요성과 멈춰야 하는 시기의 불안, 그 시기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 그리고 우리가 느끼는 자신의 정체와 한계에 대한 자각... 자기 인식의 중요성에 대한 얘기들을 했다. 너무나 분명하고 확실한 신념을 가지고 있기에 더 크게 느낄 수밖에 없는 자기모순 또는 편협함과 마주하게 된 순간들의 기억을 나눴다. 그리고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갖추고서야 얻은 자유에 대해서도...


다시 전철을 타고 도착한 숙소는 정말 깔끔하고 예뻤다. 흰 벽, 타일이 깔린 바닥, 반짝 거리는 야경... 여기서 열흘을 사는구나... 같이 사는 중국인 대학생 친구 션과 쉔이랑 인사하고 난 내일모레 한국으로 떠나는 분과 같이 쓰기로 한 방에 짐을 풀었다. 완전한 현지의 삶 속으로 파고들 수 있는 이런 여행에 초대된 것이 기쁘다. 여기선 또 어떤 여행지를 만나 어떤 그림을 그리게 될까...

기록하는 내내 잔잔한 기도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잠든 사이 쌓인 카톡과 보이스톡이 상당하다. 난 5년 동안 하던 학원 강사일을 그만두기로 결정한 다음날 이곳으로 왔다. 그리고 몇 가지 나에 대한 숙제를 안고 왔다. 나이가 점점 들어가며 늙어가는 외모의 우울함, 경력과 실력이 점점 쌓여감에 따라 많아지는 생각과 강사로서의 한계, 옳다고만 믿었던 사고방식과 삶의 형식에 대한 의문과 해보지 않은 관계 맺기의 두려움... 하나씩 꺼내서 대화를 나눠보고 싶다. 끌어안고 안전하려고 하는 나를 타일러 저쪽으로 가보자고 권할 수 있을지... 어쩌면 나도 5시마다 일어나 나의 신께 기도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주 오랜만에 신의 이름을 나직이 불러보게 되는 새벽이다. 이제 다시 조용해졌다. 자야겠다. 내일을 위해.


아침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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