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잎 날리는 날의 추억
벚꽃이 찬란한 사월, 여행을 떠났죠. 누나와 형아가 함께 떠난 여행은 아니었지만 여행은 언제나 신납니다. 긴 산책이 포함되어 있다는 거니까요. 벚꽃이 만개한 계절이었으니 사월이었을 거예요. 여행지는 처음 가보는 단양이라는 낯선 도시였어요. 벚꽃 잎이 눈처럼 나풀거리며 내리는 산책로를 천천히 걸었어요. 열세 살 치리오는 작년부터 빨리 달리는 게 힘들어졌어요. 조금 빠른 걸음으로 걷다가 천천히 걷다가를 반복하는 산책을 하고 있거든요. 서서히 몸의 변화를 받아들이며 지내고 있어요.
-- 치리오는 체력관리를 정말 잘하는 거 같지? 저 다리로 아직도 길게 산책하는 것 보면 참 대단해.
-- 걷는 뒤태가 정말 우아해. 저 오른쪽으로 살짝 기운 듯한 걸음걸이가 은근 매력 있단 말이야.
아빠와 엄마의 대화가 치리오 이야기로 이어지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왠지 더 매력적으로 걷고 싶더라고요. 잠깐 멈춰서 치리오의 주특기인 스트레칭도 기품 있게 선보이면서요. 벚꽃 잎 날리는 길을 우아하게 걷지 않을 재간이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봄날이었어요. 우아한 걸음에 나이가 한몫한 셈이죠.
예전에 승아 누나랑 산책할 때 치 보면서 귀엽다고 하다가 웃기다고 했죠. 그 원인이 약간 기운 듯한 걸음걸이 때문이란 걸 알게 됐어요.
여행의 시작은 좋았어요. 벚꽃길 산책을 마치고 단양에서 꽤 유명한 사찰에 가기로 했죠. 평일에 하는 여행이라 벚꽃 철인데도 도로가 한산한 편이었어요. 안전하게 사찰 주차장에 도착했어요. 사찰은 어떤 곳일까 설레는 마음으로 엄마와 아빠 사이에서 얌전히 걸었어요. 입구에 들어서자 관리인이 불렀어요. 반려견 입장불가라고 합니다. 이게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린가요?
엄마 아빠는 마주 보며 난감해했죠. 그럼 치리오는 어떡하지, 하는 표정이었어요. 속상하지만 어떡해요? 사찰 풍경이 궁금하긴 하지만 반려견 입장 불가라니까 함께 돌아서야죠. 사찰 말고 다른 곳을 여행하면 되잖아요. 이건 어디까지나 치리오 마음이었어요. 엄마 아빠 마음이 어땠는지 그때까지는 몰랐죠. 그저 나와 같은 마음이려니 했거든요. 그런데 이게 무슨 일입니까. 엄마가 나를 안고 부탁하는 거예요.
-- 치리오, 엄마랑 아빠가 얼른 사찰을 둘러보고 나올게. 치리오도 사찰 구경하고 싶겠지만 사찰 규정이 그렇다니 어쩔 수 없잖아. 엄마가 시진 찍어서 보여줄게. 엄마가 여기 간식 챙겨놓고 갈게. 봄바람도 시원하니까 창문 조금 열어두고 얼른 다녀올게. 정말 미안하지만 잠시 혼자 있어줄 수 있겠지? 치리오 착하지?
나는 너무나 간절하게 눈빛으로 말했어요.
- 그건 너무 어려운 부탁이에요. 나 혼자 차 안에 있는 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슬픈 일이에요. 낯선 장소에서 혼자는 정말 무섭거든요.'
엄마에게 치리오 마음이 제대로 전달 안된 게 분명해요. 어떻게 엄마가 치리오한테 이럴 수 있을까요? 집이 아닌 다른 공간에서 가족과 떨어져 본 적이 한 번도 없는 치에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요? 치리오는 너무나 두려웠어요.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다는 게 이런 거군요. 치 마음을 무시한 채 엄마와 아빠는 덩그러니 차 안에 나를 둔 채 사찰로 올라갔어요. 처음엔 절망한 채 엎드려서 울었죠. 얼마나 울었을까요? 너무 무서웠어요. 주차장이라 차들이 왔다 갔다 했고, 살짝 열린 차창으로 누군가 치리오를 들여다보기도 했죠. 말을 붙여오는 사람도 있었고요.
갑자기 서럽고 슬퍼서 소리 내어 짖었어요. 그 소리에 사람들이 차창 가로 모여들었어요. 사람들이 쳐다보고 있으니 더 처량하게 느껴졌죠. 더 소리 높여 짖어댔어요. 쳐다보지 말라고 외치듯요. 알아들은 사람은 제 갈 길 갔지만, 몇 사람은 안타깝다는 듯이 계속 쳐다보는 겁니다. 뭐 도와줄 일이 없을까 하는 표정이었지만 그들이 뭘 어떻게 할 수 있겠어요. 목이 쉴 만큼 울어댔으니 힘이 들더라고요. 짖기를 멈추자, 지켜보던 사람들도 떠나갔어요. 졸음이 몰려왔어요. 그래도 슬프고 힘든 모습을 엄마 아빠께 확실하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졸음을 쫓으려 애를 썼죠. '졸음 앞에 장사 없다'라는 말에 공감하면서 졸다 깨다를 반복했죠.
한 시간쯤 지나서 차 문 여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헐레벌떡 문을 연 엄마가 다정하게 나를 감싸 안고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를 반복했어요. 급하게 뛰어왔는지 숨찬 상태로 치리오 눈을 한참 바라봤어요. 진짜 치한테 미안해하는 눈빛이었어요. 소변이 마렵던 차였는데 잔디밭으로 데려가서 다행이었어요. 그런데 이게 웬일이죠? 하도 쪼그려 앉아서 긴장했던 탓일까요? 일어설 수가 없는 거예요. 기웃한 자세로 볼일을 억지로 보긴 했지만 걷는 게 힘들었어요. 나도 모르게 절뚝거리게 되더라고요. 절뚝거리는 건지 뒤뚱거리는 건지 모를 치리오 모습을 보고 엄마 아빠도 엄청 놀라면서 걱정했어요.
놀라는 표정을 보고 치를 향한 사랑과 관심이 느껴졌어요. 순간 안도하면서 엄마 아빠를 이해해 주기로 마음먹었죠. 그러고 보니 절뚝거리던 다리도 정상으로 돌아왔어요. 그런데 엄마 아빠가 볼 때면 나도 모르게 절뚝거리고 있더라고요. 나를 향한 사랑과 관심을 계속 붙잡고 싶었던 겁니다. 걱정하는 엄마 아빠를 안심시켜줘야 하는데 말이죠. 이러면 안 되는데 싶었지만 엄마 아빠가 볼 때면 나도 모르게 다리를 절고 있더라고요. 제대로 걸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 말이죠. 혼자일 때는 제대로 걷다가 엄마 아빠가 볼 때면 나도 모르게 절뚝거리는 연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웃기는 상황이죠. 이박 삼일 여행을 마칠 때까지 엄마 아빠는 나를 계속 안고 다녔어요. 잠깐 걸어볼래 하고 내려주면 치리오는 또 일부러 절뚝거렸죠.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다음날 아침, 엄마는 병원에 갈 준비를 했어요.
-- 치리오, 병원 가자. 치료받고 나면 편하게 걸을 수 있을 거야.
엄마가 나를 안고 현관문을 나섰어요.
치는 계속 끙끙거리며 눈빛으로 의사 표현을 했어요. 치리오에게 눈을 맞추고 있는 엄마에게 진심 어린 눈빛으로 말했어요.
- 엄마, 치리오 걸을 수 있어요. 내려 주세요. 걸어볼게요.
의아해하는 엄마 표정을 보고 다시
- 엄마, 치리오 걸을 수 있다니까요.
마음이 통했는지
-- 자, 나왔으니 다시 한번 걸어볼래?
- 당근이죠. 걸을 수 있어요. 보세요.
엄마를 확실하게 안심시키기 위해 달리고 싶었지만 갑자기 달리면 놀랄 것 같아서 일부러 천천히 걸었어요. 절뚝거리지 않고요. 일종의 쇼를 한 거죠. 아니 연기라고 해야 할까요?
두 눈을 크게 뜨고 엄마가 놀라면서 말했어요.
-- 치리오, 괜찮은 거야? 정말 걸을 수 있는 거야? 이렇게 갑자기?
치리오 눈을 한참 들여다봤어요. 왠지 멋쩍었죠. 마음을 들킨 거 같았거든요. 오래도록 치를 빤히 들여다보다가 엄마가 다시 물었어요.
-- 치리오, 너 일부러 그런 거야?
치리오가 달리 무슨 말을 하겠어요. 너무 황당해하는 엄마의 얼굴을 본 순간 할 말은 많았지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죠. 왜냐면 엄마의 눈 속에 비친 치리오가 알고, 치리오 눈에 비친 엄마가 서로 아는 게 있거든요. 이심전심이죠. 치리오가 왜 쇼를 해야 했는지, 연기의 달견처럼 행동했는지 구구히 설명하지 않아도 엄마는 이미 치리오를 이해하고 있다는 걸 눈빛을 통해 알았으니까요.
- 엄마, 미안해요. 엄마, 사랑해요.
엄마의 마음이 치리오 마음에 전해졌어요.
-- 치리오, 엄마도 미안해. 치리오, 사랑해.
지금까지 열세 살 노견 치리오의 웃기지만 한편으론 슬픈 벚꽃여행이야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