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류 난간에 걸터앉은 여인이
작고 가는 붓을 종이컵에 씻는다
배경이 트여서 가슴이 뚫린다
긴 다리가 분홍빛 난간 위로 성큼 올라선다
바스락바스락바스락
자연에서 나는 소리, 바람 소리, 자동차 소리
여리고 미세한 소리여서 들리지 않았을 수도 있어
긴 다리가 휘청거렸고, 철새 몇 마리 갈빛 하늘에 걸려있어
전깃줄 사이로 나는 검은 새 날갯짓을 크로키로 남겨두고 싶어
큰 나무 두 그루 사이로 나란히 앉은 두 사람
연두 캠퍼스에 시나브로 학생들이 오가고 있고
비낀 시선의 두 사람 대화는 중요하지만 의미 없어 보였고
의미 있어 보이는 대화는 하나같이 중요하지 않아
소주, 맥주, 와인, 막걸리가 잔으로 오가며 말하고
아래로 흐르는 건 뭐고 위로 거슬러 오르는 건 뭘까
상류와 하류의 차이는 뭘까, 나는 어디에 있는 걸까
스쳐 지나가는 것들 낚아채서 관객 눈앞에 들이미는 건 뭘까
발길 멈추게 해서 마음 잡아두는 거야, 지금 여기 순간에
웃다가 울다가 역정 내다가 대체 뭘 말하는 걸까 싶다가도
스크린에 펼쳐진 모두가 내 얘기란 걸 느끼는 순간이 찾아와
그런 순간 만나고 싶은 관객은 그의 영화 기다려, 어제가 그날.
바스락바스락바스락, 장어보다 라면 생각 간절했어
내일보다는 오늘, 오늘보다는 어제를 돌아보게 했어
몇 개의 장면과 소리, 음식 냄새로 기억된다면 그걸로 충분해.
<20250114 홍상수의 32번째 영화, [수유천] 관람 후 리뷰 詩로 기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