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 제남도서관

큰엉해안경승지 추억과 함께

by 물들래

제주 남원읍 가까이에 위치한 제남도서관, 산뜻하게 리모델링해서일까? '카페보다 도서관'이라는 표현이 먼저 떠올랐다. 1996년 설립된 제남도서관은 8만 권이 넘는 도서를 보유하고 있었다. 제주도교육청 소속 도서관 이어서일까? 그림책 마라톤이나 어린이 다독왕 등 건강한 프로그램을 실시하며 학생들의 독서를 독려하고 있었다.


우선 주차를 하고 도서관 뜨락을 둘러보았다. 넓은 주차장 한쪽으로는 봄날 그늘을 만들어줄 등나무 쉼터가 마련돼 있었다. 건강하고 푸릇한 상록수를 바라보노라니 찌붓한 마음이 정화되는 듯싶었다. 제남도서관은 2024년 봄날 방문 이후 이번이 두 번째다. 2024년 방문했을 때 만났던 인상적인 현수막이 생각났다. 가끔 마음에 남던 교보문고 현수막처럼 내용을 기억하고 싶어서 사진까지 찍어두었던 기억.


"마음 둘 곳 없으면 도서관에라도 와, 네 편이 되어 줄 많은 이야기들이 있어."

황영미의 <한밤에 만난 두 사람> 중


현수막 내용에 우선 마음이 든든해졌던 기억, 도서관 이용자들을 향한 도서관 측의 초대가 다정한 현수막에서 그대로 전해졌다. 물론 어느 책 속 내용을 인용한 거지만, 그 글을 읽고 도서관에 들어섰을 때 왠지 환영받는 기분이 들었다.


도서관 로비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신문이 반겨준다. 전국 많은 도서관을 방문했지만 제남도서관 신문 zone은 특별했다. 각종 신문이 깔끔하게 비치된 공간에서 잠깐이지만 몇몇 일간지를 훑어봤다. 인터넷 신문만 읽다가 종이신문을 읽으려니 아날로그 추억이 돋았다. 남원에 사는 일부 주민들은 어쩌면 신문 읽을 목적으로 방문했다가 자연스레 독서로 이어질 수도 있을 듯싶었다.


2층 책누리 종합자료실에 들어서자 밝은 톤의 실내가 시야를 시원하게 확장시켜주는 듯했다. 넓은 테이블이 우선 눈길을 끌었다. 테이블에 노트북을 펼치고 작업을 시작했다. 어제오늘을 잊지 않기 위해(무엇을 했는지, 느꼈는지, 생각했는지) 기록으로 남겼다. 따뜻한 햇볕이 드는 창가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려니 살금살금 졸음이 밀려왔다.


두 손을 뻗쳐 스트레칭하고 3층 볕누리 휴게실로 이동했다. 푸른 하늘 저 멀리 한라산이 시야에 잡혔다. 커피 타임 중 한라산을 조망할 수 있는 도서관이라니 멋지지 않은가.


날씨가 좋으니 이제 산책을 나서야겠다. 제남도서관은 남원생활체육관이 가까이 있어서 몸과 마음을 동시에 건강하게 관리할 수 있는 고장이 아닐까 싶다.


제남생활체육관을 지나 독특환 외관의 빌라 앞에 섰다. '월살이, 연살이' 등 장기투숙하는 여행객들이 주로 머무는 곳인 듯싶었다. 장기일수록 할인율이 크다는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언젠가 필요할 수도 있을 듯싶어 연락처를 저장해 두었다.


제주 신영영화박물관 앞을 지나는데 2003년 1월, 가족과 함께 방문했던 때가 생각났다. 영화를 테마로 이토록 훌륭한 박물관을 건립할 수 있다는 것에 감탄했었던. 어쩌면 그 당시 국내 최초의 영화박물관이었기에 더 놀라웠다.


정성 가득한 전시품과 전시 내용을 둘러보면서 영화에 대한 설립자의 애정을 실감했던 때가 떠올랐다. 무엇보다 평생 술, 담배, 도박을 멀리함은 물론 철저한 자기 관리와 충실한 가정생활을 지속해 온 신영균인의 행보에 뜨거운 박수를 보내고 싶어졌던.


신영영화박물관은 현재 공유재산으로 관리되고 있다. 2021년 11월, 코로나19와 시설 보수 및 재정비로 임시 휴장에 들어갔다. 4년이 지났지만 아직 재개관하지 않은 상태였다. 옛 추억 떠올리며 영화 관련 전시를 둘러보고 싶었으나 아쉽게 발길을 돌려야 했다.


영화인 신영균에 대한 책이 몇 권쯤 있지 않을까 싶어 종합자료실에서 검색해 보았다. 2020년 10월 RHK에서 발간한 <엔딩 크레딧_빨간 마후라 신영균의>가 있었다.


1928년 황해도 출생인 신영균은 100세를 코앞에 둔 천상 영화인이다. 1960년 영화 <과부>로 영화계에 데뷔, <연산군>, <빨간 마후라>, <갯마을>, <미워도 다시 한번>, <대원군> 등에 출연하며 1960년대 한국 영화 전성기를 누렸던 배우다.


내가 관람한 영화는 이중 두 편뿐이다. 작가 오영수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 <갯마을>과 눈물샘을 자극했던 <미워도 다시 한번>은 덧없는 세월이 흘렀음에도 몇 장면은 선명하게 남아있다. 신영균을 대표하는 작품 <연산군>과 <빨간 마후라>를 미관람했다는 것은 영화인 신영균에 대해 모르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 내서 한국영상자료원에 들러 두 편의 영화는 꼭 관람해야겠다.


애지중지 꾸려온 명보극장을 나는 2010년 사회에 기부하기로 결심했다. 내 인생에 크나큰 용단이다. 부동산업자들이 극장 주변을 재개발하겠다며 “500억 원에 팔라”고 해도 꿈쩍 않던 나였다. 충무로는 한국영화의 고향인데, 유서 깊은 극장 하나쯤은 보존해야 한다는 사명감에서다. 260쪽


영화배우 활동 중에도 명보극장 인수, 명보제과 직접 운영은 물론, 사업가로서의 면모를 보였다. 또한 1996년 정치에 입문, 제15, 16대 국회의원을 지내기도 했다. 1999년 국내 최초이자 최대 영화박물관인 제주신영영화박물관을 개관했으며, 2010년 영화 및 예술계 인재 양성을 위해 500억 원 상당의 공유재산을 기증했다. 뿐만 아니라 신영균예술문화재단을 통해 예술인 복지와 후진 양성까지, 어느 누구와도 비길 데 없는 천상 영화인이었다.


“멋진 여배우.” (중략) 간결하지만 진심을 꾹꾹 눌러 담은 말이었다. (중략) 죽는 순간까지도 배우일 단 한 사람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윤정희를 말한다. 190쪽


신영균이 추억한 배우 윤정희를 떠올리자 가장 먼저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에서의 '양미자'가 떠올랐다. 그녀가 쓴 시구도 함께 생각났다.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관객에게 생각하기를 요구했던 영화여서 관람 후 내내 가슴이 아리고 답답했던 기억과 함께.


그곳은 어떤가요, 얼마나 적막하나요... 영화 <詩>에서 양미자가 쓴 시 중 일부


세상을 떠난 친구에게, 엄마에게, 예술인에게, 그리고 여러 지인에게 되묻는다. 엔딩 크레디트는 계속되는데 되물은 질문에 대한 회신이 아직 없다. 끝내기 어려운 질문을 지속적으로 던져준 책과 영화였다.


쉽게 답할 수 없는 질문을 마음에 품은 채, 한낮 그리고 다음날 새벽 두 차례 큰엉해안경승지 올레 5코스 일부를 걸었다. 한낮에 조망하는 큰엉해안경승지보다 아침 일찍 마주한 풍광이 더 아름다웠다. 감탄으로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을 만큼 멋진 경관이었다.


편안한 산책이 가능한 올레코스였지만 풀리지 않은 질문에 대한 답변을 생각하느라 마음은 여전히 부대꼈다. 무거운 질문만 아니었다면 11월 중순 남원해변에서의 찬란한 산보는 축복이었을 텐데. 동백잎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바닷가 파도소리는 그 어떤 클래식 선율보다 아름다웠을 텐데.


잠시 무거운 짐은 내려놓고 걸어야 해,라는 내면의 소리가 있었으나 실제는 그러지 못한 채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었다. 멈추지 않고 밀려오다가 저 멀리 달려가는 파도처럼.


제남도서관'''''.jpg
제남도서관.jpg
제남도서관 볕누리 휴게실.jpg
축복처럼 쏟아지는 햇살을 맞으며 남원해변 산책을 마치고, 제남도서관으로 향하다.
제남도서관'.jpg
제남도서관''.jpg
제남도서관'''.jpg
제남도서관''''.jpg
다음날 아침 일찍 고요한 사위 속에 거센 파도가 출렁이던 큰엉해안경승지 절경에 잠시 넋을 놓고...




월요일 연재
이전 09화성산일출도서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