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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들래 May 01. 2023

서울시향 4월 정기공연

Bad News와 Good News를 오갔던 음악회

공연이 시작되기 전, 공연을 마친 후

지난 4월 19일 서울시향 4월 정기공연은 개인적으로 현대음악에 제대로 입문한 연주회였다. 설레는 마음으로 서울시향과의 세 번째 만남을 갖기 위해 좀 이른 시간에 콘서트홀에 도착했다.


현대음악 대표 해석자이자 지휘자이며 철학자인 데이비드 로버트슨의 위트 있고 세련된 지휘로 만났던 어제의 감동을 조금이라도 휘발되기 전, 리뷰로 남겨 두고 싶었다.


1부에서 연주했던 드뷔시의 곡은 무척 생소한 곡이었다. 개인적으로 드뷔시의 달빛 소나타를 좋아한다. 하지만 어제 들었던 음악은 드뷔시가 영국 여행 중 체험했던 정서와 인상을 영국 민요를 모티프로 하여 작곡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민속 무곡과 이국적인 선율을 느낄 수 있었다. 하프와 현악기에서는 잔잔한 물결을 느꼈고, 관악기의 투명한 음색에서는 따뜻한 봄날이 연상되기도 했다. 4월 정기공연 선곡으로 안성맞춤이란 생각이 들 만큼. 몰입감 좋게 드뷔시의 현대 음악에 빠져들었다.

피에르로랑 에마르 연주가 끝난 후, 커튼콜

2부에서는 현재와 과거, 그리고 미래를 넘나들며 광대한 시간대의 레퍼토리를 연주하는 피아니스트 피에르로랑 에마르가 리게티의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했다. 피에르로랑 에마르는 헝가리의 거장 리게티로부터 일찍이 최상급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명실공히 현대음악의 수호자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다진 피아니스트였다.


연주한 리게티의 피아노 협주곡은 1988년에 완성된 작품으로 난해해서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곡이다. 또한 이 작품은 현대 음악사에서 중요한 레퍼토리를 차지하고 있다.


유튜브를 통해서 현대음악을 가끔 접하곤 했었지만, 이번 라이브 공연에서는 처음 접한 리게티의 피아노협주곡을 피에르로랑 에마르의 연주로 제대로 감상할 수 있었다. 한음 한음에 온 마음과 정성을 손끝으로 뿜어대고 쏟아내던 피에르로랑 에마르의 진지한 뒷모습이 오래 기억에 남을 듯싶다. 아주 강렬한 무대였음에 틀림없다.


피에르로랑 에마르는 리게티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서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서로 대화를 주고받으며 헝가리 애가의 색채와 입체적인 리듬으로 풍부한 선율을 선보였다. 서로 대화를 주고받듯 하던 연주를 관객들은 숨을 고른 채 지켜보았다.


현대미술이 그렇듯, 현대음악도 내겐 빠른 속도로 확 와닿거나 직접적으로 감동이 밀려오진 않았다. 그러나 그 작품 앞에서 대화하듯 마주하고 긴 시간 할애하다 보면 전해지는 진동이 있다. 그 순간 내 어떤 정서를 건드리거나 그 당시 이슈를 흔드는 느낌이 들 때 예술이 나를 공감해 주고 있다는 묘한 정서적 울림을 맛보곤 했다.


어제의 공연이 그런 시간이었다. 사실 마지막으로 연주된 라벨의 '스페인 랩소디'를 제외하고는 앞서 연주한 두 개의 연주는 어떤 선율도 기억해 내기가 어렵다. 쉽게 인지되어 콧노래로도 흥얼거릴 수 없는 어렵고 묵직하고 그러나 감상하는 순간만큼은 음표 속에서 어떤 기시감을 경험하기도 했다.


조화롭지 못하지만 우리의 현실 속에서 불현듯 다가오는 사건사고와 같은 느낌이 다분했던 불협화음들의 모음곡이라고 해야 할까? 특히 리게티의 피아노 협주곡을 듣는 순간 나는 이 시대의 조간신문을 읽는 것 같았다. 좋은 소식이 아니라 모두가 한탄하게 되는 나쁜 소식, 최악의 소식, 어떻게 이런 일까지라고 생각하는 일들이 너무나 버젓이 일어나고 있는. 그러다 어느 틈을 비집고 나오는 그래도, 삶은 살아볼 만하지 않아. 그래도 우리 앞에는 희망이 움트고 있잖아,라는 작은 외침을 던져주는 듯한.


적어도 어제 리게티의 피아노 협주곡은 내게 현실을 제대로 깨우쳐 주는 작품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현실을 자각하게 하는. 그래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사유하게 했던 연주였다.


그렇다. 다분히 철학적인 메시지가 담겨있는 연주였다고 말할 수 있다. 현대음악을 멀리할 것이 아니라 사유의 힘을 키우는 매체로 활용해 나가는 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자세가 아닐까.


여러 번의 커튼콜을 받고 두 번의 앙코르곡을 연주해 준, 피에르로랑 에마르의 연주 속에서 지휘자 데이비드 로버트슨의 조언이 떠올랐다. 관객과 오케스트라와 피아니스트. 그 속에서만 들을 수 있는 소리가 있었다. 음반에서는 결코 들을 수 없는 소리가 있었다.


"객석에선, 음반에서 들을 수 없는 소리가 들린다."


마지막으로 연주했던 라벨의 스페인 랩소디는 배드뉴스만 접하다가 굿뉴스를 만난 듯 반가웠다. 나도 모르게 발끝으로 어깨로 연주를 따라갔다. 민속 춤곡이니 활기찬 느낌을 전하는가 하면 고즈넉한 선율을 보여주기도 하고 마무리는 다시 생기 있는 화려한 색채감으로 대미를 장식했다.


그렇지. 우리네 삶에 배드뉴스만 있을 리 없지. 지금 내 곁에서 이 공연을 함께 즐기는 룸메와 함께 내가 아는 좋은 세상을 위해 우리는 실천할 수 있다. 그런 실천의 한 걸음을 떼고자 하는 마음을 더 단단하게 해 준 것이 어제 공연이었다. 예술은 감상하는 사람을 더 좋은 삶을 살게 도와주는 강력한 매체임에 분명하다.


롯데 콘서트 홀이 현대음악을 전달하는데 탁월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주 작은 한음 한음까지 분명하게 청각에 꽂혔다. 2019년 바딤 레핀 공연을 본 이후 3년 6개월 만에 발걸음 한 롯데 콘서트 홀 야외 테라스에서 바라본 어제 하늘빛은 모처럼 블루였다. 미세먼지를 모두 밀어내서일까? 공연이 끝난 후 바라본 밤하늘 역시 내겐 찬란하게 빛나는 것 같았다.


데이비드 로버트슨이 서울시향을 보러 온 청중들에게 알려준 관전 포인트를 인지하하고 공연을 감상한 것이 무척 도움이 되었다.


"라이브 콘서트에서는 풍부하고 미묘한 색채감이 가득한 복잡한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아주 좋은 음반에서조차 들을 수 없는 소리를 오셔서 들어보시라."


애견인으로 유명한 지휘자 데이비드 로버트슨은 16년 반 동안 가족이었던 반려견 밀로를 떠나보내고 새로운 식구를 아직 들이지 못했다고 한다. 애도의 기간이 아직 더 필요한 거겠지. 바이올린 개방현 E에 맞춰 짖는 걸 좋아했다는 밀로를 생각하노라니 작년에 떠난 우리의 반려견 치리오가 생각났다.

걸음걸이도 사랑스럽고, 단원에 대한 배려와 예의가 돋보였던 무대. 커튼콜 매너가 유독 마음에 들었다. 서울시향 단원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구나란 생각이 들 정도로 다정한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아래 영상이 지휘자 데이비드 로버트슨을 가장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듯싶어서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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