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humann의 Novelette
환상적이고 로맨틱한 아노곡
피아니스트 임현정, 그녀는 <침묵의 소리>에서 자신이 전적으로 존중받는다고 느끼는 유일한 공간에 대해 언급했다. 그곳은 바로 피아노 앞에서였다고 했던 걸로 기억한다.
예술가들에게만 이랴? 우리도 자신이 존중받는다고 느끼는 그와 비슷한 공간들이 있지 않을까. 내게 그런 공간은 어디일까. 어쩌면 내겐 책방이 아닐까 싶다. 마음이 어지러울 때 책방에서 오롯한 시간을 보내면서 꺼내든 책장을 펼쳐서 어떤 문장을 읽고 있노라면 언제나 위무받는 기분이 들곤 했으니까.
임현정, 그녀를 알게 된 것은 10여 년 전 우연히 유튜브 채널을 통해서였다. 바로 왕벌의 비행 연주를 보고 반해버렸다. 그 시절 니체의 [짜라 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위버멘시를 읽고 있던 시점이었는데 그녀가 바로 위버멘시가 아닐까 했을 정도로 그녀의 정신세계와 음악세계에 반해버렸다. 딸 같은 그녀에게 한결같은 애정을 품고 있었으니까.
그러던 차에 풍월당 쇼케이스에서 그녀를 아주 가까이서 만났고...
그녀가 프랑스어로 출간한 것을 번역한 책이 있다고 해서 곧바로 구입해서 읽었다. 12세의 나이에 홀로 프랑스로 음악 유학을 떠난 당찼지만 외로웠던 소녀를 만났다. 그녀를 계속 지켜보면서 응원하고 싶다. 그녀가 그리고 내가, 한국인이라는 게 정말 자랑스럽다.
그녀의 예술성은 어머니에게서 비롯된 게 아닐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자유롭게, 현기증이 날 정도로 자유롭게 그녀를 내버려 두었기에 자유로운 영혼으로 성장할 수 있었고 청소년기에 프랑스 유학을 결심할 수 있었던 건 아닐는지. 딸아이에 대한 믿음이 있지 않고서야 그렇게 방관 비슷한 무한한 자유를 허락하긴 쉽지 않을 테니까.
그래서일까? 임현정의 영혼은 참으로 자유로웠다. 그녀의 연주를 듣고 있노라면 여지없이 느낄 수 있었다.
1부는 환상적이고 로맨틱한 피아노곡인 슈만의 노벨레테(Novelette)를 연주했다.
노벨레테는 8곡으로 된 단편소설집이라는 뜻으로 이를테면 표제음악이다. 슈만의 이 작품은 노벨레테에 착안하여 악곡의 형식 중 하나로 발표한 곡. '작은 이야기'라는 뜻으로 슈만이 처음으로 피아노를 위한 낭만적인 소품의 표제로 사용하였다. 8개의 노벨레테에는 슈만의 전 생애가 담겨 있다고 하던데... 어떤 악장은 처연했고, 어떤 악장은 발랄했으며, 어떤 악장은 삶의 무게가 느껴지기도 했다.
2부는 관람객이 신청한 곡을 연주하는 신청곡 콘서트로 진행했다. 에릭 사티의 짐노페디와 드뷔시의 달빛 소나타가 기억에 남고. 앙코르곡으로 연주해 준 자진모리까지. 열정적이고 자유로운 영혼의 임현정에게 푹 빠져들었던 시간이었다.
공연시간 전에 미리 도착해서 평촌아트홀 주변 공원에 잘 조성된 산책로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걸으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봄바람, 봄꽃, 봄빛의 향연 속에 빠져들었는데 음악회 전 제대로 워밍업 한 셈이다. 열정적인 공연을 즐길 준비 완료한 채 입장. 충만한 공연을 즐길 수 있었다.
콘서트 소식을 늦게 접하고 마지막 남은 티켓 한 장을 득템. 그것도 1인석을 취소한 거라 거의 앞쪽 중간 좋은 좌석에서 관람할 수 있어서 기뻤다. 홀로 즐기는 공연도 좋았다.
첫 소설만 듣고도 연주자에게 빠져들 때가 있다. 임현정의 연주를 듣고 있을 때 그렇다. 어느 순간 그녀의 연주와 나만 존재한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녀의 연주를 통해 라흐마니노프와 식사하는 것 같고, 바흐의 식탁에 마주 앉아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녀의 연주로 모차르트를 듣는다면 어디선가 모차르트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도 들려올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그녀는 그만큼 그 시대 음악가의 세계로 빠져들어 몰입감 있는 연주를 들려주기 때문이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