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어느 봄날
2021년 9월 14일, 화요일 오전 8시 30분 엄마는 세상과 잡고 있던 손을 가만히 놓았다. 삼우제를 마친 이틀 후 정동길을 걸었다. 시립미술관에 들러서 새로운 현대미술 전시를 둘러보는데 내 정서와 너무 동떨어진 전시라 집중할 수가 없었다. 엄마와 비슷한 시대를 살았던 천경자 전시관만 다시 찬찬히 둘러보고 미술관을 나섰다.
미술관 앞 벤치에 앉아 오래도록 하늘바라기를 했다. 그 하늘에 83년간의 삶을 마치고 세상을 떠난 엄마의 얼굴을 그려보았다. 가슴에서 뭔가 꿈틀거리며 불편하게 일어나는 게 있었다. 다음 순간, 가슴이 터질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일단 움직여야 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덕수궁 돌담길 쪽으로 빠른 걸음으로 이동했다.
덕수궁에 들어서서 궁내를 한 바퀴 돌다가 벤치에 걸터앉았다. 눈앞에 펼쳐진 작품이 있었다. 윤석남의 작품이다. 최근에 설치한 것 같았다. 작품명은 <눈물이 비처럼, 빛처럼: 1930년대 어느 봄날>이다. 1939년 가을날 세상의 빛을 맞이했던 엄마가 또 떠올랐다. 작품 속 여인들 속에서 엄마의 얼굴을 찾아보았다. 중첩되는 얼굴이 있었다. 파란만장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삶을 살아냈을 그 시절의 모든 어머니들의 모습을 윤석남은 작품에 담아내고 있었다.
한국의 근대성은 식민주의와 맞물리는 특수성을 지니겠지. 그 시절을 살아냈을 엄마를 생각했다. 작가는 근대기에 여성들이 사적 공간을 벗어나 공적 공간, 특히 조선 시대에 신성한 영역으로 극히 소수만 접근할 수 있었던 궁궐이란 개방된 공적 장소에 출입하게 된 것을 중요한 사건으로 본 걸까? 윤석남은 폐목을 잘라 그 표면에 그 시절을 살아낸 이름 없는 조선 여성들의 얼굴과 몸을 그려 새로운 시대와 마주한 그녀들의 의지와 기대를 담아내고 있었다.
작품 앞에서 문득 엄마는 생전에 덕수궁을 몇 번이나 왔었을까? 궁금했다. 엄마와 덕수궁 산책을 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이런저런 생각에 함몰된 가운데 1930년대의 중년 여성, 1930년대 태어난 여성, 그리고 지금을 살아가는 나를 포함한 모든 여성들의 모습이 작품 속에서 읽히는 것 같았다.
내겐 그녀처럼 애틋한 어머니와의 추억이 거의 없다. 참 쓸쓸했다. 그래도 엄마는 떠나야 될 때를 알고 떠난 것 같다. 주변인들 많이 힘들게 하지 않고, 엄마와의 이별을 준비할 시간도 적당히 주고, 만나야 될 사람들도 다 만나고. 이제 가도 되겠구나 생각했을 때 엄마는 세상에 이별을 고한 듯싶다. 그래서 입관식 때 엄마는 너무 평온해 보였다. 평화를 찾은 듯 편안했던 엄마의 얼굴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다.
남동생이 화장장 참관실에서 틀어준 노래가 있었다. 엄마가 평소에 좋아했다는 최백호의 '아씨' 주제곡이었다. 노래를 듣고 있노라니 가슴속에 차오른 눈물이 결국 마음 밖으로 흘러넘쳤다. 요 며칠째 그의 노래를 들으며 39년생 엄마의 인생을 회상했다. 걸쭉한 인생 속에서 수많은 역경을 이겨냈을 엄마를 추모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