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라 뮤지엄에서 나라 요시토모를 만나다
여행이 고픈 시점에 방 정리를 하다가 요시토모 나라의 엽서 한 장을 만났다.
엽서 한 장이 나를 몇 년 전 11월 도쿄 여행을 추억하게 했고, 빛의 느낌이 좋았던 뮤지엄 하라 내, 요시토모 나라 설치미술관에서의 풋풋하고 아련한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그 기억 속엔 상처받은 또 다른 어린아이 한 명이 있으니 바로 나 자신이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공격적인 모습의 캐릭터들, 특히 올라간 눈이나 앙 다문듯한 입술, 곧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눈망울 등... 그의 작품을 처음 만났을 때 느낌은 어, 저 모습 어디서 봤지? 저 익숙한 표정은 뭐지? 내 어린 시절의 자화상이랑 흡사하잖아. 그냥 마음이 갔다. 그 얼굴, 표정, 정서에 흠뻑 젖어들었다.
하라 뮤지엄에 가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요시토모 나라의 설치미술 작품을 보고 싶어서였다. 십여 년 전인가? 삼성 리움에서 요시토모 나라의 설치작품을 보고 그의 순수한 동심의 세계에 단숨에 빠져들었다. 그 심성에 반했던 기억이 하라 뮤지엄으로 나를 부른 셈이다. 나는 그때만 해도 그가 여성작가인 줄 알고 있었다. 얼마 후 그가 남성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얼마나 놀랐던가. 그의 작품 세계가 어린 소녀의 상상세계 속 정서와 너무나 닮아있었기에 처음에는 정말 충격이었다.
그는 어린 시절 꽃도 밟으면 안 된다고 생각할 정도로 감성적인 내면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모습이 싫어서 미술을 배우지 않고 유도와 럭비, 복싱을 했다고 하는데 그런 의외의 행보들이 작품 속에 잘 드러나있었다. 어린 시절 특별한 꿈이 없었지만 문학이 좋아서 소설과 시 습작을 해서일까? 그의 작품엔 상상력 풍부한 스토리가 내포되어 있었고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독특한 개성이 넘실댔다.
요시토모 나라는 화가가 꿈이 아니라 취미로 그리다 보니 화가가 됐다고 한다. 그의 말처럼 화가를 직업으로 선택한 게 아니라 사는 방식으로 선택한 셈이다. 존재의 불안함 때문에 그리기 시작한 요시토모 나라는 그 불안함 때문에 자신의 가치를 화가라는 직업으로 인정받은 것은 아닐는지.
어린 시절 요시토모 나라는 열쇠를 목걸이처럼 걸고 다니는 아이, '카기코'로 시골에서 어린 시절 대부분을 보냈다. 부모님이 일터로 나가면 항상 강아지와 시간을 보내며 외로움을 달랬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림은 곧 그의 친구였으리라. 그림의 소재는 주로 아이, 동물, 여행하는 풍경이었다. 관객인 나는 작품 속 아이에게 이입하여, 아이와 동일한 정서를 느꼈다. 그 순간이 바로 예술이었으며 시의 순간이었다.
각설하고 하라 미술관은 1950년대부터 현재까지 현대 아트에 특화된 미술관 중 하나이다. 하라 뮤지엄은 1,000점 가까이 되는 작품으로 전 세계의 다양하고 유명한 아트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특히 내가 이런 유의 뮤지엄을 좋아하는 이유는 개인의 저택을 리모델링했다는 점이다. 위대한 실업가 하라 구니조의 저택을 개장한 뮤지엄이라니 이른 오전 개관시간에 맞춰 그곳으로 향하는 내 발걸음이 얼마나 가벼웠겠는가? 날씨 또한 맑고 투명했다. 소장된 작품 못지않게 건물 역시 소박하고 아름다운 작품이었다.
하라 뮤지엄 소장 작품에는 앤디 워홀, 구사마 야요이, 잭슨 폴록 등 국제적으로 유명한 아티스트의 작품과 나라 요시토모의 훌륭한 설치미술 작품 등이 있다. 이곳에서는 아트 컬렉션과 정기 교체되는 전람회뿐만 아니라, 젊고 유망한 아트스트의 활동을 지원하고자 퍼포먼스 아트, 연주회와 강의 등도 열리고 있다고 한다. 전시 관람 후에는 넓은 야외 조각 공원을 산책한 뒤에 카페 다르에서 푸른 정원을 조망하며 작품 감상에 대한 여운을 지속해 볼 것을 추천한다.
미술관으로 가기까지의 맑은 하늘 아래, 골목길 풍경 역시 내겐 갤러리였다. 개인주택 대문 입구, 혹은 현관 앞은 행인에게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었으니까. 느릿느릿 걸으며 개관시간에 딱 맞춰서 하라 뮤지엄에 도착했다. 멋들어진 건축물이 아닌 야트막한 건물 사이사이로 보이는 녹음의 물결, 11월의 서늘한 바람, 그 사이로 내리쪼이는 햇살 몇 조각들이 지금 여기 순간의 나를 달뜨게 했다. 그 달뜸을 마냥 즐기면서 누리고 싶었다. 천천히 천천히 관람하는 거야.
요시토모 나라 설치 전에 들어서서는 오랫동안, 말 그대로 아주 오랫동안 아무 말도 못 한 채 그저 서 있었다. 다행히 그 전시관에는 오롯이 나 혼자였기에 요시토모 나라와 대면하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 방에 서 있는 여섯 살에서 아홉 살까지의 나 자신이 보였다. 그나마 그곳에 있는 어린 시절의 나 자신의 표정은 행복해 보였다. 그 공간이 주는 안락함과 붕 뜨게 만드는 상상력의 힘이겠거니 생각했다.
다른 전시는 솔직히 기억에 없다. 지금도 요시토모 나라의 방, 작업실을 통째로 옮겨놓은 듯한 동화 같은 방에서의 감성 충만했던 순간들을 잊지 못한다. 나라의 방 안에서의 시간은 지금도 세포 하나하나를 예민하게 건드리는 힘이 있었다. 그거면 됐다, 외롭고 짓궂고 슬프고 분노하는 어린아이의 놀이방에서의 시간은 뭐랄까? 하라 뮤지엄에서 내가 건진 가장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어린 날의 지독하게 외로웠던 자신을 다독여주는 시간이었으니까. 요시토모 나라와의 만남, 그거면 충분했다.
언제 그곳으로 또 발걸음 하게 될까? 여행이 고프다. 그래서 지금 뮤지엄 하라에서의 시간을 추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