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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날씨 Oct 24. 2021

귀여움을 만들어내는 시선에 대하여

싸우다 웃어도 지는 게 아니야

"어쩜 밥도 그렇게 먹어요?"

평소의 그는 뭘 해도 사랑스럽다.

"당신이 그렇게 봐서 그런 거예요."

그런가? 사랑에 빠진 나는 이해할 수 없다. 오물오물대는 입이 이렇게나 귀여운데? 내 눈에만 그런 거라고?

"그럼 나중에 당신이 뭘 해도 시큰둥, 안 귀여워 보이게 되려나?"

그는 갑자기 슬픈 눈이 된다.

"그럼 우리 관계는 끝이에요. 계속 귀여워해 줘요."


물론 이렇지 않은 날도 있다. 내가 기분이 안 좋은 날, 그와의 사이가 평탄하지 않은 날, 작은 것들이 거슬리기 시작한다. 그럴 때 나는 짐짓 식사 예절을 가르쳐주는 듯이 군다.

"씹을 때 입을 다물어야죠. 쩝쩝 소리를 내면 안 돼요. 치아 사이를 혀로 정리할 때는 입을 가리고!"

인정할 건 인정하자. 사실 나는 기분파다. 그래도 대체로 그가 귀여워 보이는 게 우리 관계의 굳건함을 증명하고 있다. 그의 귀여움이 내 애정 어린 시선 때문이라면, 그건 내가 귀여워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관계를 잘 가꾸어 나가기 위한 양쪽의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같이 살기 시작하고 그는 때때로 티브이를 보며 끼힉 하고 짧게 웃었다. 그러고는 눈치를 살피며 너무 경박스럽게 웃었다고 자책을 했다. 나는 어리둥절했다. "뭘 억누르는 거예요, 제발 경박스럽게 웃어줘요!" 저쪽에서 그가 예능을 보며 끼히히히힉끄힉히 하고 웃는 소리가 들려오면 나는 덩달아 미소가 퍼진다. 그의 투명한 얼굴, 순진무구한 눈동자, 천진난만한 웃음을 사랑한다. 웃을 때면 광대가 솟고 눈은 휘어지고 눈가의 주름이 세 가닥씩 생겨난다. 콧방울이 양옆으로 벌어지고 입술은 보기 좋은 반달 모양이 된다. 벌어진 입술 사이로 가지런한 토끼 앞니 두 개가 튀어나온다. 그의 입술은 보드랍고 적당히 도톰하다. 

그의 입은 비염 때문에 늘상 반쯤 벌어져 있다. 그 사이로 가지런한 치아와 말랑한 혀가 내비친다. 벌어진 입은 연필을 들어 그리고 싶을 만큼 앙증맞다. 살짝 올라가 있는 입술의 양끝, 정확히 두 개의 산 봉우리처럼 솟아있는 윗입술, 잠시 방심하면 치아 사이로 밀고 나오는 붉은 혀. 가만히 있어도 조금쯤 웃고 있는 사람.

그는 소년이었을 때 거울을 보며 자연스럽게 웃는 법을 연습했다고 한다. 될 때까지 반복해서. 한 층에 직원이 백 명 넘게 있는, 그런 층이 여러 개 있는 회사를 다닐 때 그는 언제나 - 화장실에 갈 때도, 모니터를 보고 있을 때도 - 조금씩 웃고 있는다고 했다. 그는 그를 싫어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타깃화 된 사랑을 받고 싶다고 했다. 자신만을 향한 깊은 애정과 호의와 관심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를 싫어하는 사람이 없지만 좋아하는 사람도 없다고 했다. 갈증이 채워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처럼 해맑은 눈, 호기심 어린 눈, 반짝이는 눈, 관대한 눈, 뭐에든 웃어줄 준비가 되어 있는 눈을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는지 나는 모른다.


그러니 맹렬히 싸우다가도 어느 순간 웃음이 픽 새어 나온다. 싸우다가 웃으면 괜히 지는 것만 같아 새어 나오는 웃음을 꾹 참으려 애쓴다. 머릿속으로 진지한 생각을 하려 하고 괜히 손을 들어 광대를 누른다. 그렇지만 어느새 내가 이 사람이랑 왜 이러고 있지? 싶어져 테이블 위에 올라온 논쟁거리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그냥 당신을 안고 싶고 얼굴을 어루만져 주고 싶어. 나중에 알고 보니 그도 나와 같은 마음이라, 우리는 싸우다가 웃음이 나오면 참지 않기로 합의했다.


그의 입술은 앵두 같다. 그가 입술을 움직여하는 말은 앵두가 하는 말. 모든 단어 하나가 앙큼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나는 앵두를 내 입술에 쏙 넣고 와그작 깨물어버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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