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게 전하는 편지 1
사랑하는 아들아, 네게 남기고픈 이야기들이 참 많구나.
서툴지만 진심을 담아 한 자 한 자 적어 내려간다. 이 글이 네 삶의 작은 등불이 되길 바라며.
네가 작은 씨앗으로 내 안에 자리 잡았을 때, 엄마는 매일 밤 기도했단다.
이 넓고 낯선 세상에 건강하고 행복하게 태어나주기만을.
너는 마치 밤하늘의 별처럼 찬란한 기쁨이었고, 세상 그 어떤 보석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선물이었지.
한여름 햇살이 가장 뜨겁던 8월 중순, 너를 처음 품에 안았을 때의 감격은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구나.
병원에서 보낸 사흘, 아기 침대에 누워 간호사님의 보살핌을 받던 너.
그 짧은 시간조차 온전히 네 곁을 지키지 못해 애가 탔단다.
어느 새벽, 어둠을 가르던 네 울음소리가 작은 방을 채웠지. 젖을 찾는 울음인지, 어디가 불편한 건지.
애타게 울던 그 작은 생명체가 바로 너라는 것을, 엄마는 가슴 깊이 직감했어.
"아기가 우니 제가 가서 안아봐도 될까요?" 그때 그 말을 못 한 안타까움은 여전히 작은 가시처럼 마음에
남아 있단다.
늘 일터로 향해야 했던 엄마는 너와 매 순간을 함께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외할머니의 품에 너를 맡길 수밖에 없었단다. 외할머니는 당신만의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하셨지. 무뚝뚝한 말투 속에 깊은 정을 숨기고 계셨던 할머니는 어느 날, 너의 작은 세상에 큰 변화를 선물했어. 바로 아파트 어린이집이었지.
하지만 너는 그 낯선 세상이 두려웠나 보다. 온몸으로 거부하며, 너의 작은 심장이 터질 듯 울음을 터뜨렸지. 그 울음소리는 어찌나 절실했던지, 일주일 만에 어린이집 원장님은 두 손 두 발 다 들고 할머니께 원비를 돌려드리며 "이 아이의 울음소리가 다른 아이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쳐 더 이상은 힘들겠습니다."라고 말씀하실 정도였단다.
그때 너는 아주 어렸지만, 분명한 자기 의사와 주관을 가진 아이였단다. 낯선 공간에서조차 울음으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던 너의 그 강한 의지가, 지금 너의 모습으로 이어진 것이겠지.
그 트라우마였을까. 다섯 살이 되도록 너는 세상의 문턱을 넘지 못했어. 엄마와 잠시 떨어지는 것도 극도로 거부하고, 심지어 화장실조차 거부하며 기저귀를 채워 달라던 너의 모습에 엄마 마음은 차갑게 얼어붙었단다. 절망으로 가득했던 어둡고 긴 날들이었지.
다섯 살 끝자락, 기적처럼 교회 옆 작은 어린이집에 마음을 열고 발을 내디딘 너.
아침마다 차에 올라 환하게 웃으며 손 흔들어 줄 때, 엄마는 길고 어두웠던 터널에서 벗어난 듯 안도의 숨을 내쉴 수 있었어. 가을바람에 흩날리는 은행잎을 네 머리 위로 뿌려주면, 해바라기처럼 환하게 웃던 너.
그 맑은 웃음은 엄마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었단다.
2002년 한일월드컵, 여섯 살이던 너와 함께 외할머니, 엄마 셋이 텔레비전 앞에 모여 대한민국을 응원했지. 승리의 골이 터지던 순간, "대~한민국!"을 외치던 우리.
너는 기쁨을 주체 못 하고 "아우우~" 아기 여우 같은 환호성을 질렀고, 그 모습에 우린 배꼽 빠지게 웃었단다. 그 행복은 아직도 선명해.
어느 날엔 예약해 둔 아파트 상가 미용실에 가서 혼자 머리를 깎고 오기도 했지. 엄마 없이도 씩씩하게 해내는 네 작은 뒷모습이 어찌나 든든하던지.
초등학교 1학년, 준비물을 깜빡한 엄마 대신 문방구에서 외상으로 해결했다는 너의 당참에 또 한 번 놀랐단다. "돈은 나중에 엄마에게 받으세요. 우리 엄마가 이따가 주실 거예요."라고 했다며 또박또박 말하는 너의 당찬 목소리가 문방구 아주머니의 웃음 섞인 목소리를 통해 고스란히 전해져 왔어.
작지만 이미 넌 세상을 향해 나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던 거야.
그렇게 너는 세상이라는 악보 위에 너만의 첫 음표를 힘차게 찍어 내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