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악장 | 론도, 되풀이되는 가르침과 배움의 환희

"언어라는 무한한 악보 위에, 가르치고 배우는 끝없는 론도처럼."

by 소나타 그레이스

2017년 겨울, 태국 세종학당에서의 뜨거웠던 마지막 수업이 막을 내렸습니다.

공항으로 향하는 길, 제자리에 멈춰 선 시간처럼 학생들이 하나둘 제 곁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작은 손으로 꼭꼭 눌러쓴 손 편지를 건네는 학생, 끝내 눈시울을 붉히며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기던 학생. 밤새 만들었다며 따뜻한 온기가 남은 간식을 내미는 학생도 있었고, 함께 웃었던 순간을 담은 사진 한 장을 수줍게 건네며 속삭이던 학생도 있었습니다.
"선생님, 우리 꼭 다시 만나요."

그렁그렁한 눈빛 속에 담긴 진심들이 파도처럼 밀려왔습니다. 어떤 남학생은 “비행기에서 편히 가세요”라며 직접 고른 여행용 목베개를 선물했고, 또 다른 남학생은 어머니께 부탁해 예쁜 연분홍 장식용 고리를 정성껏 만들어 왔습니다. 그 작고 따뜻한 마음들이 제게는 무엇보다 소중한 이별 선물이었습니다.

태국에서의 마지막 순간, 저는 제 인생에서 가장 따스하고 눈부신 커튼콜을 받으며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그렇게 돌아온 한국.

어느새 훌쩍 자란 아들은 어엿한 대학생이 되어 서울에서 제법 능숙하게 혼자만의 생활을 꾸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태국으로 떠나기 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신청해 두었던 대학생 임대주택에 당첨되어, 성북구의 어느 조용한 골목길 투룸에서 저보다 2년 먼저 서울살이를 시작했던 기특한 아들이었습니다.

이제, 그 아늑한 공간에서 저와 아들, 단둘의 서울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각자의 시간 속을 부지런히 걷던 모자가 오랜만에 같은 지붕 아래 머물며, 소소하지만 새로운 일상의 화음을 맞춰가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다음 연주를 위한 짧은 숨 고르기처럼 다가온 그 6개월은, 더 깊은 울림을 위한 조용하지만 더없이 소중한 조율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6개월 후, 저의 새로운 교단이 열렸습니다. 이번에는 성동구의 한 대학교, 베트남에서 온 학생들로 가득 찬 교실이었습니다. 이제 막 세상을 향해 눈을 반짝이는 열여덟 청춘부터, 머나먼 한국에서 운명 같은 사랑을 만나 가정을 이룰 서른의 깊은 눈빛까지. 학생들의 삶은 저마다 다른 음표와 리듬으로 채워진, 한 권의 두꺼운 악보처럼 다채롭게 펼쳐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학교에는 안타깝게도 기숙사가 없었습니다. 원룸과 고시원, 그 작고 네모난 공간들이 그들의 유일한 보금자리였습니다.

하루는 아이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너무나 궁금한 마음에, 마치 오랜만의 가정방문처럼 그들의 공간을 함께 둘러보았습니다. 창문 하나 없이 눅눅한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은 좁디좁은 고시원 방, 책상과 침대 사이 비집고 들어선 빨랫줄에 위태롭게 널린 옷가지들… 그 모든 풍경은 마치 숨 막히는 흑백 무성영화의 한 장면처럼, 가슴 한구석을 아리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저는 작은 일탈을 감행했습니다.

"여러분, 떡볶이 먹어본 적 있어요?"

학생들은 약속이나 한 듯 동시에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날 우리는 학교 앞 허름하지만 정겨운 분식집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눈물 나게 맵지만 그래서 더 맛있는 빨간 떡볶이를 함께 나누었습니다. 매워서 훌쩍이면서도, 까르르 웃고 떠들며 함께 먹던 그 시간. 그날의 떡볶이는 아마 그들에게도, 그리고 저에게도 잊을 수 없는, 한 접시의 따뜻하고 매콤한 추억으로 오래도록 남아있을 겁니다.




그 무렵, 제 마음속 깊은 곳에서 오래된 기억 하나가 희미한 선율처럼 떠올랐습니다.

까마득한 20대, 사무실에서 걸려 오는 일본어 전화를 더듬더듬 받기 위해 잠시나마 일본어 공부에 매달렸던 짧은 시절이 있었습니다.

'다시 한번 배워볼까? 그때… 참 재미있었는데.'

그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자, 마치 운명이 미리 그려둔 악보처럼 절묘한 기회가 거짓말처럼 찾아왔습니다. 대학원 시절 알고 지내던 재일교포 후배가 일본인 친구 한 명을 소개해 준 것입니다. 놀랍게도 그녀 또한 일본에서 외국인 유학생들에게 일본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다시, 가슴 뛰는 '학생'이 되었습니다. 한국어를 가르치는 선생인 동시에, 일본어를 배우는 학생으로서의 삶. 일주일에 한 번, 네모난 Zoom 화면 너머로 서로의 언어를 가르치고 배우며, 우리는 국경을 넘어선 진정한 친구가 되어갔습니다.

그 소중한 인연은 자연스레 사이버대학교 일본어학과 편입으로 이어졌고, 저는 ‘가나다’를 처음 배우던 그 마음으로 ‘あいうえお’부터 다시 시작하는, 겸손하지만 설렘 가득한 배움의 나날을 맞이했습니다.




지금도 매주, 그 일본인 친구와 온라인으로 만나 서로의 언어와 문화를 나누며 저의 인생 악보에 새로운 멜로디를 새겨 넣고 있습니다.

그리고 2024년, 마침내 봄바람을 타고 일본인 친구가 한국을 찾아왔습니다. 벚꽃 잎이 눈처럼 흩날리던 수원의 화성 성곽길을 함께 걸으며 사진을 찍고, 끝없이 웃고 이야기했습니다. 그 순간, 제 마음속에 잔잔하지만 깊은 울림이 일었습니다.

'세상에, 이런 소중한 인연까지 만나게 될 줄이야… 내가 꿈엔들 상상이나 했을까.'




저는 지금도 여전히 무대 위에 서 있습니다. 누군가를 가르치는 순간, 그리고 무언가를 배우는 순간. 저의 하루하루는 마치 주제 선율이 다채로운 삽입부를 사이에 두고 끊임없이 되풀이되며 펼쳐지는 론도(Rondo)의 아름다운 선율로 가득합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반복 속에서, 저는 매 순간 새롭게 가슴이 떨려옵니다.

언어는 저의 끝없는 악보입니다. 저는 그 악보 위에 저만의 독특한 음악을 새기며, 때로는 느리고 부드럽게, 때로는 빠르고 경쾌하게,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 아름다운 론도의 선율이 과연 저를 어디로 이끌고 갈지, 설레는 마음으로 기대하며. 이제, 제 인생 교향곡의 다음 악장을 시작할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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