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지 교사에서 피아노 페다고지 대학원으로, 그리고 가르침의 길로”
삶의 악보는 처음부터 매끄럽게 쓰이지 않았습니다. 불협화음처럼 얽힌 시간 속에서 저는 하루하루를 버텨내기에도 벅찼습니다.
학습지 교사의 삶은 예상보다 훨씬 더 고단하고 외로운 여정이었습니다. 낯선 남의 집 초인종을 누르고, 비바람을 맞으며 거리를 헤맸습니다. 작은 중고차를 마련했지만, 한겨울 밤이면 시동이 걸리지 않아 어느 주택가 주차장에서 긴급 출동 서비스를 불러야 했습니다. 골목길 주택가는 주차 공간이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차를 멀리 세워 두고 급하게 발걸음을 옮겼고, 늘 시간에 쫓겨 발이 닳도록 뛰어다녔습니다.
규칙적인 저녁 식사는 사치였고, 저녁 자체를 먹을 수 없는 날이 더 많았습니다. 밤늦게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오면, 아들은 이미 곤히 잠들어 있었습니다.
엄마로서도, 선생으로서도, 저는 어디에서도 만족스럽지 못한 삶을 살고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영업 실적이 저조한 교사는 전단지를 직접 만들어 돌리기도 하는데, 결국 저도 마지못해 그 일을 하게 됐습니다. 그런 제 모습을 안타깝게 지켜보던 친정엄마와 아들은 전단지를 함께 만들어 주었습니다. 대행업체에 맡길 수도 있었지만, 한 푼이라도 아끼고 싶은 절박함이 더 컸습니다.
수업이 끝난 밤에 그 전단지를 들고 몰래 아파트 단지를 돌아다녔습니다. 경비 아저씨께 들킬세라 도둑고양이처럼 조심스레 현관문마다 전단지를 붙였습니다. 그 순간, 문득 제 신세가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졌습니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마음 깊숙한 곳에서 절망의 비명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래전 교수님께서 해 주셨던 말씀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페다고지 대학원에 가보는 건 어때요? 실력도 충분하니 용기 내보세요."
그때는 감히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꿈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지금이라면 다를 것 같았습니다.
학습지 교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대학원 입학을 준비했습니다. 다시 잠들어 있던 피아노 앞에 앉아 굳어버린 손끝의 감각을 되살렸습니다. 실기 시험이라는 또 다른 산을 넘을 준비를 했고, 마침내 피아노 페다고지 대학원에 입학했습니다.
대학원에서는 피아노 교수법과 연주법을 배우는 동시에, 매 학기 혹독한 실기 시험을 치러야 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대부분 4년제 음대를 졸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예고 출신도 많았죠. 그들의 매끄럽고 완성도 높은 연주를 들을 때마다 제 연주는 왜소하게 느껴졌고 자연스레 주눅이 들었습니다.
'나는 2년제 출신인데... 이들과 경쟁할 수 있을까?'
불안한 마음이 끊임없이 피아노 위를 맴돌았습니다.
페다고지 대학원 규정상, 4년제 음대 출신만이 졸업 연주를 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 요건에 해당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꼭 연주하고 싶었습니다. 아니, 반드시 해야만 했습니다. 어릴 적 마음속 깊이 숨겨 두었던 피아니스트의 꿈을, 단 한 번이라도 무대 위에서 꺼내어 마주하고 싶었습니다. 음악이 되어 무대에 서는 그 순간을, 저는 오랫동안 간절히 기다려 왔습니다.
어떤 교수님께 레슨을 받을지 고민하던 중, 한 교수님의 피아졸라 탱고 앙상블 연주를 듣게 되었습니다. 단단하면서도 자유로운, 마치 인생의 춤을 추는 듯한 그 연주를 듣는 순간, 제 가슴이 뜨겁게 뛰었습니다.
'바로 이거야!'
망설일 틈이 없었습니다. 교수님을 직접 찾아가 간절히 말씀드렸습니다.
"교수님, 졸업 연주는 저에게 무엇보다 간절한 꿈입니다. 교수님의 가르침 아래에서 연주할 수 있다면 그 꿈이 이루어질 거라고 믿습니다. 제 진심을 헤아려 꼭 도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행히 교수님의 제자인 대학원 동기의 소개로 레슨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주중에는 혼자 연습실에서 피아노와 씨름했고, 주말이면 교수님의 댁을 찾아가 가르침을 받으며 연주를 다듬었습니다. 방학 때는 더 강도 높은 레슨을 받았습니다.
무대 경험을 늘리기 위해 학교 대연주실을 빌려 쓰기 시작했습니다. 연습 장부에는 제 이름이 빠지지 않았고, 결국 페다고지 행정실에서도 제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마침내, 운명의 리허설 날이 다가왔습니다. 여러 교수님들 앞에서 고전주의, 낭만주의, 현대음악까지 세 곡을 연주해야 했습니다. 손끝이 얼어붙을 듯한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도, 저는 온 힘을 다해 건반과 하나 되어 연주했습니다. 연주가 끝나고, 숨죽인 침묵 속에 교수님들의 평가가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결과가 제게 주어졌습니다.
"당신이 유일한 합격자입니다."
제 이름만 불렸습니다. 동기들 중 오직 저 혼자만 통과했습니다. 다른 이들은 연주 날짜를 미루거나 공연장을 변경해야 했습니다.
믿기지 않았습니다. 정말 내가? 혼자서? 졸업 연주를 하게 된다고? 참아왔던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따스한 5월의 봄날. 저는 드레스를 입고 숨 막히는 연주홀 무대에 올랐습니다. 조명이 쏟아지는 그곳에서, 떨리는 손을 피아노 위에 올렸습니다.
이 순간을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연습에 매달렸던가. 음표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 얼마나 발버둥 쳤던가. 부모님, 친척들, 친구들, 음악과 언니들, 대학원 동기들 그리고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이 객석에서 저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1시간 동안 이어진 연주. 손끝에서 선율이 흘러나오고, 음악이 흐르며, 저의 시간과 삶이 그 공간을 가득 채웠습니다.
마지막 음이 끝나자마자, 연주홀을 가득 채운 폭풍 같은 박수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믿을 수 없었습니다.
내가, 이 무대 위에서, 혼자서 이 모든 연주를 해내다니.
연습하느라 아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고 미안했지만, 엄마를 믿고 묵묵히 기다려 준 아들에게 그저 고마웠습니다.
마지막 학기에는 교습소 창업 수업을 들었습니다. 단순히 연주자가 아니라, 배움을 나누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창업 준비, 레슨 방법, 학생 관리까지 차근차근 배워 나갔습니다.
졸업 후, 아파트 상가에 새롭게 문을 연 피아노 교습소. 심사숙고 끝에 정한 이름, *애플피아노*의 간판이 새롭게 걸린 모습을 보며 벅찬 설렘을 느꼈습니다. 풋풋한 기대감으로 피아노 앞에 처음 앉았던 날부터, 수많은 좌절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손끝의 감각을 되찾았던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이제 저의 인생은 *애플피아노*와 함께 새로운 왈츠의 리듬을 타기 시작했습니다. 이 왈츠는 이제 막 그 첫 장을 펼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