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여일이 지났지만 그 아이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출석부 이름으로만 만난 친구.
피부질환을 심하게 앓고 있는 친구였다. 사춘기 예민한 시기, 감당하기 어려운 피부질환에 아이와 부모님은 학교를 잠시 쉬기로 결심했다.
5월이 거의 끝나갈 무렵, 아침 복도가 부산스러웠다.
무언가를 둘러싼 싼아이들의 목소리는 들썩거렸고 재잘대는 소리들이 커지고 있었다.
'무슨 일이지?'
궁금해서 다가가보았다.
익숙한 얼굴들 틈에 낯선 친구가 보였다.
복도에서 그 아이와 친구들을 만났다.
"안녕! 즐거운 일 있어?"
"네. 00이가 왔어요~"
"오~ 반가워^^. 나는 도덕샘이야. 이름으로만 만났는데 정말 반가워!"
악수를 건네니 밝은 얼굴로 손을 맞잡는다.
피부는 아직 붉고 흔적이 많이 남았지만 아이이 표정이 밝다.
3교시, 수업이 있었다.
아이는 밝고 똘망 똘망했다.
마음 속으로는 오랜만의 학교 생활이 어색할만도 한데 모둠활동을 주도적으로 하는 것을 보니 괜한 걱정을 했구나 싶었다.
수업을 마치고 담임선생님에게 가 아이가 생각보다 밝고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보기 좋았다고 건냈다.
담임선생님이 전하는 아이들의 일화를 듣고서야 그 친구의 밝고 환한 표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주말을 이용해서 아이들은 카톡을 주고 받았단다.
80여일이 지나 학급을 찾는 친구를 환영하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이 있었고 아이들은 그 제안에 적극 찬성했다. 아이들은 마음을 담아 케익과 함께 그 친구에게 건네는 따스한 문장을 준비했다.
아이들의 자연스럽고도 다정한 마음이라니.
그것만이 아니었다.
학교에 오지 않는 친구를 위해 친구들이 찾아가 학교 소식을 전해주고 학급의 소소한 일상과 수업 이야기를 전해주었다는 것이다.
학교의 풍경이 익숙해서 오랜만에 와도 학교가 친근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었다.
학교에서 시간을 보내는 친구들은 너무 익숙한 생활 때문에 스쳐지나기 쉽다.
가끔 오가는 길에 들러 수다를 떨 수도 있는데 친구들이 돌아가며 시간을 내고 학교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흔한 일은 어니다.
학원에 시험에 매일의 일상이 정신없고 바쁜 대한민국 중학교 아이들의 삶이 그리 여유있지 않음을 잘 알기에 그 아이들의 마음이 더 귀하게 다가왔다.
아침에 그 아이의 마음이 잠시 그려졌다.
친한 친구들이라고 하나 80여일을 쉬고 오는 발걸음엔 살짝 낯설고 어색하였으리라.
어색한 발걸음이 친구들을 만나는 순간의 따뜻한 풍경이 아침에 내가 본 그 장면이었다.
아이의 밝은 표정과 말에는 친구들의 환대가 있었다.
따뜻하고도 다정한 환대.
이 아이들의 다정함은 어디에서 오는걸까?
이런 따스한 환대를 자연스럽게 그려내는 아이들이 너무도 사랑스러웠다.
나날이 거칠어지고 삭막해지는 사회와 혐오와 조롱이 일상이 되어가는 교실이다.
사회의 치열한 경쟁은 불안을 낳고 경쟁과 불안은 아이들의 일상을 파고든다.
학교는 안전한가?
아이들이 따돌림 당하지는 않은가?
공부 말고도 신경써야 할 일들이 많은 세상.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부모의 마음은 불안하고 걱정스럽다.
끊임없이 경계하고 아주 사소한 일에도 내 아이의 안전을 위해 목소리를 키운다. 불안감의 소산이다.
어느새 그 불안감은 아이들과 부모들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어디도 안전한 곳이 아니라는 불안감은 늘 내 아이만을 중심으로 보게 된다.
함께 하는 마음을 둘 여유가 없다.
부모의 불안은 아이들도 불안하게 만든다.
내 아이가 학교폭력에 노출되지 않을까?
내 아이가 낙오되는 것은 아닐까?
학교의 모습은 사회의 모습이기도 하고 어른들의 삶에 대한 관심과 관점을 그대로 반영한다.
어른들의 삶이 그대로 투영되는 곳.
치열한 경쟁과 결과 중심의 삶은 학교를 그렇게 이기적인 곳으로 만든다.
이 아이들의 사랑스러움은 마을과 부모님의 노력이 만들어낸 따스함이리라.
부모들의 세상을 보는 관점이 나와 가족에게만 향해 있지 않고 '우리'에게로 향하고, 우리가 함께 우리 아이들을 성장시키고 함께 배움을 만들어가는 곳이기에 가능한 따스함이다.
'내' 아이가 아닌 '우리'의 아이들을 말하고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평화로운 공동체를 만들어내는 어른들.
아이들은 그 속에서 연대와 협력을 경험하고 성장한다.
아이들의 건강함과 사랑스러움은 어른들의 몫이다.
삶을 대하는 시선이 어디로 향해있는지 나를 돌아보고 옆을 돌아보는 어른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그 길이 곧 내 아이의 안전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길임을 이 아이들에게서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