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학교가 궁금했다.
마을공동체가 활발한 곳, 마을과 함께 다채로운 교육과정을 운영한 초등학교를 졸업한 아이들 속에서 자란 아이들은 다를까? ‘중 2병’이라는 말이 중학교 아이들을 상징하는 말처럼 회자되는 시기였다. ‘내’ 아이가 아닌 ‘우리’의 아이들, ‘아이 하나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온마을 학교를 만들어가는 곳의 아이들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두 번의 실패 끝에 드디어 원하는 학교로 발령을 받았다. 설화산과 광덕산 자락 아래 한적한 시골의 들녘 한가운데, 학교는 고즈넉하고 평화로웠다. 낡은 건물조차 번잡한 도심을 떠난 한가로움이 느껴지는 정겨운 곳이었다.
기대와 설렘을 안고 아이들을 만났다. 여늬 학교와 다를 것 없는 개학 첫날 풍경. 좁은 복도에 아이들의 반가운 목소리들이 넘쳐나고 해맑은 웃음소리가 곳곳을 채웠다. 해맑음과 수선스러움은 영락없는 중학교 아이들 모습이었다.
첫 번째 수업 시간, 첫 만남은 나를 통해 중학교 시간의 소중함을 건네는 시간이었다. 조그만 공간에 채워지는 몰입의 순간. 아~ 이 친구들이라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건넬 수 있겠구나 하는 안도감이 밀려온다. 누군가의 진심을 들어줄 수 있는 마음이 있구나 싶은 것이다.
나를 소개하는 시간에 이어 다음 시간은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 그림 카드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줄 것을 청했다. 자신을 소개하는 일이 쉽지는 않아서 카드를 활용하여 이야기를 끄집어내려는 것이다. 보통 학급에서 한 두 명 정도는 인상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냥 좋아서요.’, ‘돈이 최고죠.’, ‘할 말이 없어요.’ ‘그냥요.’ 생각하고 싶지도 않고 드러내고 싶지도 않고 해 본 적 없는 아이들. 교실은 어색한 침묵과 흐릿한 웃음 사이 단선적인 문장으로 흐르기 쉽다. 그래서 세심한 장치가 필요하다. 첫 수업에서 나를 바라보고 집중하는 아이들과 바라보는 눈빛과 표정이 좋은 친구들을 눈여겨둔다. 그중에 발표를 할 것 같은 친구를 자연스레 지목하여 시작을 한다. 시작이 ‘재밌어서요~’, ‘그냥요~’ 그렇게 진행되면 아이들의 속 깊은 이야기들은 물 건너가는 경우가 많다.
첫 시작을 나름 신중하게 한 것도 있지만 이 친구들은 문장을 구사할 줄 알았다.
진지한 표정과 살짝 긴장한 표정 속에 또렷한 목소리에 실린 문장들에 나도 모르게 집중했다.
이 친구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들려주는 경험이 있었다. 자신의 생각을 전하는데 의미를 부여할 줄 알았다. 한 친구의 이야기가 끝나면 ‘오~~~’ 감탄사가 나왔고, ‘너무 좋은데~~~’ 자연스레 칭찬의 말이 이어졌다.
예를 들자면 ‘흔들리는 물 잔’을 선택한 중학교 2학년 친구.
“인간은 완벽하지 못한 존재입니다. 흔들리는 물 잔이 불완전한 인간의 모습을 그러내는 것 같았습니다. 그 물 잔이 제 불완전함을 보는 것 같았고 채워지지 않은 잔 속의 물은 채워가는 삶을 말합니다. 아직 채워지지 않은 부분을 채워가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자신의 앞으로의 삶을 의미합니다.”
‘알을 깨고 나오려는 병아리’ 사진을 선택한 1학년 친구
‘데미안이 떠올라 이 시잔을 골랐습니다.. 무엇인가를 깨고 나오는 과정에서는 많은 실패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실패를 하더라고 다시 도전하고 또 도전하면서 새로운 세계를 만나고, 그렇게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가고 싶어서 이 사진을 골랐습니다.’
‘사유할 줄 아는 친구들’
중학교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사유’할 줄 아는 아이들이라는 표현을 했다. 얼마나 오랜만인가?
모둠 이름을 정할 때도 그랬다. 모둠 이름이 ‘ㅊㅊ’이다.
모둠 이름이 너무 단순한 거 아니냐고 묻고 싶었다.
‘ㅊㅊ’은 '천천히 창의적으로'이라고 설명한다.
시간이 걸릴지라도 우린 생각하고 협의해서 창의적인 것들을 만들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다고 말을 한다.
‘천천히 창의적으로’가 길어서 ‘천창’으로,
‘천창’이 부르기도 어색하고 딱딱해서 'ㅊㅊ'으로 정했다며 ‘우리는 천천히 생각하나 함축적으로 생각을 전달하겠다는 것을 담아냈다’고 설명한다.
묻지 않기를 잘했다. 이 아이들을 믿는 것이 앞으로 내가 수업을 잘하는 길이라는 생각을 했다.
수업을 하면서 참 귀한 친구들이구나 생각을 했다.
사유할 줄 아는 아이들을 만나는 것은 그 자체로 행복이다.
더구나 도덕 교과를 담당하는 교사에게 사유할 줄 아는 친구, 자신의 생각을 전할 줄 아는 친구들을 수업 시간에 만난다는 일이 얼마나 큰 희망인지를 가르치는 사람은 안다.
진지하고 사유 담긴 문장을 건네지만 아이들은 아이들이다.
수업 시간 장난치기도 하고 수다를 떨기도 한다.
모둠 활동을 하면 그 틈을 노려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가기도 하고 쉬는 시간이 싸우기도 한다. 때리고 도망가다 교무실에 와서 고자질하기도 하고, 엉뚱한 질문과 대답으로 수업 분위기를 흐리기도 하지만 자신의 생각을 담아내는데 주저함이 없다.
수업은 모둠협업수업으로 진행한다. 모둠이 주제를 선정하고 구글드라이브를 통해 함께 자료를 찾고 PPT를 만든다. 수업 시간을 활용하지만 구글은 언제 어디서든 협업을 할 수 있어 좋다. 때론 저녁 시간 시간을 정해서 함께 만나 자료를 만들거나 각자 적당한 시간에 들어가 자함께 생각을 나누고 협업을 하는 수업이 초등학교부터 이어져 자료의 내용도 풍성하고 결과물도 훌륭한 편이다.
모둠활동의 결과물은 발표로 공유하고 발표한 후에는 질의응답으로 생각을 나눈다.
이 아이들의 가장 좋은 점은 ‘질문’을 한다는 것. 질문이 생각보다 날카롭고 좋은 질문이 많다는 점이다. 질문에 대답을 찾고 대답을 들으면서 다양한 관점을 배운다.
사유가 담긴 문장
생각을 나누는 협업
질문이 있어 서로 배우고 성장하는 수업이 가능한 아이들.
그 친구들과 수업을 하면서 나도 행복했다.
사유하는 아이들 속에서 나도 배우고 성장하였다.
학원에 길들여지고 정답을 찾고 문제풀이에 길들여진 아이들에게서 찾기 힘든 사유하는 힘을 이 아이들에게서 보았다.
스스로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아이들의 선택을 응원하는 부모,
아이들이 자신의 꿈을 찾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마을,
스스로 생각하고 함께 협업하며 삶과 앎을 연결하는 학교와 선생님.
어른들의 연대가 만들어 놓은 판 위에서 아이들은 한걸음 한걸음 자신의 삶을 찾아가고 있다.
그 속에서 희망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