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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운한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by 방송과 글 사이

“오늘 교회 학부모회 서기 일 때문에 너무 스트레스받았어.”

남편에게 털어놓았지만, 남편은 무슨 노래를 흥얼거리며 제대로 듣지도 않았다.

“왜 흥얼거려? 내 얘기 안 들어?”

“아니, 듣고 있어. 그래서 뭐가 문제라는 거야?”


남편의 대충 듣는 태도에 순간 화가 치밀었다. 서운한 마음을 그대로 품고 교회 소그룹 모임에서도 속상한 일을 털어놓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음 한구석은 여전히 불편했다. 밤 11시가 넘어 샤워한 딸이 머리도 안 말리고 휴대전화를 보고 있길래 결국 폭발했다.


“지금 시간이 몇 신데 아직도 이러고 있어!”

“엄마 오늘따라 왜 이렇게 예민해?”

“엄마가 예민한 게 아니라 너를 혼내는 거야, 알아?”


딸과 한바탕하고 속이 답답해서 참을 수 없었다. 요즘 쓰지 않았던 일기장을 꺼냈다. 백지에 마음속 응어리를 쏟아내듯 빼곡히 적어 내려갔다. 한참을 쓰다 보니 마음이 자연히 풀렸다. 하나님께 편지를 쓰며 내 마음을 털어놓았다.


“하나님, 왜 제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없나요?”


그 밑에 스스로 하나님의 입장으로 답장을 썼다.


“내가 다 듣고 있다. 네가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 잘 안다.”


이런 식으로 감정을 글로 쓰고 난 뒤엔 마음이 놀랍도록 후련했다. 심리학 연구에서도 ‘표현적 글쓰기’가 부정적인 감정과 스트레스 지수를 크게 낮춘다고 한다. 심리학자 제임스 페너베이커(James Pennebaker)의 ‘표현적 글쓰기’ 연구에 따르면,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글로 쓰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감소하고, 정서 조절 능력이 향상된다고 한다. 특히 부정적인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언어화’하는 과정이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고 했다.




그날 밤, 마음을 조금 정돈한 뒤 딸의 방으로 들어갔다.


“엄마 오늘 나랑 보드게임 한다고 했잖아. 결국 못했네.”

“오늘은 엄마가 너무 바빠서 어쩔 수 없었어. 미안해. 내일은 꼭 달무티 하자."

“알았어, 엄마 서기 하느라 고생했잖아.”


그 말에 마음이 뭉클했다. ‘내 감정에 갇혀, 딸의 마음까지 놓칠 뻔했구나’ 싶었다. 그 후 남편에게 다시 다가가 솔직하게 서운함을 내비쳤다.


“자기, 내 말 좀 제대로 들어줄 수 없어? 정말 속상하단 말이야.”


남편은 말없이 나를 안아줬다. 나는 다시 말했다.


“앞으로 내 말에 귀 좀 기울여줘.”

“알았어, 앞으로는 진짜 잘 들어볼게.”


심리학에서는 누군가가 내 이야기를 공감하며 들어줄 때, 뇌에서는 도파민과 옥시토신이 분비되어 심리적 안정감과 유대감이 형성된다고 한다. 하지만 상대가 내 감정을 공감하지 못하거나, 반응이 없으면 서운함은 분노나 무력감으로 변하기도 한다. 그래서 결국 중요한 건, 누군가가 들어주지 않더라도 내 감정을 나 자신이 인식하고, 말 또는 글로 표현하는 힘이다.


오늘 하루 참 많이 서운했다. 속상했고 화도 났다. 하지만 결국에는 내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했다. 아직 마음속 앙금이 다 사라진 건 아니다. 그래도 서운한 마음을 풀기 위해 부단히 애썼다는 사실 자체가 내겐 의미가 있었다. 그 과정에서 내 감정은 조금씩 가라앉고, 관계는 다시 회복되기 시작했다. 오늘 이만큼 노력했으니, 내일은 더 나아질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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