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오늘도 왕복 세 시간이라니...’
출근길 버스 창밖을 보며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최근에 새롭게 시작한 일인데, 회사까지 대중교통으로 두 번을 갈아타야 했다. 편도로 1시간 반, 길게는 2시간. 왕복하면 3~4시간은 기본이었다. 운전해서 다닐지 잠깐 고민했다. 하지만 나는 운전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데다, 최근에 있었던 접촉 사고로 운전대만 잡으면 겁이 났다. 게다가 운전해도 왕복 세 시간 걸리는 건 마찬가지였다. 기름값, 피로감, 주차 스트레스까지 더해지면 손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다행히 매일 출근은 아니었지만, 한 번만 다녀와도 진이 빠졌다.
‘계속 거리 탓만 할 건가?’
어느 날, 출퇴근 시간에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묘안이 떠올랐다. 종이책을 가져가 볼까 했는데 가방이 무거워지고 팔도 아플 것 같았다. 전자책도 좋을 것 같은데 노안이라 눈이 피로할 것 같아 결국 선택한 건 오디오북이었다 평소 돈 공부를 하는 중이라 부자 마인드에 관한 책을 골랐다. 두 눈을 감고 들으니 오히려 귀에 쏙쏙 들어왔다. 지하철에 앉아 조용히 이어폰을 끼고 듣는데 지루하고 힘든 이동 시간이 어느새 ‘몰입의 시간’으로 바뀌었다.
퇴근길에는 지친 몸을 이끌고 내 플레이리스트를 들으며 전철을 탔다. 익숙한 멜로디 덕분일까. 에스컬레이터와 계단을 오르내려야 하는 환승 길에도 마음이 풀리고 괜찮았다. 운 좋게 자리에 앉으면 폰 메모장에 100일 글쓰기를 써 내려갔다. 지금 이 글도 그때 쓴 글 중 하나다.
미국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Viktor Frankl)은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라는 최악의 환경 속에서도 사람이 삶에서 의미를 발견하면 고통을 견디는 힘이 생긴다고 말했다. 이건 아주 극단적인 예지만, 내 일상에도 충분히 적용됐다. 같은 거리라도 ‘의미 없이 가는 길’은 더 멀게 느껴졌다. 하지만 작은 목적이라도 생기면 훨씬 덜 지치는 게 분명했다. 그걸 나는 힘겨운 출퇴근 길에 체감했다. 이건 심리학에서 말하는 ‘인지적 재평가(cognitive reappraisal)’ 개념과도 닿아 있다. 불가피한 상황을 다르게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정서적 반응이 긍정적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걷는 양도 늘었다. 예전엔 하루 5천 보 걷기도 어려웠는데, 버스와 전철을 타니 하루 6천, 7천 보가 기본이다. 몸은 피곤한데 이상하게 마음은 가벼웠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 이제는 그 의미를 조금 알 것 같다. 출퇴근하는 시간은 여전히 고단하지만, 나는 이 시간을 나를 위한 시간으로 바꾸려 애쓰고 있다. 오늘도 퇴근길, 버스 창밖을 보며 오디오북을 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