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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컨 바람이 그리운 오후

by 방송과 글 사이

아침부터 기분이 수상했어. 집사들 움직임이 바빠지더니, 하나둘씩 나가는 소리가 들렸거든. 순간 직감했지. 오늘도 또 혼자다. 잠깐, 에어컨은 켜져 있나? 응. 고맙게도 켜 놓고 갔네.


그런데 좀 시간이 지나니까 어김없이 ‘띠’ 소리 나더니 꺼졌어. 에어컨은 꺼지고, 내 생명줄도 함께 끊긴 기분. 그나마 돌아가는 선풍기 하나 붙잡고, 의자 위에서 바람 직통으로 맞으며 버텼지.


그래도 정 못 참겠으면 난 샤워실 타일 위로 기어가. 차가운 타일이 내 유일한 여름 피난처거든. 아니면 침대 밑, 거기 그늘지고 바람도 안 통하지만. 어떻게든 덜 더운 곳을 찾아내는 것도 나름 고양이의 생존 본능이야.


사람들은 고양이는 털이 있으니 따뜻해서 좋겠다고 하는데, 아니거든? 우린 땀샘이 발바닥에만 있어서 체온 조절이 어렵다고. 게다가 그 털... 여름엔 덫이야. 그래서 요즘은 정말 집사들 원망하게 되더라. 너무 더운 날, 혼자 둬버리면 나도 모르게 울컥하거든.


물론 들어오면 또 마음이 약해져. 내가 선풍기 앞에서 널브러져 있으니까 집사들이 “까미 너무 더웠지?” 하고 말하더라. 그 한마디에... 참. 나란 고양이, 마음이 또 스르륵 풀려버린다니까. 그러고는 냉기 뿜뿜한 에어컨 바람 속에서 몸을 쭉 펴고 누웠지. 이제 살았다 싶었어.


하지만 말이야. 다음엔 외출할 때, 에어컨을 끄지 말고 나가줘. 잠깐일 줄 알아도, 내겐 긴긴 하루 같다고.

P.S. 고양이는 여름에 특히 더위에 약한 동물이야. 땀샘이 거의 없어서 열을 밖으로 잘 못 내보내거든. 집에 혼자 두는 시간이 길어진다면, 에어컨 타이머 대신 일정 온도를 유지해 주는 절전모드나 시원한 쿨매트, 물 많이 마실 수 있는 그릇 두세 개 정도는 준비해 줘. 나도 숨 쉴 틈은 필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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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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