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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고 싶은 날도 있어

by 방송과 글 사이

가끔 침대 밑으로 들어가게 돼. 그냥 거기 있으면, 아무도 못 건드리거든. 몸도 마음도 눌리는 느낌이 싫을 땐 그 밑이 딱 좋아. 아늑하고,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무엇보다도 집사들 손이 안 닿아. 그게 제일 중요하지. 아무리 좋아하는 집사라도 귀찮게 구는 날은 있으니까.


그날도 그랬어. 낯선 손님이 와서 나를 예쁘다며 연신 쳐다보는데, 솔직히 말해서, 너무 시끄럽고 부담스러웠어. 나, 그 사람 몰라. 그냥 내 냄새도 모르는 손이 자꾸 내 머릴 만지는 거야. 나는 사람처럼 말은 못 하지만, 표현은 할 줄 알아. 내 방식대로. 휙, 돌아서서 침대 밑으로 쏙 들어갔지. 그 공간이 좋은 이유? 안 보이고, 안 들리고, 그냥... 조용해서.


가끔은 나도 혼자 있고 싶다고. 등을 맞대고 자던 집사 옆도 좋지만, 그건 내가 괜찮을 때 얘기지. 기분이 우울한 날엔 그 따뜻함조차 귀찮을 수 있잖아? 집사가 날 찾는 소리 들리긴 했어.


“까미야~ 어디 갔어?”


옷장 문 열리는 소리도 들렸고, 안방으로 발소리가 다가오는 걸 느꼈지. 근데... 그냥 좀 두면 안 돼? 나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 내가 까칠하다고? 아니, 난 그저 ‘고요’를 필요로 하는 고양이일 뿐.


가끔 여집사도 그러더라. 문 닫고 혼자 있고 싶다면서 안방에서 조용히 울기도 하잖아. 딱히 말은 안 해도, 나는 다 알아. 그럴 땐 괜히 괜찮은 척하는 집사 곁에 소리 없이 가서 앉아 있기도 해. 여집사가 혼자 있고 싶어 하면, 눈치 빠른 나는 침대 밑으로 들어가. 손은 닿지 않지만 멀찌감치 여집사 목소리가 들렸어.


“까미, 너도 혼자 있고 싶구나. 괜찮아지면 나와줄래?”


참, 웃기지. 서로 말 안 해도 통하는 순간이 있어. 그래서 천천히, 아주 아무렇지 않다는 듯 침대 밑에서 나와줬지. 내가 먼저 다가가지 않지만, 문득 괜찮아졌을 땐 슬쩍 다가가서 등을 맞대주기도 해. 그게 고양이의 방식이니까.

P.S.

고양이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숨는 습성이 있어. 특히 조용한 어두운 공간을 찾아서 몸을 웅크리지. 그건 불안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감정을 회복하는 시간이야. 절대 억지로 꺼내지 말고, 기다려줘. 혼자 잘 정리하고 다시 나올 테니까. 그러다 어느 날 슬쩍 네 무릎에 올라와 있을지도 몰라. 그게 우리 스타일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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