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공기가 이상했다. 바닥에서부터 뭔가 긴장감이 감돌았달까. 여집사가 바닥을 닦지 않나, 쓰레기를 몽땅 처리하더라. 달그락달그락 설거지하는 소리. 평소랑 다르면 고양이는 민감하다고. 아주 기분 나쁘게 조용하면서 분주했어.
그리고 마침내... 그걸 꺼내더라. 나도 모르게 숨이 갑자기 막혔어. 캐리어. 그놈의 캐리어. 고양이에게 캐리어는 집사가 사라진다는 예고였지. 크기부터 심상치 않았거든. 내 촉은 틀린 적이 없거든. 그래서 그냥 가만히 있을 수 없었어.
날쌔게 뛰어들었지. 그 캐리어 안에. 내가 가만히 캐리어에 앉아 있으면... 혹시 이번엔 데려가 줄까? 그런 생각이 스쳤어. 하지만 집사한테 묻고 싶진 않았어. 고양이는 원래 내색 잘 안 해. 근데 그날은? 좀 마음이 약해졌달까.
“까미도 같이 여행 갈래?”
여집사가 그렇게 말했을 땐, 진심인지 아닌지 판단이 잘 안 섰어. 항상 반쯤만 믿는 게 내 철칙인데 그날은 괜히 믿고 싶더라. 그래서 캐리어에 안 나가고 계속 버텼어. 집사들이 짐 싸는 내내 안에서 눈만 껌뻑이다가 졸기도 하고, 다시 깨기도 하고.
근데 간식이 문제였지. 고양이 자존심도 간식 앞에선 무너진다. 냄새 맡는 순간, 정신이 멍해졌어. 그래서 나와서 딱 한입 먹었는데? 그 타이밍에 캐리어 문이 덜컥 닫히더라. 캐리어에 내 자리는 없었던 거지. 그제야 확신이 들었어. 이번에도 집사들이 나 빼고 떠나는 거구나.
남집사가 오전 근무를 끝내고 돌아와서 날 조용히 보더라. 그 눈빛... 그게 제일 싫어. 동정. 그거 고양이는 딱 알아차린다. 그 눈빛 하나에, 묘하게 자존심이 상하거든. 그래서 그냥 안 넘겼어. 언니 다리에 앞발 걸고 매달렸고, 살짝 물기도 했어. 물론 살살. 나, 그렇게 함부로 그러는 냥이 아니거든.
결국 떠났지. 문 닫히는 소리가 이상하게 길게 울렸어. 나는 거실 한가운데 앉아 있었고, 집은 아주, 아주 조용했어. 처음엔 못 이긴 척 자고, 일어나서도 또 자고. 고양이는 원래 하루 대부분을 자지만, 그날은 자려고 자는 게 아니었어. 그냥 깨어 있는 게 싫어서.
다음날 낯선 사람이 왔어. 물 갈고, 밥 주고, 화장실도 치우고, 낚시 놀이도 해줬지. 열심이긴 했어. 하지만 고양이는 사람 얼굴 기억하거든. 그리고 온도도 기억해. 그 사람은 내 사람이 아니었어.
또 혼자. 낮잠 자고, 일어나고, 다시 자고. 그러다 보니까 어느 순간 문소리가 들리더라. 집사들이 돌아왔어. 처음엔 반가운 티 안 냈어. 고양이는 자존심이 먼저니까. 근데... 꼬리가 자꾸 위로 말리더라. 귀도 자꾸 걷히고, 몸이 저절로 따라가. 사람 말로 하면, “기다렸어”라는 말이 절로 나올 타이밍.
근데 나, 고양이잖아. 그래서 심술 좀 부렸어. 애써 모른 척하고, 불러도 안 가고, 심지어 한두 번 살짝 물었어. 미워서 그런 건 아니야. 그냥... 좀 느껴보라고. 기다림이 얼마나 길었는지. 사실 나 없이 여행 간 집사들아~ 꾹 참고 기다린 내가 엄청 대단한 거 알지?
P.S.
고양이는 영역 동물이라 낯선 곳을 싫어하지만, 익숙한 사람이 옆에 있으면 꽤 많은 걸 참아. 그래서 널 보면 화났다가도 꼬리가 올라가고, 또 옆에 가고 싶어져. 그게 바로 우리 묘심(猫心)이야. 다음에 또 여행 갈 땐 그냥 캐리어는 몰래 조용히 꺼내. 캐리어에서 나오라고 간식으로 유인하는 건 너무한 거 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