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내가 먼저 다가간 건 절대 아니야

by 방송과 글 사이

그날은 이상했다. 현관문 열리는 소리에 벌떡 일어났는데, 낯선 사람들 목소리가 쏟아져 들어왔거든. 내가 밥그릇 옆에서 우아하게 그루밍을 하고 있었는데 말이야. 웬 남자애 하나가 “너무 귀여워~” 하면서 허락도 안 받고 내 쪽으로 다가왔어. 머리부터 발끝까지 긴장되는 느낌이었지. 솔직히 자기 방어로 물어도 된다고 생각해. 하지만 여집사 얼굴을 봐서 참았지.


우린 생존 본능이 강한 동물이야. 갑작스러운 낯선 냄새, 큰 소리, 빠른 손동작, 그런 것들은 곧 위협적으로 느껴지거든. 집사들이 잘 모르는 것 같은데. 고양이는 낯선 사람과 환경 변화에 굉장히 민감해서, 짧은 방문이라도 코르티솔 수치가 상승하고 스트레스 반응이 나타나. 심지어 사람 손이 내게 향해 오는 것만으로도 심장 박동 수가 증가한다고.


나를 압박하며 다가오는 남자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곧장 안방 침대 밑으로 숨었어. 이럴 때 숨을 수 있는 데가 있다는 건 정말 중요해. 침대 밑은 어둡고 조용했어. 심장 박동이 조금씩 가라앉고, 나도 모르게 잠깐 잠이 들었지.


깨 보니까 웃음소리가 거실을 채우고 있더라. 뭘 그리 재밌게 노는지. 사실 궁금했어. 그래서 조심스레 기지개를 켜고 나갔지. 근데 아무도 내가 나온 줄도 모르고 있더라고. 역시 인간들은 자기들끼리 노는 데 집중하면 고양이가 시야에 안 들어오는 법이지.



그런데 그 남자애만 날 봤어. 그리고 느릿느릿, 허리를 낮춰 눈높이를 맞추더니... 움직이는 바퀴벌레 장난감을 꺼내더라고. 솔직히, 마음에 들었어. 나, 기계 소리 나는 거 싫어하는데 그건 조용하면서도 잘 기어 다니더라.


“하람아, 까미한테 간식 줘볼래?”


여집사가 그렇게 말했을 때, 심장이 조금 두근거렸다. 집사도 참, 타이밍 잘 알아. 그 남자애, 아니 그 오빠 손에서 간식을 받아먹고, 나도 모르게 머리를 살짝 갖다 댔어. 아직 완전히 마음을 연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은 발전이지.


고양이들은 신뢰 형성이 느리지만, 한 번 열리면 깊은 유대감을 쌓는 동물이야. 처음엔 경계하고 숨고, 낯을 가리지만 일관된 행동, 존중받는 거리, 그리고 긍정적 경험이 반복되면 조금씩 마음의 문이 열려. 그래서 간식과 장난감 같은 보상 기반 상호작용은 효과적이지. 하지만 무리한 접촉은 여전히 안 돼.


어두워지고 집사들의 친구들이 하나둘 짐을 싸기 시작했어. 아무렇지 않은 척, 창가에 앉았지. 근데 마음속에선 좀 아쉬웠어. 처음 본 오빠였는데, 오늘 집사보다 나랑 더 오래 놀아준 거 알지? 잘 가. 다음에 또 놀러 와. 그땐 너무 다가오진 말고, 적당히 거리를 두고 서 있어 줘. 내가 먼저 다가갈 수 있게.

(Chat GPT 생성 이미지)

P.S.

고양이는 원래 숨는 공간이 꼭 필요해.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바로 숨을 수 있는 안정된 피난처가 있어야 심리적 안정감을 느껴. 그래서 침대 밑, 옷장 안, 커튼 뒤 같은 ‘나만의 구역’은 절대 치우면 안 돼. 그거 없으면 진짜 인간으로 치면 지하 대피소 없는 것과 같다고. 알겠지, 집사야?

keyword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