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무거워지고 울적해질 때면 나는 어김없이 정리, 청소를 한다. 그날도 친정언니와 통화하면서 친정오빠의 빚 문제로 머리가 아프고 답답했다. 아이 방을 둘러봤다. <신박한 정리> 방송 전문가가 된 것처럼 이래저래 가구를 재배치하고 오래되고 낡은 것부터 버리기 시작했다. 자연히 마음까지 비워지는 것 같았다.
다음날, 한결 개운해진 마음으로 자고 일어난 아이에게 깨끗해진 방을 짜잔 보여주면서 엄마의 노고를 치하받고 싶었다. 하지만 왜 엄마 마음대로 바꾸고, 함부로 자기 물건을 버렸냐고 딸아이의 원망이 시작됐다. 급기야 울며불며 아끼는 머리핀과 머리띠를 찾아내라고 난리였다. 분명 허락 없이 아이 물건에 손대고 마음대로 버린 내 잘못이 맞다. 그런데 전혀 인정하고 싶지 않았고 아이를 다독여야 한다는 마음의 여유는 1도 없었다. 나도 화가 나서 등교하려는 아이에게 엄마가 힘들게 정리했는데 고생했다는 말 한마디 없냐고 서운함을 내비쳤다.
아이는 등굣길에 내가 아닌 아빠한테 전화를 했다. 엄마에 대한 원망을 아빠한테 고자질하나 싶었는데 아직 엄마 화났냐고 먼저 물어본 다음에 돌려받은 소중한 머리핀은 제자리에 있는지 확인했단다. 지나고 보니, 엄마보다 아이가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방의 마음 상태를 먼저 확인하고 자기 것을 스스로 지키는 딸. 반대로 나는 내 마음 상태를 정확히 인지하지도 못한 채 마음을 풀 곳을 찾고 있었다. 그게 원망이든, 화든 상관이 없었다. 울적한 마음이 다른 감정으로 전이될 수만 있다면.
일단 아이가 내 시야에서 사라지니 아직 추스르지 못한 내 감정의 소용돌이는 재택근무 중인 남편에게 향했다. 어젯밤 분명히 내가 친정언니와 울면서 통화한 것을 알았을 텐데 위로는커녕 코를 골고 잤던 남편. 나에게 있어 대역죄인이 분명했다. 그나마 예전에 으레 알겠지, 왜 그런 말을 안 해주나 혼자 서운해하지 않고 남편에게 솔직한 감정을 털어놨다. 아이 방 정리도 했는데 왜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없냐, 어제 힘들었는데 왜 위로도 안 하고 잤냐고... 아이처럼 그렇게 남편에게 투덜댔다. 2년 전만 하더라도 나한테 왜 화를 내냐고 했을 남편도 그러려니 하고 나를 안아주며 아직 영혼은 없지만 고생했다고 말해줬다. 나는 그 말이 듣고 싶었고 듣고 싶은 말을 듣고 나니 실제 상황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지만 남편의 고생했다는 그 말 한마디로 괜찮아졌다. 거짓말처럼.
하루가 지나니 알겠다. 친정 문제로 인한 우울한 내 마음을 등교하는 아이에게, 재택근무하는 남편에게 마치 바이러스처럼 전염시켰다. 다행히 어린아이도, 무뚝뚝한 남편도 이런 나를 각자의 방식으로 받아주고 품어주고 있었기에 내 마음의 고통까지 전가되진 않았다.
그때 친정언니와 통화하면서 울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서 아이는 갑자기 나보다 더 큰 소리로 울었다. 왜 우냐고 물어보니 엄마가 우니까 자기도 우는 거였단다. 그리고 아이는 심문을 하듯이 전혀 물러설 기색도 없이 이모 때문이냐, 외삼촌 때문이냐, 무슨 일이냐 아주 소상히 엄마가 운 이유를 궁금해했다. 난 뭘 그런 걸 궁금해하냐고 짜증을 내면서 딸에게 대충 말하긴 했지만 조금씩 마음이 풀리는 걸 느꼈다. 나도 내 마음을 모르겠는데 내 마음을 알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아이에게 내 마음을 보여주니 가슴속 밑바닥의 마음을 조금 알 것 같았다. 나도 딸이 속상한 일이 생기면 우선 아이를 안아주고 정확히 무엇 때문에 힘들었는지 물어봐야겠다. 오늘도 어린 딸을 통해서 하나 깨닫는다.
"잘 모르면 우선 찬찬히 물어야 한다. 내가 모르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시작되는 과정이 공감이다. 제대로 알고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조심스럽게 물어야 공감할 수 있다. 그래서 공감은 가장 입체적이고 총제적인 파악인 동시에 상대에 대한 이해이고 앎이다."
"과녁에 맞히지 않은 채 그냥 흘러가는 얘기는 아무리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들어줘도 상대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상대는 공감받은 느낌을 받지 못한다. 나는 애썼지만 상대는 고마움을 느끼지 않는다. 수다나 논쟁, 험담 사이를 맴돌다 끝나기 쉽다. 자리를 털고 일어날 때 허무하다."
- 정혜신 <당신이 옳다>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