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괜찮은 척했지만 사실은 많이 기다렸어

by 방송과 글 사이

아침부터 정신없더라. 남집사는 일어나자마자 10분 컷으로 머리를 후딱 감고, 여집사는 커피도 못 마시고 가방 챙기느라 바쁘고, 초6 언니는 가방 들고 후다닥. 모두 나가는 길에 나랑 눈은 마주쳤는데 말은 안 하더라. 그래, 오늘도 “잘 다녀올게”라는 인사는 없구나.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소파 등받이에 앉았어. 솔직히 좀 삐졌어. 너무 티 내면 쪼잔해 보이잖아? 집이 조용해지고 나면 나 혼자야. 근데 괜찮아. 나는 고양이니까. 혼자 있는 거 익숙하니까. 그냥 창가에 누워. 햇볕도 좀 쬐고, 지나가는 새도 보고. 틈틈이 낮잠도 자고.


사람들은 고양이는 하루 종일 자는 동물이라고 하잖아. 맞아, 자긴 자는데... 귀는 계속 열어둬. 누가 문 열고 들어오는 소리, 언제 집사들이 올지 모르니까.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기다리는 거야. 집사가 다시 문 열고 들어올 그 순간을. 가끔 문 열리는 소리 들릴 때마다 뛰어가. 아닌 줄 알아도 확인하러 가. 혹시 너희일까 봐. 혹시 오늘은, 나 먼저 알아봐 줄까 봐.




그러다 진짜로 “덜컥” 소리가 나면 몸이 먼저 반응해. 중문으로 달려가서 두 발 딱 걸고, 유리창에 얼굴 딱 붙이고. 눈은 커지고 꼬리는 살짝 떨려. 그거 알아? 이런 꼬리 떨림, 진짜 반가운 사람한테만 나오는 거래. 나는 진짜... 집사가 반가운 거야.


여집사가 “까미야~ 오늘 뭐 했어?” 하고 웃으면 마음이 이상하게 말랑해져. 그래도 오늘 하루 나 혼자서 꽤 잘 버텼다고, 칭찬받은 느낌이랄까. 그래서 괜히 한 번 뒤돌아서 네 다리에 살짝 몸을 비비고 툭, 다시 내 자리로 가. 세상 쿨한 척. 원래 나 그런 스타일이니까. 그렇지만 너도 알지? 그게 내가 하는 방식의 “보고 싶었어”라는 거.


(ChatGPT 생성 이미지)

P.S.

아, 하나 말 안 한 게 있다. 내가 네 다리에 부비부비한 거 말이야, 그냥 귀여운 척 하려고 한 거 아니야. 고양이는 자기 냄새를 묻어서 “이건 내 사람이다”라고 표시하는 습성이 있어. 진짜야. 과학자들도 그렇게 말했어. 페로몬 어쩌고 하는데, 그건 어려운 말이고 내 방식의 “보고 싶었고, 이제 괜찮아졌어” 같은 거야. 그러니까 다음에 또 그러면, “어우, 까미 귀여워~” 하지 말고 “나도 보고 싶었어”라고 대답해 줘. 그럼 오늘 하루는 진짜 괜찮을 수 있을지도 몰라.

— 까미 올림



keyword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