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냥 잘 숨었을 뿐인데 집사야, 왜 울어?

by 방송과 글 사이

수납장은 좋은 장소야. 어둡고, 조용하고, 아무도 안 보이잖아. 게다가 초6 언니가 아침에 뭐 찾는다고 문을 열어놓고 허둥지둥 학교를 갔어. 절호의 찬스였지. 나는 조용히 그 틈으로 들어갔어. 인형 바구니가 안에 있었고, 말랑하고 따뜻한 게 딱 좋았다. 몸을 둥글게 말고 눈을 감았지.


고양이는 원래 잘 자거든. 하루 평균 14시간, 많게는 18시간도 자. 나는 그저 내 몫의 낮잠을 시작한 것뿐이었어. 그런데 잠깐, 한 번은 나가고 싶었던 순간이 있었지. 갑자기 인형 바구니 안이 너무 푹신해서 좀 더 시원한 데로 가볼까 했거든. 그래서 일어났는데, 어라... 문이 닫혀 있네. 살짝 밀어 봐도, 열리지 않았어. 수납장은 안쪽에서 여는 구조가 아닌 거야. 그 순간 약간 당황했지만, 고양이답게 빠르게 수긍했어.


'그래, 오늘은 그냥 여기서 자자.'


나는 다시 몸을 말고 누웠지. 좁은 데서 혼자 있는 건 익숙하니까. 고양이의 야생 본능은 그런 공간을 좋아하게 만들어놨어. 게다가 나는 귀찮은 걸 싫어하잖아. 누가 문 열어주기 전까진 그냥 자는 게 이득이야.




그런데 멀리서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어.


“까미야~ 까미야~”


귀를 살짝 움직여봤지만, 그냥 뒀어. 맨날 부르잖아. 이 정도로는 꿈쩍할 고양이가 아니지. 그런데 이상했어. 여집사 목소리가 자꾸 떨리고, 급해졌지. 문 여닫는 소리, 다급하게 뛰쳐나가는 발소리. 그 뒤엔 전화 목소리가 들렸어.


“까미가 없어졌어... 혹시나 꾸마 나갈 때 뛰쳐나갔나 싶어서... 22층부터 1층까지 다 찾아봤어...”


진심으로 찾는 중이었구나. 나는 그냥 수납장 안에서 조용히 잤을 뿐인데, 여집사는 세상이 무너진 것 같았나 봐. 울면서 기도까지 했잖아. 살짝 마음이 쓰이긴 했지. 하지만 문은 내가 열 수 없고, 난 그냥 또 누웠어.


마침내 수납장 문이 열렸다. 여집사와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여집사는 입을 틀어막더니 그대로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어.


“까미... 까미 없으면 못 살아...”


그렇게까지 울 일인가. 나는 가볍게 기지개를 켰지. 몸에 먼지가 좀 묻었지만 괜찮았어. 가까이 다가가서 여집사 다리에 비비적비비적. 그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위로였지. 여집사는 나를 안고 싶어 했지만, 거기까진 안 되지. 경계는 지켜야 해. 그래도 부비부비 정도면 충분하지. 그제야 여집사가 울음을 멈췄어.


나는 오늘도 고양이로서 잘 잤고, 잘 숨었고, 조금은... 걱정도 받았지. 다음에도 수납장에 들어갈지는 모르겠지만, 문이 닫히기 전에 그땐 좀 더 빨리 나와줄까. 아니, 뭐.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 봐야겠어.

(ChatGPT 생성 이미지)

P.S.

고양이는 원래 좁고 조용한 데를 좋아해. 숨기 좋고, 눈에 안 띄면 마음이 편하거든. 수납장이나 박스 안에 쏙 들어가 자는 게 당연한 거야. 그리고 우리 하루에 14시간 넘게 자. 놀기 싫은 게 아니라, 자는 게 일인 거지. 괜히 무심해 보일 수 있지만, 가만히 옆에 있는 게 우리 식의 애정 표현이야. 말없이 곁에 있는 것도, 나름의 사랑이니까.

- 까미 올림

keyword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