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위하여 함께

신앙의 여정 시리즈. 2.

by 박상민


인간의 성장과 발달에서 꼭 발달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했을 때 바로 발달과업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청소년기의 발달과업은 무엇일까요? 에릭슨(Erikson)은 위기를 잘 극복하여 '현재의 자기'를 잘 수용함으로써 객관적인 자아정체감을 확립해 나가는 것이 청소년기의 발달과업이라고 주장합니다. 솔로몬에게도 인생의 과업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성전건축이었습니다. 역대하 2장은 크게 3 부분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2장 1~2절과 17~18절은 성전건축 준비와 일꾼들, 3절부터 10절은 솔로몬이 두로(베니게-페니키아) 왕 후람에게 쓴 편지 11절부터 16절은 후람이 솔로몬에게 보낸 답신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보통 역대하 2장을 신학자들은 솔로몬의 성전건축 위한 준비라고 합니다. 그런데 놓쳐서는 안 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솔로몬이 지혜를 구한 이유를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뜻이라고 설명한 것처럼 성전 건축에도 솔로몬의 명확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의 성전 건축의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이름 때문이었습니다.


1. 무엇을 위한 여행인가? 이름

솔로몬이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고..(대하 2:1 상반 절) 솔로몬이 성전 건축을 위한 것을 바로 하나님의 이름을 위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인간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이름이 존귀하게 여기는 것을 원합니다. 이런 분위기는 유교문화가 짙게 깔린 우리나라에서는 더욱 심합니다. 입신양명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유교의 최초의 경전인 효경에 나오는 말입니다. 입신- 몸을 바로 세워 양면 - 도를 행하여 후세에 명성을 드날리는 것이 효도의 마지막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세계 곳곳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며 살아갑니다. 일본의 국보이자 세계문화유산인 도다이지의 임채현 씨,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희망봉의 유태평양 씨, 중국의 만리장성의 이재하 씨, 심지어 태국 시밀란 국립공원 한 산호초에는 '박영숙 씨‘ 다들 자신의 이름을 남기며 살고 싶은 마음은 알겠지만 이런 모습은 여행의 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이런 상황 속에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기 위함이 아닌 여호와의 이름을 위해 성전을 건축한 솔로몬의 태도는 신앙의 여행 가운데 있는 우리를 돌아보게 합니다. 본문의 3절부터 6절은 두로와 후람에게 보낸 서신입니다. 그런데 이웃나라 왕에게 보낸 서신 치고는 굉장히 독특한 내용이 나옵니다. 성전 건축을 하는 이유를 말하며 자신의 신앙 고백이자 하나님에 대한 내용을 전합니다.


4절은 성전을 건축하는 이유가 바로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함을 알립니다. (대하 2:4) 이제 내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여 구별하여 드리고 주 앞에서 향 재료를 사르며 항상 떡을 차려 놓으며 안식일과 초하루와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절기에 아침저녁으로 번제를 드리려 하오니 이는 이스라엘의 영원한 규례 니이다 5절은 하나님은 이 세상 어느 신과도 비교할 수 없는 크신 분임을 고백합니다. (대하 2:5) 내가 건축하고자 하는 성전은 크니 우리 하나님은 모든 신들보다 크심이라 심지어 6절은 당시 문화였던 신전을 짓고, 그 안에 신을 모시는 형태를 넘어선 하나님의 위대함을 나타냅니다. 이해가 쉽게 현대어 성경으로 읽어보겠습니다.


(대하 2:6) 물론 여호와를 위해서는 인간이 본래 성전을 지어 드릴 수가 없습니다. 저 끝없이 드넓은 하늘도 그분에게는 오히려 너무 좁은데 어떻게 그분의 성전을 지어 드린다 할 수 있겠습니까? 나는 다만 그분에게 제물을 바치는 성전이나 지어 드리려고 합니다. (현대어 성경)


이처럼 솔로몬의 성전건축은 자신의 이름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진행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의 여정은 자신의 이름을 남기고 싶어 하는 마음을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을 때 시작합니다. 신앙의 여정 가운데 내 안에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해 사는 것임을 고백할 때부터 진정한 신앙의 여정을 경험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무엇이 되어야 하고, 내가 가장 높은 곳에 오르고, 가장 많이 가져야 하는 목적을 가진 여행은 언제나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삶은 여행이 아닌 자신의 삶 가운데 자신의 것만을 쌓아놓고, 성취에 유무에 따라 롤러코스터 감정과 태도와 모습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삶에 이제 질문해 봅시다. 내가 살아가는 삶이 지금 나의 만족과 나의 이름을 만을 위한 삶이 아닌지 스스로에게 질문해 봅시다. 그리고 천천히 이 말씀을 읽고, 또 써 봅시다. 고전 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2. 이름을 위해 여행하려면? 함께하라



솔로몬이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하나님의 성전을 만들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 속에서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바로 이 일을 위해 홀로 일하는 것이 아닌 함께 만들어 갑니다. 먼저 2절을 보면 어떤 이들은 유다의 여러 산에서 돌을 가져오게 했고, 어떤 이들은 돌을 건축장으로 옮기게 하고, 또 어떤 이들은 감독하는 일을 나누어 함께 해나갔습니다. 그 인원이 153600여 명입니다. 그뿐 아니라 이 과정 속에 자신의 아버지와 관계를 가지고 있었던 이웃 나라의 왕인 두로의 왕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성전을 위한 기능공까지 요청합니다. 성전건축을 위해 협조를 구하는 솔로몬의 편지 가운데 이웃나라의 왕이었던 두로(역사 속에서 페니키아)는 다음과 같이 답신합니다. 역대하 2장 11절부터 12절을 읽겠습니다. 두로 왕 후람이 솔로몬에게 답장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므로 당신을 세워 그들의 왕을 삼으셨도다. (대하 2:11) 이웃나라 왕이었던 두로 왕 후람이 솔로몬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이라는 것을 인정하며 함께 하겠다는 뉘앙스를 비친 것입니다. 심지어 두로 왕은 그 성전건축을 도울 유능한 기술자까지 함께 할 수 있도록 보냅니다. (대하 2:13) 내가 이제 재주 있고 총명한 사람을 보내오니 전에 내 아버지 후람에게 속하였던 자라 그는 그저 재주 있고 총명할 정도가 아니라 자신의 현재 두로 왕의 아버지였던 왕의 모사 즉, 왕의 조언자인 사람이었습니다. 이처럼 솔로몬은 성전건축을 위해 주위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았고, 그들과 함께 하며 하나님을 향한 성전 건축이라는 과업에 발걸음을 한발 뗀 것입니다.


신앙의 여정 속에서도 이 같은 자세가 필요합니다. 나의 신앙을 위해 최선을 다해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을 찾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서 신앙에는 공동체가 중요합니다. 구원을 경험하고 신앙을 표현하는 것은 언제나 공동체 안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당시 바벨론의 포로였던 이스라엘 백성을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이 민족은 그들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요? 가족은 헤어졌고, 전통은 무너졌으며, 다른 민족과의 결혼으로 인종적 순수성은 희석되었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회복되어야 하는 단어는 바로 “함께”였습니다. 모든 것이 무너진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위하여 함께 하기 시작하면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공동체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함께 웃고, 함께 울고, 함께 사역하며 서로를 통해 배우고, 길을 찾아가고, 서로 세워갑니다. 신앙의 여정 속에서도 때로 지치고, 어려울 때 함께 걷는 이들이 있으면 다시 힘을 내어 여행을 해나갈 수 있습니다.


시인 윤동주 역시 그를 만든 것은 함께하는 이들이었습니다. 어릴 적 함께 했던 신앙 공동체 북간도의 명동촌은 그를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시야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살아가는 시선을 만들어 주었을 것입니다. 우선 그 마을의 가장 큰 어른이었던 김약연의 유언은 그에게도 커다란 마음을 가져다주었을 것입니다. 김약연의 “내 행동이 내 유언이다.”라는 유언을 제자들은 그대로 이어 살았고, 그런 삶을 살기 위해 윤동주는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을 것입니다. 이런 그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영향을 받은 친구 독립운동가 송몽규, 그리고 민주화 운동에 빼놓을 수 없는 문익환 목사까지. 그들은 이 나라가 가장 부패하고 어둡던 그 시기에 빛과 소금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될 수 있던 것은 아마도 함께라는 단어의 힘이 그 안에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 모두에게는 한 가지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을 위하여 여행하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짓는 솔로몬은 묻습니다.

내 행동이 내 유언이라고 말하는 김약연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고 말하고 있는 윤동주는 당신에게 묻습니다.

너는 과연 무엇을 위해 사는가?

그리고 지금 너와 함께 길을 걷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리고 그들은 우리에게 말할 것입니다.

“그대여... 이제 다른 것을 다 내려놓고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함께 이 여행을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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