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수영강을 걷는다
부산. 태어나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 머뭇거리는 무궁화호를 타고 밤새 도착한 그곳은 해운대 역이었다. 열차에서 내려오는 계단. 비릿한 바다 내음이 평생 내륙에서 살던 나의 코끝을 살짝 건드렸다. 몽환적인 햇살 아래 하염없이 거닐다 멈춘 곳은 해운대 바다였다. 거대한 바다는 요란스러웠고, 귓가에는 생소한 억양들이 어우러졌다. 분주함 속에 시선을 어디에 둘지 몰라 헤매다 며칠 뒤 기차에 올랐다. 낯선 나라에 방문한 생경함이 부산에 있는 시간 내내 나와 함께 했다. 빨리 올라가고 싶은 마음에 새마을호를 탔다. 다행히 새마을호는 무궁화호보다 빠르고, 부산의 어색함보다 눈치 챘는지 서둘러 고향으로 향했다.
다시 찾은 부산. 여행자가 아닌 살아야 하는 장소로 바뀐 곳. 매일 바쁜 업무 속에 낯선 마음을 달래는 호사를 누릴 여유는 없었다. 나는 버텨야 했고, 견뎌야 했다. 시간은 KTX보다 훨씬 더 빠르게 지나갔다. 그 시간 속에 부산은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았고, 그저 가끔 먹는 돼지국밥의 쿰쿰한 냄새와 시원 새콤한 밀면만이 내가 부산에 왔다는 것을 알게 해 줬다. 그렇게 나를 잊어버리고 살아가자 나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하루하루 주린 배를 쥐어 잡고 허겁지겁 닥치는 대로 입어 넣어 허기를 겨우 달래며 부산을 버티고 있었다.
온몸은 차츰 겨우내 수분이 빠져버린 볏단처럼 축 늘어졌다. 오래된 고목의 껍질처럼 얼굴은 굳어 갔고, 눈동자는 초점 없이 이따금씩 하늘을 바라봤다, 마음은 오래전부터 비명을 지르고 있었는데, 받아들일 용기가 없었다, 우울했고 외로웠다. 삽시간에 마음의 어려움은 몸으로 번졌고, 이에 전염된 몸은 점차 시들고 있었다. 과거에도 이런 경험이 있었다. 마음이 온몸을 뒤덮어 무기력이 전신에 퍼지려는 그 시절. 그때 내가 찾은 곳은 근처 저수지를 품은 공원이었다. 고요한 나무와 흔들거리는 저수지의 물결은 내게 위로의 말을 건넸고 그렇게 며칠씩 매일 거닐다 보면 나는 다시 일어설 힘을 찾곤 했다.
그래서 였을까? 나는 내게 안부를 묻는 곳을 찾았다. 하루는 온통 동네를 뒤적거리다 찾은 도도한 강줄기 앞에 멈춰버렸다. 수영강이었다. 그 옛날 웅장함에 놀라 뒷걸음치다 멈춘 해운대 바다와는 달랐다.
내가 멈추자, 수영강도 멈췄다. 그리고 천천히, 조심스레 내게 물었다. “괜찮아?”
어떠한 대답도 할 수 없는 그 질문.
그 질문 앞에서 긴 시간 가만히 있던 나는 말라가는 입술에 애매한 침만 바르고 있었다. 수영강은 서두르지 않았다. 그저 넓은 품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이 점점 지나며 내 마음이 미세하게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의 만남이 시작됐다.
수영강이 노을을 함 껏 머금은 어느 날.
두 눈에는 눈물 가득했다.
그때부터였을까? 수영강도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는 아무 말 없이 같이 걸었다.
그리고 얼었던 마음이 녹고, 봄이 찾아왔다. 이제는 수영강의 벗들도 내게 안부를 묻는다. 은빛 가득한 물결이 찰랑거리며 “힘든 건 없냐고?” 가까스로 피어난 이름 모를 작은 들꽃이 “외롭진 않냐고?” 저 마다 할 이야기가 있는지 재잘거리며 안부를 묻는다.
수영강의 환대로
부산스러움이 사라지고,
부산(釜山)스러움을 누리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수영강을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