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방위 교육. 중간에 나갔다 올까? 말까? 짜장이냐? 짬뽕이냐? 돈가스냐? 국밥이냐? 이 같은 인생의 선택만큼이나 나를 괴롭게 하는 고민. 탈출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지만 결국 쭈뼛거리며, 다리에 근육통이 있는 것처럼 미적거리며 민방위 교육장에 다다른다. 입구를 들어가면서 시작되는 내 거친 생각과 그리고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한분은 내게 묻는다. “사는 곳이 어디시죠?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드디어 체크. 이때부터 더 거대한 갈등은 내면에 늪으로 빠지게 만든다. “나갔다 올까? 말까?”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가장 잘 보이지 않는 자리를 선점해 그곳으로 두 다리를 질질 끌며 가고 있다.
도망가지 않았다는 선택 속에 스스로를 대견하게 여긴다. ‘그렇다! 나는 적의 침공이나 재난 등으로부터 주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일체의 자위적인 활동을 벌이는 민방위 대원 아닌가? 그렇다면 민방위 기본법 제23조에 따라 연 10일, 총 50시간의 범위에서 민방위에 관한 교육 및 훈련을 받아야 한다. 이에 교육 및 훈련 명령을 받은 자는 이에 따라야 하며, 교육훈련 중에 있는 민방위 대원은 민방위 대장과 훈련 담당 교관의 교육훈련상의 명령에 복종하여야 한다. “ 끊임없이 마음을 먹고 앉아 있으니 시작된 민방위 교육. 그때부터 시간과 정신의 방이 시작된다.
만화 드래곤볼에서 등장하는 신의 궁전에 있는 방. 방안에 들어가면 지구 크기의 새하얗고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 펼쳐져 있다. 이곳에서의 1년이 바깥에서의 시간에선 하루가 된다. 내 인생에서 군대 생활 가운데 느낀 그 시간들 이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시간과 정신의 방을 민방위 교육은 경험케 해준다. 시간이 가질 않는다.
그러면서 마음속에 분노까지 나온다. ’도대체 나라가 내게 해 준 것이 뭔데? 내가 지금 이러고 있나?‘. 다행히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으로 민방위 교육이 가능해진 상황 때문에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한 내게 민방위 대원으로서의 자부심과 긍지를 느끼게 해 준 한 번도 상상하지 못한 뉴스가 떴다.
6월 1일부터 30세 이상 예비군·민방위·군종사자 얀센 백신 예약 총 101만 3000명분… 예방접종 사전예약사이트서 선착순 접수. (출처. 2021.05.31. 대한민국 정책브리핑(www.korea.kr) 민방위 훈련에 빠지지 않은 대원으로서 이렇게 국가에서 먼저 백신을 챙겨준다는 사실에 감사한 일이었다.
백신 예약은 생각보다 예약은 치열했고, 나는 성공했다. 그리고 시간은 급속도로 빠르게 흘러 백신을 맞는 날이 다가왔다. 속보가 들렸다. 대구서 ‘얀센 백신' 접종 30대, 사흘 만에 사망...”혈압 계속 떨어져”(조선비즈 2021.6.13. 이미호 기자) 나와 연령대가 비슷한 한분이 접종 후 몸살기와 혈압이 떨어져 사망했다고 전했다. 믿기지 않는 백신 소식에 마음이 흔들렸다. 그래도 나는 포기할수 없었다.
2021년 6월 14일. 우리 동네의 C 내과에 08:57분 도착했다.
아무도 없을 거란 예상과는 달리 70대가 넘어 보이는 세분의 어르신과 30대 초반이 되어 보이는 남자 한분이 계셨다. 그리고 간호사의 안내에 따라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19 예방 접종 예진표>를 작성했다. 이름과 주빈번호, 핸드폰 번호와 몸무게, 그리고 예방 접종의 동의사항과 접종대상자에 대한 확인사항을 읽고 체크를 하는데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기 시작했다. 대부분 70세가 넘어 보이는 분들이 한분 두 분 오시더니, 병원에 앉을자리가 없을 정도로 꽉 들어찼다. 빨리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즈음. 내 이름이 호명되었다. “얀센 백신 접종 자시죠? 잠시 문 앞에서 기다려주세요.”
그런데 갑자기 내가 있던 C내과가 <시간과 정신의 방>으로 변모했다. 그것은 백신을 먼저 맞고 나오는 사람의 얼굴과 표정을 보면서부터였다. 30대 초반 정도 돼 보이는 남자분이셨다. 어깨를 살짝 돌리며 잠깐 보더라도 굉장히 아픈 표정을 애써 감추는 듯한 모습이었다.
순간 20대 초반.
내 인생 가장 고통이 강했던 그 시절이 떠올랐다. 아직도 생생하다. 토요일이었다. 허리와 뒤쪽 옆구리가 쑤시더니, 점점 예리한 칼로 긋는 듯한 통증이 계속되었다. 너무 고통스러워 허리를 부여잡고 찾은 곳은 한의원. 고통을 잠재워줄 침을 기대하며 찾았는데 나의 고통이 너무 강렬하니 한의사 분께서 많이 당황하셨다. 당시 나는 허리가 너무 아파 다리가 덜덜 떨며, 온몸에 식은땀이 가득한 상황이었다. 침을 맞고, 물리치료에도 통증이 깊어져 가는 나를 보며 한의사는 말했다.
“통증이 심한거 같은데 응급실이라도 좀 가셔야 할거 같아요.”
그렇게 찾은 종합병원 응급실. 바로 초음파를 하더니 “결석”인 거 같다고 했다. 갑자기 모든 게 멈춘 듯했다. 사실 그다음 주 오랫동안 준비한 일본을 가야 하는 상황이었고, 나는 그 가운데 리더였다. 상황을 말씀드리니 직사각형의 금테 안경을 깊게 쓴 의사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고통이 상당할 겁니다. 지금 이 정도면 굉장히 많이 아플 텐데요, 그래서 아주 강한 진통제를 드리겠습니다. 보통 이 진통제는 말이나 소 정도 가축을 진료할 때 쓰는 진통제로 강한 효과가 있습니다. 다만 환자분께서는 이 보다 더한 통증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일본에서 라고 꼭 가까운 병원에 가셔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시작된 일본에서의 5박 6일 속. 아슬아슬했지만 정말 다행히도 일정을 무사히 마쳤다. 물론 정신이 나갈 것만 같았던 통증과의 밤이 며칠동안 있었다. 그 후유증은 먼 훗날 은밀히 찾아왔다.
이 같은 통증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트라우마가 있기 마련이다. 결국 내 이름이 호명되고 의사 앞에 나름 자연스럽게 앉아 있었다. 아무래도 최근에 생긴 여러 부작용의 사례들이 있어서였을까? 확률상으로는 매우 적지만 이라고 말하면서 의사의 입에서는 이 백신을 접종한 후 생겨날 수 있는 부작용을 상세하게 열거했다. 그리고 나는 드디어 백신을 접종하러 주사실로 들어갔다. 간호사분께서는 두 마디를 건네주셨다. “힘주지 마세요. 따끔합니다.” 하고 맞는 순간 끝이 났다. “끝났어요?” “네에 접종 끝났습니다.” ’ 생각보다 별거 아니구나.‘ 하고 일어나는 순간 갑자기 왼쪽 팔에 거대한 각목으로 내려친듯한 아픔이 찾아왔다.
중학교 2학년. 거친 남자들의 세계가 가득했던 수원의 A남자 중학교. 생태계의 질서를 잡아가듯 매일같이 무관용의 법칙 속에 주먹대결이 진행되었다. 중1 때까지만 해도 스스로의 존재감이 어느 정도인지 몰랐던 나는 2학년이 되어 생태계 교란종이 되어가고 있었다. 마치 거대 괴물쥐 뉴트리아처럼 하나둘씩 먹이사슬의 상위 단계로 오르던 그때. 더거대한 녀석을 만나게 되었다.
몸집이 나보다 컸던 그 녀석은 유도를 했다는 소문이 있었고, 피하고 싶었던 존재였다. 그러나 내 몸은 알고 있었다. 언젠가 우리는 만날 수밖에 없는 상대인 것을. 시간이 흐르며 서열이 점차 굳어져 가면서 나의 그 예감은 점점 좁혀져 왔고, 결국 축구를 하던 어느 날이었다.
공을 몰고 중앙선을 넘어서는 그때 그 녀석이 다가왔다. 육중한 몸으로 수비를 보는 그 녀석이 내 어깨를 향해 팔꿈치로 가격했다. 그 야말로 순간적이었고, 중심을 잃고 넘어졌다. 사태의 심각성을 직감하듯 주위에 아이들이 몰려들었고, 흙먼지가 가득한 바지를 툭툭 털고, 느리지만 분명하고, 바른 자세로 일어났다. 온몸에 느껴지는 오른쪽 팔의 통증에 다소 놀랐지만, 끓어오르는 분노와 꺾기지 않은 기세를 주먹과 눈에 모았다. (그다음의 이야기는 상상에 맡기겠다.) 그때의 그 오른쪽 팔의 통증이, 20년 뒤 그대로 왼쪽으로 넘어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팔은 얼얼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통증이라 정신이 없는 그 상황에 15분간 병원 안에서 안정을 취해야 했다.
그러나 이미 병원의 좌석은 75세 이상의 어르신들이 아스트라제네카 2차 접종을 하기 위한 자리가 되어 버렸다. 어정쩡하게 서서 왼쪽 팔을 돌리며, 어떻게든 통증을 숨기려 했지만 이미 얼굴이 일그러져 있어서였을까? 부드럽고, 곱고, 아름답고, 친절한 목소리로 나를 부르셨다.
“여기 자리 있어요. 앉아요.”
세 자리를 두 분이서 앉고 계시던 노부부께서 내게 자리를 마련해 주셨다. 당장이라도 앉고 싶던 급작스러운 통증의 순간. 그리고 할머니께서 차분한 음성으로 물으셨다. “많이 아픈가 보네요.” 순간 어릴 적 돌아가신 할머니가 생각나 울컥하는 마음으로 나도 모르게 너무 빠르게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네에. 생각보다 많이 아프네요.”
그땐 나도 몰랐다. 내가 꺼낸 그 한마디가 약 20여 명 가까이 되는 75세 어르신들을 하나로 만들게 하는 대화의 열쇠인 것을. 주사를 맞고 15분간 병원에 있을 것을 대비해서 나는 책을 가져갔다. 그러나 그것은 그저 내 무릎을 가지런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할 뿐.
그때부터 15분 동안 한미 동맹 관계의 중요성, 자녀로서 부모님을 향한 효의 자세, 앞으로 미래에 다가올 전염병에 대한 예측, 사스부터 시작되어 메르스와 신종플루에 까지 진행되는 전염병의 역사까지 다양하고, 놀랍기까지 한 지식들과 이야기 속에서 나는 15분간 거대한 역사책과 의학서적, 거기에 동약 철학과 군사전문서적까지 읽은 듯했다.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담아 인사를 드렸다. 그렇게 <정신과 시간의 방>의 수행을 마치고 걸어오는 길에 나는 스스로에게 선물을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근처 마트를 가서 비비빅 3개와 칸츄리콘 두 개 과 오사쯔 두 개가 묶인 과자를 샀다. 앞으로 진행될 통증과의 싸움에서 함께해줄 소중한 존재들이었다. 그렇게 집을 향해 걸어가는데 치과에서 치료할 때 잇몸에 마취 주사를 놓고 얼얼한 상태가 되었을 때 느껴졌던 그 느낌이 주사를 맞은 왼쪽 목과 어깨, 귀와 볼, 눈가에까지 퍼졌다. 약간의 전류가 흐르는 거 같고, 미열이 올라오는 걸 느꼈다. 집에 도착한 내게 아내는 물었다. "몸은 좀 괜찮아요." 나는 용기있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직은 괜찮은거 같아요." 그러자 아내가 말했다.
"그럼 아프기전에 음쓰(음식물쓰레기)랑 일쓰(일반쓰레기)랑 재활용좀 버리고 와줄래요?"
순간 몹시 당황했으나 앞으로의 통증과 함께 이불속에서 넷플릭스를 즐겨보기 위해 마음속에 타협한뒤 조용히 쓰레기 삼종세트를 버리고 왔다.
욱신거림이 멈추지 않기에 간단한 빵과 우유를 섭취하고, 타이레놀을 먹었다. 그뒤로 나는 계속되는 미열과 욱신거림 속에서 넷플릭스와 비비빅 그리고 칸츄리콘으로 겨우 버틸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만으로는 이겨낼수 없다는 것을 느꼈고, 결국 아내와의 협상을 체결하여 치킨을 시키게 되었다. 다만 아내가 원하는 치킨집으로 타협할수 밖에 없었다. 아내는 치킨의 정통성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로인해 난 알고 있었다. 페리카나, 멕시카나, 처갓집 이 세곳중 하나겠구나.(사실 난 BHC, 굽네, 지코바, 교촌을 사랑한다).
결국 우리는 멕시카나 치킨을 시키기로 결정했고, 엄청난 허기로 인해 양념과 후라이드 두마리 세트를 시켰다. 이후 다시 시작되는 미열과 근육통에 나는 타이레놀을 복용하였고, 조금 나아진 상태에서 지금 글을 쓰고 있다. 진정한 아픔은 하루 지나서 온다는 군대 선임 처럼 말하는 친구녀석의 말에 긴장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버틸만 하다. 내 인생에 첫 코로나 백신이기에 기록을 남겨야 겠다는 생각속에서 이렇게 글을 남겨 본다.
자랑스러운 민방위 대원의 얀센백신 후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