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

일상의 발견

by 박상민


기차를 타고 공부를 하러 다니고 있다. 기차 안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기차를 탈 때 필수 준비물이 생겼다.



우선 후드 집업.


부산에서 대전으로 올라가면 우선 기온이 다르다. 그래서 보통 후드 집업 하나는 챙긴다. 꽤 요긴하게 쓰인다. 가끔 예상치 못하게 비가 오면 우의가 되고, 또 추울 때 모자를 쓰면 훨씬 좋다. 그리고 더우면 가방에 넣으면 된다. 넉넉한 사이즈의 후드 집업을 입고 모자를 쓰고 눈을 지나가는 풍경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다.


어른이 되고 서 나를 먼저 안아주는 사람이 적어졌다.


그런데 이따금씩 누군가 반갑다고 나를 안아주면 그게 그렇게 좋다. 특히 집에 돌아왔을 때 하늘이가 꼭 안아주면 그날 받은 피로가 싹 풀린다. 얼마 전 수원에 장례식 때문에 올라갈 일이 생겼는데 잠깐이라도 보자던 어머니. 작아진 어머니께서 만나자마자 나를 꼭 안아주셨다. 순간 아기가 되어버린 나는 어마품이 좋다. 넉넉한 사이즈의 검은색 후드 집업은 그런 나를 안아주는 소중한 옷이다.




그리고 안대와 귀마개를 챙긴다.



예전에 부산에서 거제도로 왔다 갔다 하는 선생님의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본인은 꼭 안대랑 귀마개를 챙긴다고 했다. 그 정도 해야 차에서 잠을 자고 체력을 비축한다고 했다. 그래서 한번 반신반의하며 귀마개와 안대를 구입했다. 그것도 조금 돈을 주고 만원 넘는 안대를 구입했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능력을 안대로부터 경험했다. 아침에 수업을 위해 올라가기 위해서는 보통 4시 반전에는 일어난다. 아무리 빨리 자도 전날 12시 반전에 취침을 하니 취침시간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데 안대와 귀마개를 통해 잠깐 이나마 듣고 보는 걸 차단한다. 어쩌면 그동안 너무 많은 걸 본다고 쉬지 못한 눈과 수많은 소리에 지쳐 있던 귀에게 잠깐이나마 휴식을 준다. 그럴 때면 눈과 귀는 고마워하며 아주 깊고 편안한 잠의 세계로 초청한다. 핸드폰 알람을 맞추지 않으면 서울로 몇 번이나 올라갔을 것이다.



아참! 이렇게 챙기기 전에 내가 가장 먼저 챙기는 게 있다.

바로 창가 자리.



나는 기차의 창가 자리를 좋아한다. 어깨와 몸집이 큰 나는 대학시절 매주 무궁화 호를 타고 수원과 대전을 다녔다. 그때마다 몸이 커서 옆에 앉은 분들에게 최대한 피해가 가지 않도록 몸을 쭉 욱 밖으로 빼는 훈련(?)을 해왔다. 그런데 당시 금요일마다 올라가는 기차를 조금만 늦게 타도 퇴근시간과 맞물려 엄청난 고생을 각오해야 했다. 특히 통로 자리를 예매했는데 입석에도 사람이 가득 차서 기차가 올라갈 때면 엄청난 어려움을 예상할 수밖에 없다. 한 번은 덩치가 아저씨가 통로석에 앉은 내 팔걸이에 엉덩이를 걸쳐 앉았다. 사람이 꽉 찬 기차에서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자연스럽게 내 몸은 반대쪽으로 갈 수밖에 없었는데 옆에 앉아 있던 아가씨가 굉장히 불편해 해는 느낌이 들었다. 양쪽의 균형 속에서 수원으로 향하는 무궁화 호는 좀처럼 속도를 내지 않았다. 그때의 추억 때문일까? 가장 먼저 나는 늘 창가석을 예약한다. 그리고 옆에 손님이 타면 최대한 창가로 내 몸을 붙인다.


창과 내가 하나가 되어 그렇게 가다 보면 예상치 못한 우리나라의 풍광에 멍하니 빠질 때가 종종 있다. 한 번도 소개되지 않았던 이름 모를 야산과 어우러지는 하늘은 매주 같은 법이 없다. 특히 잠이 오지 않는 날은 새벽의 풍광을 하염없이 바라보는데 그때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 어떤 초점을 맞춰 보지 않는다. 어떤 소리에 집중하지 않는다. 기차와 내가 한 몸이 된다. 나는 처절하게 버티고 있는 강줄기 위로 달린다. 가끔은 시커멓고 적막한 터널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가만히 있다 보면 창을 바라보는 무표정한 나를 기차는 보여준다. 그렇게 가다 보면 기차는 아쉽게도 도착하다. 그렇게 나는 한참을 멍하니 있다 기차와 분리가 된다. 차가울치 만큼 기차에 내려 땅을 밟는다. 그리고 나는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걷는다.

기차에게는 미안 하지만.



나는 가야 할 곳이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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