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나는 오늘도 수영강을 여행한다.

by 박상민

세상의 사람들의 얼굴이 반만 보이기 시작했다.


표정 알 수 없는 사람들. 남녀, 노소, 지역, 학력, 빈부의 차이 속에 사람들 간의 단절이 급격하게 빨라지더니 마스크는 우리를 더욱 통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공자가 그토록 공부하던 <주역>에서 궁하면 통한다고 하지만, 지금은 궁해도 안 통한다. 혹이라도 통하려 마스크를 벗어내는 날에는 오히려 사람들과 멀어지기 마련이다. 이 얼굴의 반만 보이는 시대가 끝나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묻는 말에 빠지지 않는 대답이 있다.

여행. 왜 사람은 그토록 여행을 갈망할까? 용필이 형이 시작해서 승기까지 말해대던 ‘도시에 소음 수많은 사람 빌딩 숲속을 벗어나길 원해서 일까?’ (조용필- 여행을 떠나요 중)


동률이형 듬성듬성 느끼하게 노래하듯 ‘그곳에선 누구를 만날 수가 있을지, 얼마나 더 먼 곳을 바라볼 수 있을 길 바래서 일까? (김동률-출발)’ (오해 마시길. 개인적으로 김동률 형이 좋아서 프러포즈 때도 동률이 형의 감사를 불렀던 사람!!)


그런 거 말고 민석이형 말처럼 ‘우리가 살면서 저지른 삶의 잘못를 떨쳐내고, 앞으로 나아갈 미래의 길을 모색하고, 현재 내 위치를 점검해보기 위해서라는 건 헛소리고, 순전이 재미를 위해서일까?’ (최민석의 꽈배기의 맛 225-227.p)


어쨌든 중요한 것은 인류사 최초로 전 세계인의 얼굴을 반밖에 보지 못하는 이 시기에 사람들은 여행을 갈망한다는 것이다.



나 역시 사람이다. 여행을 좋아하고, 여행을 사랑하고, 여행을 누리길 원하는 사람이다. 때로 여행 때문에 돈 벌고, 여행 때문에 공부하며, 자신에게 여행을 선물로 주는 사람이다. 내 삶의 여행 역사로 올라간다면 두 가지 거대한 일들이 존재한다. 대학 시절 내내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나를 떠나지 않았다. 동아리 3개에 복수전공. 그 시절 요즘에야 흔한 휴학도 어려운 시절이라 잠을 줄이면서 까지 공부하고, 사람 만나고, 놀고, 봉사 활동하고 암튼 뭐든 열심히 살았다. 그러다가 그토록 바랬던 학사 장교의 실패와 함께 군대를 앞둔 내가 불쌍했다. 그토록 열심히 살아갔는데 대학 졸업하고 바로 군대라니. 이보다 더 처참한 상황이 어디 있는가?


5학년 2학기. 그 아쉬움을 달래며 책에 미쳐 살았다. 2주에 한 번씩 도서관에서 무조건 5권씩 빌렸다. 그동안 달리며 사계절 변화에도 둔감해지고, 하늘의 움직임과 낙엽의 색을 바라보는 것은 사치라 여겼던 나날들. 내 삶의 브레이크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 브레이크를 걸어준 것은 책이었고, 그 가운데 다른 세상에 눈뜨게 한 것은 C.S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였다. 판타지 소설에 한참 매료된 친구들이 해리포터를 노래하며 다니던 그 시절. 유치하다 생각하는 나는 니체와 미셸 푸코의 책을 들고 다니며 그들을 향해 유치원 가방을 멘 아이들처럼 바라봤다.


그러나 <나니아 연대기>는 판타지에 대한 철옹성 같던 내 마음을 속절없이 무너뜨렸다. 저녁은 과자로 때우고, 수업은 빼먹고, 사람들과 만남을 잠시 미뤄뒀다. 나니아의 늪은 기분 좋게 나를 빠져들게 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영화로 만들어진 나니아 연대기. 나의 상상력을 모두 채워주기에는 부족했지만, 그런데도 숨죽이며 집중하게 했다. 그리고 나는 나니아 연대기의 촬영지가 체코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체코는 나를 불렀다. 결국 마지막 5학년까지 무사히 마치고 입대를 앞둔 상태에서 체코로 떠났다. 체코는 결국 프라하를 만나게 했고, 프라하는 암스테르담을 그리고 암스테르담은 빈센트 반 고흐를 만나게 해 줬다. 그리고 그 추억은 아무리 버텨도 가지 않았던 군 생활을 버티게 해 준 힘이었고, 결혼 후 아내와 다시 그곳을 찾게 만들어주었다.


그 뒤로 나는 자신의 정체를 여행자로 여겼다. 그리고 여행은 신영복 선생님의 말씀처럼 떠남과 만남을 가져다주었다. 물론 그분의 말씀처럼 떠남을 자기 성 밖으로 걸어 나오는 것이고, 만난다는 것은 새로운 대상을 대면한다는 큰 의미까지는 다다르지 못했지만 말이다. (신영복 <더불어 숲>9.p) 그래서 나는 소통이 되지 않고, 얼굴이 반밖에 보이지 않는 이곳에서 어떻게든 여행을 찾아 떠났다. 30년간 수도권주 위에 맴돌던 내게 7년 전부터 살 게 되었던 곳은 부산은 여행지로 제격이었다.


부산이란 단어에 이름에 눈부신 해운대 해변과 쿰쿰한 돼지국밥과 영화 속 거친 사투리를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나의 부산살이 가운데 여행으로 초대한 곳은 다름 아닌 수영강이다. 부산사람이라면 수영강을 여행한다는 나를 향해 낯선 눈으로 바라볼지도 모른다. 그러나 수영강은 매번 다른 모습으로 나를 초대해 주었다. 수영강은 김영하 작가가 말하는 여행처럼 ‘기대와는 다른 모습에 실망하고, 대신 생각지도 않던 어떤 것을 얻게 했고, 그러다 내가 누구인지 조금 더 알게’해 주었다. (김영하 <여행의 이유>) 그리고 여행에 궁(窮)한 내게 수영강은 통(通)하게 해주고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수영강을 향해 여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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