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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민 Jan 11. 2022

로고와 행님

늘벗이야기


 292513의 추억


 노티카, 뱅뱅, 리바이스, 스포츠리플레이, 잠뱅이, 닉스... 등등. 어릴적 우리 집에는 수많은 브랜드의 택(Tag)이 가득했다. 바지, 잠바, 셔츠, 후드티 등. 모든 의류에 붙어 있는 택은 모두 나의 차지였다. 옷에 붙은 택을 수집하는 것이 나에게 소중한 취미였다. 이런 내게 유니크한 택을 갖게 될 때, 그 로고가 가져다주는 힘이 얼마나 큰지 어릴 적부터 느낄 수 있었다. 특히 292513=STORM 오묘하면서도, 궁금증을 가져다주는 이 택을 얻었을 때의 기쁨은 아직까지 생생하다. 물론 훗날 엄청난 암호같이 보였던 스톰의 292513의 의미를 알고 나서는 헛웃음 쳤던 것도 생각난다. (스톰의 292513은 스톰의 기획자 아들의 생년월일 92년5월13일에 2를 붙인 것이다.) 그러나 스톰이 가져다준 강력한 그 의문과 강렬한 기억은 지금도 계속된다.



 로고의 중요성

 

 어릴적부터 5년 넘는시간을 의류 택을 모았던 나는 자연스레 로고의 중요성을 알게되었다. 로고(Logo)의 역사는 3천 년 전 고대 이집트 문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 그 당시 무덤에서 출토된 그림속에 사람들이 키우는 가축과 식물들을 식별 가능한 문양으로 새겨놓았는데 이를 로고의 기원으로 본다. 이후 로고는 엄청난 의미를 갖게된다. 도시와 나라를 상징하는 표시가 되고, 더 나아가 생명을 걸고 싸우는 전장터에서 군대의 로고를 통해 아군과 적군을 가를수 있는 표시가 된다. 심지어 오늘날 수많은 모임, 학교, 기업가운데 자긍심을 불어넣을수 있는 수단으로 만들어진다. 이처럼 로고는 문명의 발전과 함께 함께 발전해 왔다고 볼수 있다. (https://visla.kr/feature/12744/ 참고) 특히 현대인에게 있어서 로고는 굉장히 다양한 영역에서 사용되어지며, 무엇보다 존재의 정체성이 담겨 있다고 볼수 있다.


 고민 또 고민


이같은 로고의 중요성은 세상에서 보기 어려운 집단인 교회에서도 빛을 발한다. 교회는 이 세상에서 그 어떠한 조직이나 단체보다 다양한 사람들의 모임이다. 여자와 남자가 모인 것은 기본이고, 어린아이와 어르신들이 함께 하고, 서로 다른 지역은 기본이며, 직업뿐만 아니라 사회적 위치와 학력의 수준, 심저어 정치성향도 모두 다르다. 오직 그리스도께서 머리되셨다는 진리 하나로 교회의 모든 모인 사람은 가족이 되고, 각 몸의 지체가 된다. 이런 상황에 당연히 로고를 만드는 것은 굉장히 고민속에서 만들어 질 수밖에 없다. 특별히 교회를 개척하는 과정에 있다면 로고는 더욱이 심사숙고하며, 한 공동체의 의미와 에토스, 그리고 앞으로 교회가 자라가길 원하는 염원이 담겨있으면 더욱 좋기 때문에 고민 또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 고민은 교회의 이름을 짓고, 교회가 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되었다. 너무 조심스럽고, 너무 고민되면서, 정말 기대되고, 정말 기다려지는게 로고였다.



 기도 그리고 만남


개척을 시작하면서 준비해 나간 것중 하나가 늘.벗 이라는 단어의 이미지 메이킹이다. 이미지를 만들어 간다는 것이 중요했다. 누구나 들었을 때 친숙하면서도, 너무 흔하지 않는 느낌. 늘벗이란 단어가 주는 편안함과 환대의 느낌. 그러나 견고하면서도 우리 안의 멤버십이 드러나는 이미지가 되었으면 했다. 그리고 처음 사람들이 늘.벗이란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생각나는 것과 내가 설명했을 때 기억에 남을 이미지가 겹치면서 시너지를 내는 느낌이길 기대했다. 그래서 로고가 중요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자연스레 만들어져 갈것이라 생각하며, 우리는 모여 기도했다. 서로가 갖는 늘벗이란 단어의 느낌과 이미지들을 나눠 보고, 자유롭고, 자연스럽고, 자연을 사랑하고, 푸근하고, 부드럽고, 유연하며, 따스하고, 시원한 느낌. 그러나 섞이지 않고, 미지근 하지 않으며, 만만하지 않고, 흐리멍텅하지 않고, 혼탁하지 않은 그런 느낌. 그런 느낌을 가진 고로가 나오면 좋을거라 생각이 들었다.



한글 자체만으로도 가지고 있는 힘이 있길 바라며, 10년 뒤에도 20년 뒤에도, 능히 오래가는 그런 로고. 그것을 위해 나는 기도했다. 그리고 늘벗교회의 이야기를 페이스 북에 남기기 시작하며, 그 기도는 조금더 절실해졌다. 그런 상황속에 페이스북 메신저로 연락이 왔다. 신기한 것은 그분도 기도를 하던 상황속에 계속되는 마음의 잇닿음을 느꼈던 것 같다. 그분은 훗날 동역자가 되고, 형님이 되며, 우리 늘벗교회의 로고를 창조하신 분이 된다. 그분은 산새봄샘꿈 대표 이진웅 형님이시다.




 신선한 첫 만남


습관적으로 페이스북을 보시던 한 사람의 마음에 하나님은 자그마한 씨앗을 넣어주신다. 그것은 아마 그가 이른아침에 기도하던 기도 때문일 것이다. 그는 그날 아침에 이렇게 기도했다고 한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합니다.” 어찌보면 먼저구하고 싶지도 않고, 또 잘 구해지지도 않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했지만, 부대끼는 기도가 될 때도 있는 이 기도제목. 그러나 그는 그날 아침 그렇게 기도했고, 나는 그때 즈음 늘벗교회를 이렇게 소개했다. “예수를 닮아 세상에 소외 당하고, 차별당하고, 혐오 받는 이들과 친구가 되는 공동체” 그것을 보며 성령님은 그의 마음을 조명하셨고, 먼저 그렇게 사셨던 성자 예수님께서는 그 공동체를 응원하길 원하셨고, 성부 하나님께서는 그의 마음에 자그마한 씨앗을 뿌리셨다. 그래서 페이스북 친구였지만, 서로 한번도 본적도 없고, 그저 수많은 피드를 쓰윽 올리며 보던 한 존재를 만나게 하신 것이다.


산새봄샘꿈 카페를 찾아가는 길은 신기하고, 신비하고, 신선했다. 이런곳에 카페가 있을까? 광안대교를 넘어 용호동으로 들어와 용호 골목시장을 지나고 지나 들어간 카페. 마치 영국 런던에 있는 킹스 크로스역의 9번 승강장과 10번 승강장 사이에 있는 호그와트로 들어가는 관문(영화 해리포터의 내용)에 들어간 기분이 이랬을까? 용호시장을 완전히 잊혀지게 만들만한 카페. 그리고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르며, 누가봐도 범상치 않은 분위기지만, 넉넉하고, 변변한 모습으로 나를 맞이해 주셨다.


 어느정도의 바디감에 어깨를 으쓱하게 만드는 산미까지. 입안에 감도는 커피의 맛은 일품이었다. 그리고 이후 우리가 나눈 대화는 그의 커피에 걸맞게 아름다웠고, 깊었으며, 풍미가 가득한 이야기들을 나눴다. 내가 사는 지역에서, 흔하게 볼수 없는 분이란걸 금방 느꼈고, 우리는 금새 서로에 대한 가드를 내리고, 본격적으로 로고의 밑천이 될수 있는 이야기들을 나눴다. 자부심, 겸손함, 진지함, 공감, 실력, 존중, 전문적, 창조, 이런 대화를 통해 그분에 가득차있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목회의 시간이 내게 만들어준 직감을 통해 이분이 디자인이란 일을 소명으로 느끼고 있으며, 누구보다 그 일을 즐기고, 그것이 하나님과 친밀함속에 이루어지는 창조적 작업이라는 것을 알수 있었다.



 경이로운 두 번째 만남.


두 번째 만남. 그간의 시간들 속에서 늘벗교회도 갓 태어난 신생아처럼 주님 품을 꽉 붙잡고 겨우 한주 한주 애오라지 버텨내고 있었다. 개척의 상황속에서 복잡다기한 마음들을 지키려 노력하지만, 갑자기 예상치 못하게 찾아오는 일렁임에 당황하던 그때. 매일 기도하던 로고를 하루빨리 보고 싶던 내게 연락이 왔다. 로고가 완성되었으니 금주내 편하게 찾아오라는 문자였다. 얼마나 마음을 다해 로고를 디자인 하는지에 대해 지난 만남을 통해 대략적으로 들었기 때문에 그 설렘과 기대는 말로 표현할수 없었다. 이번에도 역시 커피를 내려주시며, 진지하고 분명하며, 따스한 미소로 로고를 보는 방법을 설명해 주셨다. 그리고 이번 로고는 너무나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만들었다고 말씀하셨다. 사실 나는 로고에 교회라는 단어를 넣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드렸다.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라는 단어는 너무나 가치있고, 여전히 꿈꾸며, 이루어가야할 분명한 단어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에서 교회라는 단어의 생명력이 잃고, 교회당을 생각하게 만들며, 어떠한 이미지 안에 가두어 버리는 단어가 되어버렸다. 퇴색되었다. 그래서 커뮤니티 (=> 공동체)를 사용하셔도 되는지 여쭈어 보셨을 때, 디자이너분에게 상상력과 통찰을 가져다 주시는 하나님의 창조력을 따라 마음껏 자유롭게 해달라 부탁드렸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지는 9개의 로고는 그 무엇하나 함부로 고를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신비하고 경이로웠다. 어떻게 모든 로고가 다 다른 느낌을 갖고 있으며, 어떻게 모든 로고가 다 사용하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으로 만드셨을까? 특히 가장 처음 보여주신 로고, 그리고 가운데 바다를 느낄수 있게 한 로고, 마지막으로 심플하면서도 견고한 느낌의 로고가 와닿았다. 그리고 정말 어려운 결정이었지만 나는 로고를 골랐다. 풀색이 들면서 견고함이 느껴지는 로고. 아주 심플하지만 십년, 이십년 뒤에도 우리 늘벗교회를 말해줄수 있는 로고. 언제나 함께 할 하나님 나라의 동역자들의 공동체가 느껴지는 로고였다.



 진웅이 형님은 인스타에 늘벗교회의 로고를 이렇게 설명해주셨다. “늘, 여전히, 언제나....” 한글 ‘늘’은 편안함과 느긋함을 품고 있다. 그런 편안함으로 환대하고, 시선의 흐름으로 높고 화려함 보다는 낮고 소외된 이들에게 시선을 둔 공동체 “늘벗”을 응원한다.


 앞으로 계속될 만남


 명함. 얼마전  기업에 강의를 나갈일이 있었는데, 기업의 실무자께서 보자마자 명함을 나눠주셨다. 그분은  명함을 기다리셨고, 나는 드릴수가 없었다. 나는 명함이 없었고, 그동안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이제 나는 상황이 달라졌다. 명함이 필요하다. 명함이 갖고 싶어졌다. 누구에게라도 내가 늘벗교회의 목회자라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그런 가운데 형님은 내게 명함을 만들어줄테니 나의 정보를 보내라고 했다. 그리고 한참을 생각했다. 나는 명함에 넣을게 없다. 학력이나, 경력도 없고, 나를 소개할만한 문구도 없다. 그저 내가 사랑하는 늘벗교회. 그리고  교회를 이루어가길 기뻐하고 애쓰는 사람. 그런 친구. 그러다가 “지기라는 단어가 생각났다. 과거 별밤을 지키며, 별밤을 이루어가던 이문세 아저씨는 언제나 자신을 이렇게 말했다. “별밤지기 이문세지기(知己)? 자기의 속마음을 참되게 알아주는 친구라는 의미다. (표준국어대사전) 그렇다면, 나는  명함에 이렇게 적겠다. 늘벗지기. 그래서  명함에는 이렇게 써있다.


COMMUNITY 늘벗. 늘벗지기 박상민. 그리고 이 명함은 누구보다 나의 사랑하는 늘벗가족들과 함께 가장 먼저 나눴다. 그리고 앞으로 계속될 만남속에 누군가에게 명함을 나눠줄 일들이 기대가 된다. 명함을 받고 그 플랫폼이 그리웠다. 그래서 나는 연락했다.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몰라 여쭤봤다. “형님”과 “아우”가 어떠냐고 물으셨다. 나는 너무 좋았다. 부산에 형님이 필요했다. 부산 친구들이 “행님”하는 그 소리가 담긴 정겨움에 샘났던 내 마음이 넉넉해 졌다. 왜냐고? 앞으로 계속될 만남이 기대되는 “행님”이 나에게 생겼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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