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상민 Feb 25. 2022

삶과 글의 일치

밑줄은 삶이 되어가고

 


사람이든 물건이든 상품 가치 높이기가 관건인 세상이다. 자신은 조직에 필요한 사람임을 주장하는 자기소개서, 그리고 이것은 최고의 상품임을 소개하는 마케팅 기획서는 강력한 언어를 요구한다. 독보성과 우월성을 내세우기 위해선 어떤 단어와 표현도 무한정 끌어다 쓸 수 있다. 일단 쓰고 나면 그 글이 삶에서 나오지 않았다 한들, 그 글을 삶으로 갚지 않는다 한들 누가 뭐라 하지 않는다. 글과 삶이 달라도 된다.


  가끔 자기소개서를 봐 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한두 번은 응했는데 ‘못할 노릇’이라는 생각에 그다음부터는 마다한다. ‘자소서’가 아니라 ‘자소설’이라는 자조적인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가령 육체노동자 부모의 직업을 그대로 명시하면 불리해지므로 한평생 일을 해 온 성실한 아버지라는 표현으로 대체한다. 집에서 자기가 먹은 음식물 쓰레기 한 번 버리지 않고 방 청소를 한 번 하지 않았어도 장애인 시설에서 오 년간 봉사 활동을 하며 약자와 더불어 사는 법을 배웠다고 쓸 수 있다.


  글쓰기가 자기를 겉꾸미고 남의 삶을 끌어다가 왜곡하고 자기 편의대로 가공하는 수단이 되는 게 어쩐지 가슴 아프다. 약한 것, 모자란 것, 초라한 것을 가리고 누르는 수단이 되는 게 너무도 쓸쓸하다. 무시나 과장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인정과 옹호의 글쓰기는 이 부조리한 사회 현실에서 불가능한 일일까. 손해나는 일일까. 어떤 실패나 어떤 상실도 삶으로 통합해 낼 수 없다면 글쓰기는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삶의 상품화로써의 글쓰기에 떠밀리는 삶의 옹호로써의 글쓰기를 나는 두 손으로 받아 내고 싶다.


쓰기의 말들 | 은유 저

매거진의 이전글 타인의 고통에 대한 무감각의 경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