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라는 이름 아래_낯설다

스물한 번째 이야기

by 박상민

낯설다


전화가 하고 싶었다. 아버지, 어머니에게 전하고 싶었다. 잘 지낸다고, 걱정 마시라고. 한마디라도 전하고 싶었다. 여자 친구의 사랑스러운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보고 싶다는 그 말. 하고 싶고, 듣고 싶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우수훈련생이 되기에는 너무 버거웠고, 사격실력도 좋지 않았다. 훈련소 내내 단 한 번의 기회라도 주어지길 기다렸다. 그토록 전화가 하고 싶었던 적은 없었다. 그렇게 간절히 기다렸지만 시간은 더디게 갔다. 하루는 훈련 중 쉬는 시간에 교관이 오더니 누가 날 찾는다고 했다. 군에 빽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었던 터. 저 멀리서 큰 키의 빨간색 모자를 쓴 교관이 날 불렀다. 군복에 분대장 견장까지 있었다. 딱 봐도 교관들 중에서도 왕고(최고 선임) 포스가 느껴졌다. 그 짧은 순간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엄청난 얼차려가 기다리는 건 아닐까?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가? 뇌가 열려 수많은 일들을 돌아보게 하는 그때.


“상민아. 나야.” 부드러운 음성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무시한 채 강력하게 말했다. “35번 훈련병 박! 상! 민!” 잠시 후 그 교관은 모자를 벗으며 다시 말을 걸었다.


“상민아. 나라고! 좀 봐봐.”


순간 두 발이 얼어붙었다. 대지에 붙어버린 발은 도무지 움직이지 않았고, 내시선은 그의 눈을 바라보다가, 다시 명찰을 바라보았다. 친구였다. 친구는 내게 말을 걸었고, 한참 민간인의 떼를 벗기던 순간인지라 나는 편하게 말할 수 없었다. 친구의 목소리와 태도가 굉장히 낯설었다. 그러나 그 낯섦도 잠시. 친구는 P.X 에서 냉동식품을 사주었다. 그리고 지금 가장 하고 싶은 게 뭐냐고 물었다. 나는 단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속마음을 전했다. 그러자 다음날 난 공중전화 박스에 서있을 수 있었다. 흔들리지 않는 기억력으로 공중전화기의 버튼을 꾸욱 눌러 갔다. “아들. 아들이야? 잘 지내고 있지?” 어머니의 흔들리는 목소리가 내 마음을 울렸다. 수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목소리, 그리고 수화기 들고 떨고 있는 손., 낯설었다.


아내가 처가에 올라갔다. 혼자 집에 있는 시간이 길다. 몽글거리던 눈으로 바라보던 모빌에는 먼지가 쌓이고, 하야안 아기욕조는 다른 곳으로 치워져 있다. 아내가 열심히 끓이던 손수건은 한쪽에 모아져 있다. 어색하던 혼자의 삶. 문득 찾아오는 낯선 외로움에 산책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어느덧 한 달. 영상통화를 통해 수십 번 바라봤던 눈, 진하게 들려오던 목소리, 아내와 딸이 그립다. 그동안 누군가를 이토록 그리워한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울 정도. 드디어 만나러 가는 날. 설렘을 담아 내딛는 한 발이 한 발이 가벼웠다. 차창은 빠르게 지나가지만 내 마음은 더 빨라서였을까? 올라가는 기차가 그토록 느리다는 사실을 원망했다. 아내의 손을 잡고 싶었다. 홀로 아이를 키우며, 꿋꿋이 잘 버티고 있는 손. 하늘이의 얼굴을 만지고 싶었다. 눈을 마주칠 때마다 웃던 그 얼굴,


손을 잡았다. 따스했고, 아내는 잘 버티고 있었다. 얼굴을 바라보았다. 하늘이의 눈이 흔들렸다. 어색함이 내 입술을 열지 못하게 했다. 낯설었다. 겨우 입을 열어 말했다. “딸~ 우리 하늘이 잘 지냈어?” 어머니의 흔들리는 목소리가 내 목구멍에서 흘러나왔다. 그때 내가 느꼈던 낯섦. 하늘이 역시 나를 한참을 바라보았다. 찰나의 침묵은 길었다. 그 정막을 깨는 울음이 터져 나왔다. 낯을 가리는 하늘이의 모습에 마음이 무너졌다. 낯가림이 시작된 것이다. 낯가림[stranger anxiety]은 대체로 6개월경에 시작되어 2세경까지 지속된다. 영아가 중요한 사람들과의 애착을 형성하고 그 외의 다른 사람을 거부하는 행동으로 간주된다.(교육심리학 용어사전). 그 순간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결국 우리는 서로 낯을 가렸다. 안고 있지만, 계속 이름을 불렀지만 미숙한 아빠의 어색함은 계속되었다. 그걸 안쓰럽게 봤을까? 내 눈을 마주친 딸의 눈이 반달이 되었다. 그리고 웃었다. 나도 웃었다. 그제야 서로의 낯가림으로 꼬인 실타래가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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