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아이키우기
떠남과 만남
- 그리스도인의 아이 키우기-
진회색의 암스테르담. 그곳에서 우리는 헤매고 있었다. 옅은 갈색 머리에 비니모자를 쓰고 따랑따랑 벨을 울리며 지나가는 자전거 탄 아줌마, 들어오라고 손짓하며 쿰쿰한 냄새 가득한 치즈를 건네는 아저씨, 거니는 다리 밑에는 일렁이는 물결 위로 조그마한 배들이 오간다. 신기하고 새롭다. 새로운 것 천지고, 아기자기한 미니어처 같은 집들이 즐비하니 거니는 곳마다 사진을 찍었다. 이쁘고 귀엽고, 재밌다. 그런데 어느 순간 몸이 지치고 있었다. 날은 저물었고 어둠이 마음으로 번져왔다. 숙소까지 가야 한다. 지도를 제대로 보지 못해 우리는 서로 짜증이 난 상황이다. 아내는 물어보자고 계속 말하지만, 나는 고집대로 한다. 맞을 거라며 계속 가지만 기괴한 암스테르담의 거미줄 같은 거리는 우리를 붙잡아 두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지만 만만치 않다. 결국, 우린 GPS에 연결된 구글맵을 본다. 미세하게 움직이는 지도를 보며 우리가 어디 있는지 알게 된다. 오랜 시간이 걸려 우리는 아주 힘겹게 숙소까지 도착했다. 지친 마음이 진정이 되고서야 아내에게 말했다. "내 고집대로 해서 미안해요." 아내 역시 지쳐있어서 짜증을 냈던 마음을 미안하다 했다. 그제야 우리 여행의 길에 여유와 넉넉함이 다시 찾아왔다. 다음 날 아침이 되고 나서야 우리가 길을 얼마나 빙빙 돌았는지 알 수 있었다. 조금 더 마음을 진정하고 길을 물었으면, 조금 더 GPS 연결된 지도를 봤으면 빨리 올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그래도 그 과정에서 경험한 것들을 선물 삼아 마음을 정리하고 다음 여행지를 떠올렸다.
암스테르담 여행은 끝났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여전히 여행 중이다. 이 여행은 암스테르담 여행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고 어렵고, 기쁘면서 힘겹다. 훨씬 더 긴장되며 때때로 여유롭다. 그때보다 우리는 자주 다투고 있고, 더 많이 묻고 있다. 우리는 지금 6년째 육아라는 여행을 하고 있다. 아직도 잊지 못하는 순간이 있다. 임신테스트기를 보여주며 임신한 것 같다는 아내의 모습. 기다리고 있었지만, 막상 찾아온 임신테스트기는 갑작스레 항공권을 보여주며 내일 출발해야 하는 암스테르담 여행을 알리는 신호탄 같았다. 아내와 산부인과를 찾았다. 아내의 배에 젤을 바르고 초음파로 납작한 배를 왔다 갔다 했다. 그 순간에도 여러 마음이 복잡하게 찾아들었다.
'진짜일까? 임신일까? 내가 아빠가 되는가? 아빠는 무엇인가? 나는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 하나님 어떻게 해요? 저는 누구인가요? 왜 지금 여기 있나요?' 그런 생각에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는데 갑자기 꼬리가 잘리는 말이 들렸다. "임신입니다. 아이가 잘 자라고 있고요, 여기 좀 보세요. 이게 머리이고요…." 이후 잘 들어오지 않았다. 언젠가는 받아들여야 하는 생각을 했지만, 아빠가 되었다는 말에 순간 모든 것이 멍해졌다. 기가 막히게 눈치가 빠르면서 눈치가 없는 나이 많은 간호사분께서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아이 아빠는 반응이 별로 없네요.' 그 말이 아직도 원망스럽고, 아내에게 미안하다. 그렇다. 나는 사실 너무 많은 감정과 생각이 압도하여 반응조차 할 수 없었다. 기쁨과 함께 두려움, 그리고 당황스러움과 함께 감사함.
그렇게 내 인생을 완전히 변화시키는 여행이 시작되었다.
신영복은 그의 저서 <더불어 숲>에서 여행에 관해 깊은 통찰의 말을 했다.
"여행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떠남과 만남입니다. 떠난다는 것은 자기 성 밖으로 걸어 나오는 것이며 만난다는 것은 새로운 대상을 대면하는 것입니다." 신영복 <더불어 숲> 9. p
이 말은 아이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경험한 내게 정확하게 들어맞는 말이었다. 아빠가 된다는 것은 이전의 나를 떠나보내야 한다는 것을 하루하루 경험하며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여행에서 새로운 대상인 나의 자녀를 맞이한다는 것은, 언제나 새로움의 연속이었다. 한 살, 두 살, 세 살, 네 살, 다섯 살 그리고 지금 여섯 살이 된 지금까지 언제나 나를 떠나보내야, 새로운 대상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이것은 비단 아이와의 만남뿐이 아니었다. 떠난다는 것은 바로 아이가 없던 때의 나를 떠나보내야 했다.
'여자는 남자의 돕는 배필이어야 합니다. 그 말은 여자가 남자를 잘 돕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남자를 잘 도와줄 때 남자 다운 남자, 여자다운 여자가 되는 것입니다.' 정확히는 아니지만 이런 맥락으로 분명히 말했다. 목사님도 아니고 사모님께서 그런 말을 하셨다. 남자인 내게도 이게 맞는 말인가? 의문이 들었다. 당시 결혼 전이었고, 함께 듣는 사람 중에는 자매들도 있었다. 분명 곁에 있던 자매들의 표정 속에서도 알 수 없는 의문이 가득한 표정들이 번져 갔다. 그러면서 한 가정의 가장이 남자가 되어야 가정의 질서가 바로 세워지며, 가정에는 질서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시는 내용이 계속되었다. 점점 이야기는 내게 스며들었고,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결혼 전 당시 여자친구였던 아내와도 이런 이야기를 한번 꺼낸 적이 있었다. '누가 가정의 가장인가?' 나는 한 치 양보 없이 단순하게 말했다. 남자가 당연히 가장이다. 이것은 성경에 나와 있다. 가정에는 질서가 필요하다. 그러나 아내는 호락호락 넘어가지 않았다. 우리 가정의 가장은 부부가 되어야 한다. 결국, 이러한 신경전은 말다툼으로 변했고, 한동안 우리는 가장론(?)을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출산하며 나는 떠나야 했다. 아내는 아이를 키워가며 정말 놀라울 정도로 아이를 돌봤다. 제대로 잘 수 있는 시간은 채 3시간도 되지 않았다. 잠귀가 밝고 예민했던 우리 아이는 나의 코골이 소리에도 금방 깼기 때문에 나는 따로 자기 시작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아이는 여전히 자주 울었고, 아내는 거의 잠을 자지 못한 채 몇 개월을 보냈다. 그런 가정을 찬찬히 경험하며 우리 가정의 가장이 나라고 말할 자신이 없었다. 단지 경제적인 부분을 담당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렇게 여긴다면, 가정을 회사로 여기는 것이고, 나는 회사의 사장이라도 되겠다는 것인가? 가정은 그런 곳이 아니었다. 결국, 나는 아이 출산 후 몇 년이 지나 아내에게 말했다.
"오늘부로 우리 가정의 가장은 내가 아니라 우리 둘이에요. 그동안 미안했어요."
아내는 몹시 놀랬지만, 이내 기뻐했다. 그렇게 우리 가정의 가장이 아내와 나가 된 뒤로 당연히 최고의 권위는 하나님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더 경험하기 시작했다. 하나님 아래 동등하게 위치를 설정하니 나는 그때부터 집안일과 육아를 다시 배우기 시작했다. 새롭게 또 다른 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나는 이전 것이 지나고 새것이 되었다는 심정으로 하나하나 배우기 시작했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능동성이었다. 가사를 담당하고, 육아의 영역을 담당하며 자연스레 아이를 가르치는 일도 넓어져 갔다.
결혼 전까지 나는 사교육에 대한 부분에 있어서 절대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아이가 5살 무렵. 아내는 아이가 일주일에 한 번 다니는 미술학원에 다니면 좋겠다는 제안을 내게 했다. 만약 내 안에 가장이라는 개념이 가득했으면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 가정의 가장은 아내와 나. 즉, 우리이다. 아이의 교육은 부부가 서로 소통하며 결정해야 함을 알게 되었다. 엄마나 아빠 혼자 아이의 교육을 담당한다면, 둘 중 하나는 소외 될 것이고, 외로울 것이며, 홀로 떠나지 못하는 섬에 갇혀 있을 수 있다. 우리는 딸아이의 미술학원 문제로 몇 주를 논의하고 이야기했다.
아내가 미술학원을 보내자고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아이가 예민하다. 그러다 보니 선을 긋는 것에 대해서도 너무 섬세하고 삐뚤빼뚤한 부분을 어려워한다. 자연스럽게 그림 그리는 것에 어려워하고 흥미를 못 느끼고 있다, 어린이집에서도 옷에 작은 것 하나 묻는 것에 민감하다. 그런 상황에 지금 보내려고 하는 학원은 미술을 가르친다기보다 미술을 통해 놀 수 있게 만든다. 미술을 통한 놀이를 통해 다양한 색감도 배우고, 만들고, 그리고, 자연스럽게, 묻고, 경험할 것이다. 이런 설명을 통해 나는 설득이 되었다. 아이는 미술학원을 일주일에 한 번씩 다니기 시작했고, 그 효과는 놀라웠다. 감사하게도 저소득층 자격이 되어서 국가에서 주는 바우처 서비스를 통해 저렴하게 다닐 수 있었고, 아이는 매주 그 시간을 기다렸다. 그리고 올해는 바우처 서비스가 끝났지만, 여전히 우리는 아이의 그 시간을 인정하고, 학원을 보내고 있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결혼 전 내가 가지고 육아와 교육에 대하여 떠나보내고, 새로이 만나게 된 아이의 상황과 아내와의 대화 속에서 이루어져야 함을 느낀다. 나는 아이가 없던 때 내가 그토록 고집하던 부분을 수정해야 했다. 물론 아직 앞으로 아이가 경쟁과 입시에 휘둘려 사교육의 노예가 되는 것은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선이다. 아내와의 대화를 통해서도 그 부분의 일치함을 알게 된 것은 참으로 반가운 순간이었다. 아이를 키우고 가르친다는 것은 분명 부부가 긋고 있는 선과 세상에서 계속 요구하는 선과 하나님의 선 사이의 긴장을 놓지 말아야 할 것을 우리 부부는 배우고 있다. 그리고 그 긴장 속에서 아이는 자라고 있고, 우리 부부도 자라고 있다. 우리 부부의 가장 커다란 바람은 결국 한 아이를 키워감에 있어서 그 누구에게 보다 하나님께 잘하고 있다고 듣고 싶다. 아마 이것은 크리스천 부모라면 누구나 같은 마음일 것이다.
하나님께 아이를 잘 키우고 있다는 말을 듣기 위해서는 나를 떠나보내야 비로소 가능하다. 그제야 아이와의 새로운 만남이 시작될 수 있고, 그제야 부모가 된 배우자를 새로이 만날 수 있고, 그제야 부모로서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갈 수 있다. 아빠가 되고 난 뒤 나는 하나님을 더 자주 찾는다. 결혼하고, 아이가 태어나면 자연스럽게 아빠가 되는 줄 알았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는 걸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전에 나를 계속 떠나보내는 연습을 몇 년 동안 계속했다. 물론 그 과정은 지금도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다. 아직도 총각 때의 내 모습, 과거 홀로 살았던 내 모습이 간혹 튀어나오면 아내와의 언쟁이 생기고, 그것으로 가장 어려워하는 것은 바로 나의 자녀다.
아이를 키워간다는 것은 계속되는 떠남과 끊임없이 찾아오는 만남이다. 어느새 6살이 된 아이는 이제 스스로 양치질도 하고, 한글도 곧잘 읽는다. 아이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요즘 고민은 어린이집에서 친구와의 관계 가운데 어려움이다. 이제 친구 관계에 대해서도 마음을 나누는 사이가 될 정도로 훌쩍 커버린 아이가 앞으로 살아갈 시간이 기대되면서도 안쓰럽다. 얼마 전 내가 사는 지역에 올해부터 초등학교 3학년부터 매년 학력고사가 시작된다는 뉴스를 봤다. 마음이 아프고, 무거웠다. 아이들의 반 등수뿐 아니라, 학교석차까지 나온다고 했다. 이제 우리 동네 안에서도 1등 초등학교, 2등 초등학교로 나누어져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 계속되는 세상과 만남은 때로 교육의 길을 잃어버리게 만든다.
그럴 때면 그 옛날 아내와 여행했던 암스테르담의 추억을 회상할 것이다. 우리가 길을 찾을 수 있었던 방법을 떠올리는 것이다. 숙소 가는 길을 잃어버리고, 헤매면서 서로 언쟁과 다툼이 있지만 우리는 계속해서 이야기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길을 함께 걷는 이들에게 이것저것 물어볼 것이다. 그런 가운데도 우리는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나에게는 함께 걷는 동반자인 아내가 있다는 것에 감사할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목적지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는 GPS다.
암스테르담에서는 GPS - Global Positioning System(전 지구 위치 파악 시스템)을 사용했지만, 한 아이를 키워가는 이 길고 오랜 여정 가운데는 또 다른 GPS (God Positioning System)'을 통해 계속해서 나의 위치와 그분의 위치를 파악하며 나아갈 것이다. 때로 버겁다. 때로 지친다. 때로 그만두고 싶고, 세상에 휩쓸리고 싶은 유혹이 찾아온다. 그러나 그분과의 접속을 통해 계속해서 떠나보낼 것은 떠나보내고 새로운 만남을 통해 우리에게 맡겨주신 한 아이를 그렇게 키워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