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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민 Sep 26. 2022

기도

늘벗 이야기

<기도>


주일 밤이 되면 내일 출근 하게 될 성도들이 생각 난다.


하루에도 수십명의 사람들을 상대 하고, 또 맡겨진 아이들을 위해 마음을 다하는 하루, 하루에 절반 이상을 공부하는 시간들, 사업에 필요한 사람과 상황을 여전히 기다려야 하며, 하루종일 운전대를 잡고 이동하는 성도들.



삶가운데 이루어가는 하나님 나라.

그들의 삶속에서 하나님의 경륜을 경험하고, 각 인격에 맞게 개별적으로 이끄시는 인도하심을 발견하고, 누리며 살수 있도록 기도한다.


기도는 신비하다. 기도하면서 더 사랑하게 되고, 그렇게 사랑하니 더 기도하게 된다.


그리고 기도는 확장 되어간다. 성도 한명을 놓고 기도하면서 가정의 배우자와 자녀, 부모님을 자연스레 기도하게 되고, 심지어 그들과 가까운 친구들, 일터와 학교를 이어가며 기도하게된다.



기도는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의 장소와 시간 가운데 나에게 임하고 있는 하나님의 다스림의 현실을 잇는 용기를 가져다 준다.



목회에 있어

만만치 않고, 문득 찾아오는

외로움과 버거움에도

함께 걸어가는 이들이 있고,

기도를 통해 만들어가는 이야기를

통해 자그마한 퍼즐 한조각이

그렇게 맞춰져 간다.


우리 늘벗공동체 위해

마음을 다해 기도해주는 동역자들

공동체로 함께하시며 본을 보이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계시기에

나는 또 오늘 목회를 누리며

우리 성도들을 위해 기도한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



사람들 사이에서 내가 담당할 핵심 사역은 그들의 문제 해결을 돕는 일이 아니었다. 그들로 하여금 문제가 어떻게 그들을 해결하도록 도움을 줄 수 있는지 보게 하고, 그들이 신비로운 자신의 정체성을 수용하도록 자극하고 인도하는 역할을 하고, 그들의 동반자가 되어 기도의 언어, 곧 하나님이 창조하고 그리스도가 침범하고 성령이 움직이는 이 세계의 언어를 가르치는 것이 내 사역이었다.  내 인생에서 일어난 이야기이긴 하지만 목사들에게 새삼스러울 일도 아니다.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소명이고 그리스도인이 하는 일이다. 텍스트에 나오는 기도는 “우리에게 돌보는 법을 가르치소서”이다.


 브렌다는 내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달라고 부탁했고, 나는 그렇게 해서 돌보는 법을 배웠다.  하나님의 현존과 활동 안에서 우리의 삶이 회복될 때, 돌봄은 그저 또 하나의 돌봄이 되지 않고 기도의 연장이 된다.


이런 경우에는 우리의 돌봄이 죄로 왜곡된 필요와 이기적인 속셈이 모든 것을 좌우하는, 엘리엇이 했던 문화적이고 영적인 황무지, 돌봄에서 치유를 뽑아내어 고갈시키는 그 황무지에서 벗어나게 된다.


<거룩한 그루터기 | 유진 피터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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