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상민 Oct 02. 2022

응원

늘벗이야기

<응원>


  여기 아주 오랫동안 함께 걸은 벗이 있다. 이제는 너무 오래걷고, 또 많이 걸어서 한발을 내딛을 힘조차 없을 때 그 친구에게 듣고 싶은 말이 무엇일까? “힘내?”, “할 수 있어?”, “포기하지마?” 물론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만약 그 말을 그때 듣는다면 나는 더욱 커다란 피로와 버거움 그리고 부담감까지 찾아올 것 같다. 그때 듣고 싶은 말은 아마 이말이 아닐까?



“피곤하면 잠깐 쉬어가, 갈 길은 아직 머니깐. 물이라도 한잔 마실까 우리는 이미 오랜 먼길을 걸어 왔으니까...”


이 말은 내 소중한 가수 이적의 “같이 걸을까”라는 노래의 가사다.





낯선 곳에서 꽤 오랫동안 걷고 있었다. 이미 가운데 발가락 아래의 앞꿈치는 굳은살이 가득하고, 물집은 있는대로 다 잡혀있던 상태. 내리쬐는 햇살에 검게 그을려진 얼굴과 뒷 목덜미. 허벅지는 터질 듯 경련이 일어나고, 무릎에서는 소리가 나왔다. 멈춰야 하는데 멈출수가 없었다. 이제 멈춰야 한다는 것을 온몸과 온 마음과 이성적 판단까지 이르러 멈추려 하는데 그 아이가 생각났다.




그 아이는 조용했다. 튀지 않았고, 드러나지 않았고, 드러내지 않았다. 그 아이는 내가 사역하는 청소년부의 찬양팀이었다. 반주자로 지원했지만, 이미 반주를 능숙하게 하는 아이가 있었다. 하지만 그 아이는 그 자리에서 조용히 배워갔다. 잘하는 아이들, 화려한 아이들은 많았다. 그러나 하나둘씩 자신의 사정과 환경속에서 사라져갔다. 그리고 그 아이와 나는 함께했다. 그리고 그 아이와 일년이 지나고, 이년이 지나며 어느새 내 마음속에도 들어와 있었다. 반주자였기에 나의 표정과 모습에 집중했고, 그래서 일까? 나의 작은 아픔과 숨기고 싶은 감정들도 종종 들키곤 했다.




그러면서 나는 기다렸다. 나는 반주를 할줄 모른다. 나는 뛰어난 찬양인도자가 아니다. 그러나 나는 기다릴수 있다. 그렇게 삼년을 지나가며 고3이된 그 아이는 어느덧 홀로 그 자리를 지켰다. 그리고 나는 그 아이에게 부탁했다. ‘이제 니가 다른 친구들을 세워갈 시간이 되었다.’ 그 아이는 여전히 조용하게, 드러내지 않고, 드러나지 않고 아이들을 묵묵히 세워갔다. 매주 토요일. 집에서 교회와의 거리는 버스로 40분. 그 아이는 급작스레 음악을 전공으로 선택했고, 그에 따른 레슨으로 인해 그 어느때보다 바쁜 고3을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그 아이는 이미 오랫동안 걷고 있었다. 손가락에는 굳은살이 가득하고, 물집은 있는대로 다 잡혀있던 상태. 매고 다녀야 하는 악기는 더욱 어깨를 짓눌렀고, 얼굴에 핏기가 점점 사라져갔다. 공부와 함께 레슨을 하는 상황속에 하루하루가 버거웠고, 무릎에서는 뚝둑 거리는 소리가 마음에서는 턱턱 거리는 한숨이 나왔다. 멈춰야 하는데 멈출수가 없었다. 이제 멈춰야 한다는 것을 온몸과 온 마음과 이성적 판단까지 이르러 멈추려 하는데 그 아이에게 그 목사는 말한 것이다.


“이제 니가 세워야 한다.”



분명 버거웠으리라. 분명 어려웠으리라. 그러나 그렇게 고3을 보내고 그 아이는 대학생이 되었다. 그리고 성인이 된 친구는 어느새 자신과 같은 상황의 아이들을 세워가고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오랫동안 세워져갔고, 세워갔다. 그리고 그 한결같은 모습에 나도 역시 더불어 세워져 갔다.



이제 다른 길을 찾아 나서는 그때 그 친구는 내게 말했다.




“세상은 재능없고 못하는 아이가 늦게까지 남아서 연습하고 열심으로 마음 쏟는 것을 기다려주지 않고 인정해주지 않잖아요. 그 긴 시간동안 끝까지 옆에서 같이 걸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응원이었다.


그동안의 걷는 길에서 닳고 닳은 몸 그리고 마음. 그 외로움과 버거움에 기운이 났다. 발목에 힘이 생기고, 물집과 굳은살을 잊고 한발 더 나아갈 힘. 그 힘이 났다.



그 아이는 친구가 되었고, 그 친구는 동역자로 이제 함께하고 있다.

어제는 그 친구가 다니는 대학의 밴드 동아리에 발표회 날이었다.



피아노, 멜로디언, 베이스, 카혼을 연주하는 그 친구의 모습에는 그 옛날, 그 모습과 함께 어디서부터 오는지 모르는 깊은 자신감과 자존감. 그리고 기분좋은 웃음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참 고마운 교회 가족들. 전교인 대부분이 그 친구를 응원하러 갔고,

우리는 소리지르며 응원했고, 핸드폰 네온사인으로 응원했고, 박수와 환호로 응원했다.



그리고 그 친구는 그 응원을 넉넉하게 받아줬다.



친구는 서로에게 응원하고, 응원이 되어지는 존재.



그래서 우리에게는 지금도 여전히 친구가 필요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기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