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길>
내가 살고 있는 나라와 내가 속한 기독교 전통에서, ‘간증’은 중요하다. 간증이란 대개 누군가가 사람들 앞에 서서 하나님이 자기에게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 공개적으로 증언하는 시간이다. 일종의 영적 자서전인 셈이다. 많은 교회에서 일요일 오전 예배의 한 순서로 간증을 한다. 가끔 간증은 소규모 모임에 국한되기도 한다. 나 자신은 한 번도 간증을 해 본 적이 없다(용기를 내서 이 장 마지막에 하나 적어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다수의 간증을 들었고, 언제나 다른 사람들의 간증에 흥미를 느꼈다. 십중팔구 우리는 서로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하면서 깨달음을 얻는다. 그런데 당혹스러운 사실은 내가 들어 본 거의 모든 간증에는 예외 없이 진부하고, 구태의연하고, 뻔한 패턴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그 패턴은 대개 이런 식으로 흘러간다.
나는 비참했어요. 그동안 살아온 삶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상심했고 괴로웠습니다. 온갖 방법을 동원해 보았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는 듯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분께 내 삶에 들어와 주시도록 요청했습니다. 그때부터 내 삶은 기쁨으로 충만해졌습니다.
이런 경험이 사람에게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신약성경에는 고통받던 사람들의 삶이 그리스도와 새로운 관계를 맺은 뒤 변화한 이야기가 여럿 담겨 있다. 내가 의아하게 여기는 점은, 이것이 모든 사람을 위한 유일한 패턴이어야 하는가다. 우리는 복음서에서 ‘나는 비참했어요. 그때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유형의 회심 경험이 나타나는 여러 사례를 찾기 위해 열을 올릴 것이다. 성경에서 사람들이 여러 방식으로 하나님께 부름받았음을 주목하라.
부유하고 풍족하던 사막 족장 아브라함은 어느 날 밤 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모세는 광야에 숨어 사는 살인자였다. 이사야는 성전에서 기도하던 중이었다. 베드로는 물고기를 잡고 있었다. 나무에 올라간 키 작은 남자는 호기심을 느꼈다. 마태는 돈을 헤아리는 업무에 열중해 있었다. 바울은 경건한 심부름을 수행하고 있었다. 우리는 모두 개별적 인격체다. 우리는 모두 각양각색의 이름과 얼굴, 그리고 종종색색의 장점과 약점을 지니고 있다. 성경에 따르면, 하나님이 특정한 방식으로 우리와 접촉하기로 작정하실 때 항상 우리 각 사람의 이름을 부르신다.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를 한 가지 방식으로만 부르시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 같다.
예수 운동(Jesus Movement)의 ‘하나의 길’(One Way) 티셔츠와 범퍼 스티커는 실수다. 그런데도 내가 들어 본 간증의 90퍼센트는, 누구든 먼저 적절한 불행 상태에 도달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하나님이 말씀하실 수 없다고 믿게 만든다.
윌리엄 윌리몬의 <부족한 것이 없는 사람에게 왜 복음이 필요한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