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와 여행

by 박상민


선교와 여행은 그런 것이다.

박상민


이십대 중반. 처음으로 찾았던 일본. 단기선교라는 이름으로 찾아간 그곳은 나에게 부담의 연속이었다. 가장 어려움을 가져다 준 것은 도쿄의 우에노 공원의 시간이었다. 낯설고 어색한 노숙인. 태어나 한번도 마주하지 못한 그들을 향해 점심을 제공하는 봉사는 거대한 짐으로 다가왔다. 당시 신장결석으로 인해 신체적 고통으로 선교를 미룰까 고민하다 선택한 일본. 신체의 고통은 마음의 벽을 쌓았고, 그러다 보니 마음에도 여유가 없었다. 그 상황에서 강렬한 추위를 견디며 코를 찌르는 냄새와 거칠고 딱딱한 손으로 악수를 요청하는 노숙인들 앞에 서니 당장이라도 한국에 돌아가고 싶었다. 겨우 버티며 시간이 흘렀고, 마지막날 미니버스에서 혼자 뒤에 앉아있었다. 모든 팀원들은 고단했는지 잠을 청했고, 나는 이상하리만큼 멀쩡한 정신속에 스스로에 대한 자책과 분노가 뒤섞인 감정으로 창밖을 보고 있었다. 그렇게 긴터널을 지나갔고, 갑자기 온세상이 하얗게 변했다.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찾아온 그 상황에 생각난 문장.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13년 동안 끊임없는 퇴고속에 써내려난 명문장. 일본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에게 노벨상을 안겨다준 [설국]의 첫 문장이다. 일본 미학의 진수를 보여주는 명문장으로, 일본 문학 역사상 가장 인상적인 도입부로 꼽히는 문장이다. 온세상이 하얗게 덥혀 있는 눈의 나라를 하염없이 바라보니, 분노와 짜증, 자책과 죄책도 거대한 눈으로 덥혀져 갔다. 그리고 하나님은 어색하리만큼 그 광경에서 내게 말씀하셨다. “수고했다. 잘했다. 잘 버텨줘서 고맙다.” 나는 아무말도 못하고 온세상의 눈으로 덮힌 세상을 보며 눈물을 글성였다. 다시 오고싶었다. 하나님의 선명한 그 마음과 음성을 느낀 그 나라. 그러나 이후 여행으로는 몇 번이고 찾아왔지만 선교라는 단어는 언제나 숨겼다. 그래서 동역자가 필요했다. 부끄럽지만 혼자 갈수 없었고, 함께 웃고, 함께 울수 있는 동역자들. 친구가 필요했다. 그래서였을까? 모든 속내를 나눌수 있는 몇 안되는 이들에게 가고싶다고, 가자고, 그렇게 툭툭 말을 던져놨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을 모아주셨다.


일본단기선교여행. 일본단기선교라는 이름으로만 가기에는 지난날의 어려움들이 먼저떠올라 여행이란 단어를 포기할수 없었다. 그래서 선교라는 커다란 이름 안에 “여행”이란 단어를 엮어놓았다. 여행의 힘을 아는 작가 김영하는 <여행의 이유>에서 여행의 경험을 이렇게 말한다. “자기 의지를 가지고 낯선 곳에 도착해 몸의 온갖 감각을 열어 그것을 느끼는 경험. 한 번이라도 그것을 경험한 이들에게는 일상이 아닌 여행이 인생의 원점이 된다.” 이 경험을 나의 소중한 친구들과 느끼고 싶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꽤 오랜시간 그분의 특유의 열심을 통해 노숙인들, 낯선이를 바라볼 때 하나님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는 훈련을 끊임없이 시키셨다. 변하기 싫어하는 나를 향해 하나님은 오랜시간 특별한 열심을 통해 빚어가셨다. 그래서 하나님의 타이밍이 되었다는 마음과 함께 기도하기 시작했고, 우리는 후쿠오카로 떠났다.



작은빛. 우리가 일본을 향해 나아가며 끊임없이 외치고 기도했던 단어. 그러나 정작 크리스마스의 일본은 화려했다. 심지어 비가오는 추운 날씨에도 후쿠오카의 공원과 백화점에는 거대한 빛이 가득했다. 거대한 빛속에 우리의 작은 빛은 잘 보이지 않았다. 첫날 후쿠오카의 텐진 공원과 하카타역을 돌며 노숙인을 발견할 상상을 하며 했던 기도들 때문이었을까? 거대하고 화려한 빛 앞에서 잠시 눈을 멀었다. 하지만 차츰 빛이 익숙해 지며, 언제나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이 생각났다. 삶의 발자취를 돌아보면 하나님은 생각지도 못한 일로 인도하시며 우리의 기대와 상상보다 더 아름다운 것으로 이끄셨다. 그래서 우리는 찬양했다. “하나님의 사랑이 당신의 삶가운데 가득하기를 축복합니다.” 그 찬양을 드리는 팀원들을 촬영할 때 확신이 들었다. “잘 왔다.” 그리고 다음날. 하루사이에 놀랍도록 달라진 공원은 쓸쓸함과 적막함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곳에 그분의 사랑이 필요한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얼큰하게 술에 취하였지만 딸아이의 손을 꼭잡고 있던 노숙인 아저씨, 오래된 성인잡지를 오랜시간 멍한 눈빛으로 보고계시던 할아버지, 말끔하게 잘차려입었지만 싸늘한 공원에서 한참동안 하늘을 바라보던 남자청년, 허겁지겁 점심을 떼우다 시피 입에 넣으며 말도 하지 않고 먹고 있던 회사원들까지.



그들을 찾아가 우리는 빛을 나눴다. 한번도 해보지 못한 아르바이트를 통해 벌었던 돈으로 구입한 방한용품을 그들에게 나눴다. 기질과 성격으로는 너무 어렵지만 용기를 내어 그들에게 간식거리를 나눴다. 일본어를 외우기 어려워했던 초등학생이지만 번역기 어플을 통해 입술을 트지마라고 립밤을 선물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일본어로 하나님의 빛이 가득한 편지가 담겨 있었다. 그 옛날. 노숙인들에게 음식을 나눠줬을 때 한국으로 도망가고 싶어했던 그는, 그동안의 하나님의 열심과 은혜에 감사하여 물러설수도 없었고, 물러서지도 않았다. 여행은 우리에게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해주고, 선교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하신지 알게 해주시는 시간이다. 언제나 여행과 선교는 언제나 나에게 그런것이었다. 이번 일본단기 선교, 여행도 나에게 그런시간이었다. 그래서 고맙고, 그래서 또 하고 싶다. 그래서 또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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