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운 허비

by 박상민



어린 시절의 저는 ‘장애’라는 단어에 대해 지독하리만큼 무지하고 무심했습니다. 특정한 편견을 가졌다기보다는, 그저 나와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라고 여기며 아무런 생각도, 관심도 두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 시기의 제게 장애는 저의 삶과는 동떨어진, 그래서 굳이 헤아릴 필요 없는 영역이었습니다.


그러다 대학교 시절, 우연한 기회로 '천양원'이라는 보육원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동아리에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동아리의 주요 활동은 1:1로 아이들과 학습 및 놀이 봉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제 인생의 작은 스승이 될, ‘인영’(가명)이라는 이름의 발달장애 아이를 만났습니다. 첫 만남의 설렘보다는 어떻게 소통해야 할지 막막함이 앞섰습니다. 처음 1년 내내 인영이와 저는 좀처럼 마음을 나누기 어려웠습니다. 제가 건네는 말은 허공에 맴돌았고, 인영이의 시선은 저를 통과하는 듯했습니다. "이 봉사를 계속하는 것이 맞을까?", "서로에게 시간만 허비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고민이 매주 수요일 저를 따라다녔습니다. 포기할까 하는 생각도 수없이 했습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매번 수요일이 되면 천양원 문을 열고 있었죠.


그렇게 1년, 2년, 시간이 흐르면서 저의 굳게 닫혔던 마음의 문틈으로 인영이의 작지만 꾸준한 노크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서툴렀지만 서로를 이해하려는 시도가 이어졌고, 점차 인영이의 눈빛에서, 작은 몸짓에서, 그리고 때로는 아무런 말 없는 침묵 속에서도 그녀의 감정을 읽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매주 수요일, 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인영이와의 만남은 단순한 봉사를 넘어 저에게 진정한 소통과 이해의 의미를 가르쳐주었습니다. 저는 인영이를 통해 타인의 세계를 이해하는 법을, 그리고 그 세계 속에서 함께 숨 쉬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20년이 흐른 지금, 저는 이번주 부산 맹학교에서 '인권‘교육을 진행했습니다. 과거의 저라면 이러한 자리가 무척 어렵고 낯설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어떤 말을 건네야 할지 몰라 주저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들을 향한 거리감이나 어려움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저 그들의 눈높이에서,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진심으로 공감하는 마음으로 마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맹학교에서 만난 고2 학생 민서와 지연이(가명)는 맑게 웃으며 자신의 생각을 잘 펼쳐나가는 멋진학생들이었습니다. 강의중에 그아이들이 함께 웃는 모습속에서 20년전 인영이가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문득 20년 전 천양원에서의 기억들을 되돌아보았습니다. 만약 그때 제가 인영이와의 소통을 포기하고 돌아섰다면, 지금의 저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서 있을까요? 그때의 좌절과 고민, 그리고 포기하지 않고 이어갔던 만남의 시간들이 결국 오늘날의 ‘편견 없는 나’를 만들어주었음을 깨닫습니다. 인영이와 함께 보냈던 그 시간들은 단순히 누군가를 돕는 행위가 아니라, 저 스스로의 세상을 넓히고 이해의 지평을 확장하는 가장 값진 배움의 시간이었습니다. 사랑은 허비. 천천히 생각해보니 나를 향해 모든 것을 허비한 예수님의 미소가 인영이를 닮고, 민서와 지연이를 닮았습니다. 괜시리 나도 씨익 한번더 웃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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