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두 번째 이야기
“아빠 싫어. 아빠 미워. 아빠 안 놀 거야.”
하늘이의 혐오 3단 공격.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을 때 가차 없이 삼단 콤보로 나를 주눅 들게 한다. 연속기를 통해 들으면 가슴이 아프고, 때로 혼을 내기도 한다. 요새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혐오라는 단어가 일상에서 자주 쓰이게 된다. 사실 우리나라는 오래전부터 정치의 노선과 지역의 위치에 갈려 상대를 함부로 비하하는 혐오주의에 빠져있다. 요즘은 여자와 남자가 서로 혐오하는 집단이 생기고 심지어 초등학교에서는 임대아파트 사는 아이들을 혐오하는 모습도 실제로 일어나는 상황이다.
혐오는 상대 집단에 대한 포비아까지 만들어낸다. 포비아란? 공포증 [phobia]이라는 뜻으로, 특정한 물건, 환경, 또는 상황에 대하여 지나치게 두려워하고 피하려는 불안장애의 일종이다. 그런데 코로나 19 사태로 인해 대한민국 사회가 혐오주의를 넘어 포비아 국가로 들어서고 있다. 코로나 19 초기에는 중국 우한 지역을 향한 포비아가 시작되더니, 이제 대구, 신천지, 기독교까지 이르고 있다.
이 같은 혐오라는 단어를 가장 잘 유발하는 단어가 있는데 바로 전통이라는 단어이다. 어느 집단이건 자신들이 굳게 지키는 전통을 깨트리고, 어렵게 만들면 많은 이들이 혐오하게 된다. 전통이라는 단어. 그 단어를 새롭게 보게 한 책이 있다. 에릭 흡스봄과 테런스 레인저의 �만들어진 전통(Invented tradition)� 이다.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단어. 그런데 영국의 역사학자인 두 사람은 이 같은 제목의 책을 통해 아주 재밌는 주장을 펼친다. "전통"이라고 불리는 것들이 실제로는 최근에야 시작된 것이고 때로는 의도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라는 것이다.
두꺼운 책이었지만 책을 읽어나가며 여러 책에서 추천을 통해 큰맘 먹고 샀던 책. 이 책에서 전통을 "만든다"는 것은 전통이 "시작된다"는 것과는 다르다고 말한다. 더불어 전통의 만들어짐은 근대 국가의 형성 과정 속에서 국민들의 통합을 촉진하는 도구로 사용되어 왔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때로 전통은 사람의 사고와 시야를 굳게 만든다. 마치 이데올로기의 능력처럼 때로 만들어진 전통은 아주 오래전부터,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진리처럼 사람들은 여기게 된다.
그리고 전통을 따르지 않을 때, 사람들은 상대방을 자신들의 문화를 깨트리는 자로 여기고, 결국 혐오하게 된다. 그래서 전통은 가공할만한 힘을 지닐 때가 있다. 때로 전통은 법보다 더욱 높은 곳에서 사람들을 다스린다. 그리고 전통의 힘을 통해 살아가는 이들은 엄청난 기득권으로 중심부가 되어간다. 그렇게 꽃피는 중심부에서는 그들만의 문화, 전통이 발현되기 마련이다. 유대인들에게도 그와 같은 전통은 엄청난 권위와 힘을 갖게 만들었다. 유대인이 아니고서는 사람 취급을 하지 않았던 그들에게 세상은 이방인들이 득실거리는 더러운 공간이었다. 따라서 밖에 나갔다 오면 반드시 손을 씻고 음식을 먹는 “전통” 있었다.
그러나 전통은 집단의 의미와 연합에는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때로 폭력과 폭압으로 나타난다. 예수님의 제자인 유대인들이 손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다는 모습에 그들의 마음은 불편했다. 전통의 중심부에 있던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과 그 제자들을 혐오했다. 그들에게 거대한 힘을 가져다주는 전통에 정면으로 맞서는 예수와 일당들은 눈에 가시이자, 혐오의 대상이며, 포비아 대상이었다. 그래서 예수님에게 그들은 “손도 씻지 않는 당신과 제자들을 설명해 보시오!” 하며 외쳐 댄다,
그때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그토록 크고 높게 여기는 전통과 하나님의 계명 중에 어떤 것이 더 너희에게 중요한가?” 순간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그리고 한마디 더 하신다. “우리가 손으로 먹은 것이 더러운 게 아니라! 우리 속에서 나오는 음란과 혐오와 폭언과 멸시와 그 시선이 더러운 것이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만든다. 특히 코로나 19로 전 세계가 혐오와 불안과 불신으로 마비가 되어 포비아에 걸린 것처럼 보이는 이 시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상대를 향한 혐오가 아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상대를 하나님의 작품으로 바라보는 시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