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라는 이름 아래_선(line)

일흔세 번째 이야기

by 박상민


“곰인형 아빠 아니라고! 하늘이 아빠란 말이야!”


하늘이가 곰인형을 세차게 집어던진다. 그리고 다시 주어와 나에게 뾰로통하게 말한다. “아빠 곰인형이 계속 괴롭혀요.” 나는 곰인형에게 분명하게 말한다. “곰인형! 나는 하늘이 아빠라고, 네 아빠가 아니야.” 요즘 하늘이와 역할놀이를 자주 한다. 그런 가운데 이와 비슷한 일이 종종 일어난다. 순서는 다음과 같다. 내가 곰인형을 손에 들고 곰인형의 목소리를 내면서 “우리 아빠 좋아!”라고 말한다. 이후 하늘이는 곰 인형에게 버럭 화를 낸다. 그리고 던지며 말한다. “넌 저리 가있어.” 하늘이 입장에서 인형으로써 아빠를 자신의 소유로 시도하는 곰인형의 모습에 화가 난 것이다. 선을 넘어 버리는 곰인형이 용납이 되지 않는 것이다.



하늘이는 그 야말로 곰 인형에게 안분지족(安分知足)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안분지족이란? 자기(自己) 분수(分數)에 만족(滿足)하여 다른 데 마음을 두지 아니하는 것을 말한다. 이 사자성어가 나온 영화가 얼마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시상식을 휩쓸었다. 바로 영화 기생충이다. 디테일로 유명한 봉준호 감독은 주인공 기택의 반지하 집에 어울리지 않는 것 마냥 커다란 액자를 슬쩍 보여준다. 그리고 그 액자에는 한문으로 이렇게 적혀 있다. 안분지족(安分知足). 자신의 처한 그 삶에 그저 만족하고 사는 것이 행복한 삶임을 말하는 그 사자성어. 이후 주인공 기택은 동익의 운전수가 되는 상황에서도 늘 선을 넘지 않음을 중요시 여기며 살아간다. 그것을 아내인 연교에서 설명하는 동익은 이렇게 말한다.


"운전기사분, 선을 넘을 듯 안 넘을 듯하면서도 아슬아슬하게 넘지는 않아"



이와는 조금 다르게 계속해서 선을 넘어서 불편함을 일으키는 드라마가 요즘 화제다. 카카오페이지와 다음 웹툰을 합산하여, 누적 독자수가 1천만 명과 누적 조회수는 3억여 건, 평점은 9.9점을 인기를 누린 원작을 드라마로 만든 “이태원 클라스” 주인공 박새로이의 아빠를 죽음으로 내몬 장가를 복수하기 위해 요식업계를 일으키는 내용을 다룬 이 드라마의 묘미는 바로 선이다. 1화부터 내게 매력으로 다가온 이 드라마는 처음부터 불편함을 일으킨다. 세상의 흐름과 결대로 살아가면 편할 것을 계속해서 선을 넘고, 반대의 결을 일으키는 주인공의 모습은 간절하다 못해 처절하기 까지 하다. 그런 상황에서 처음으로 사업이 확장되는 과정 속에 사무실을 차리고 자신의 이름을 내건 프랜차이즈를 확장하는 순간. 장가는 이를 가만두지 않고 또 한 번 무너뜨린다. 그때 장가의 회장은 주인공에게 화분을 하나 보낸다. 그리고 그 화분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안분지족(安分知足)”


“안분지족(安分知足)” 자신의 분수를 알고 만족하면서 사는 삶이 인간이 추구하는 삶일까? 그것이 내 아이에게 가르쳐야 하는 삶일까? 혹시 그것은 부모의 일생을 수저로 만들어 놓고, 이제는 개천에서 용 날 것을 기대하지 말라는 이 시대의 이데올로기가 아닐까? 선은 과연 언제부터, 누구로부터, 만들어놓은 것일까? 인간의 일생은 단순하게 선으로 구분될 수 없다. 어느 순간부터 내가 정해놓은 선으로 인해 나 역시 위축되는 것은 아니었던가? 그리고 나 역시 선을 정해놓고 사람들을 구분하고, 바라보는 건 아닌가? 더 이상 이 세상이 그어놓은 선으로 살아가서는 안된다.


사람을 단계별로 바라보는 선의 경계를 넘어 하나의 인격으로 받아들이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많아질 때 사람 사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 이제 그 생각을 가지고 곰인형과 하늘이와 셋이 사이좋게 노는 연습을 좀 해야겠다.



어릴 때부터 사람을 향해 선을 그으며 산다는 건 너무 슬픈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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